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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반성’‘성실’ 성매매 공무원은 봐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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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에스더 기자 중앙일보 팀장
이에스더 복지팀 기자

이에스더 복지팀 기자

공무원 A씨는 근무 도중 스마트폰 채팅앱에 접속해 성매매 여성을 찾았다. A씨는 상사에게 “병원에 다녀오겠다”고 거짓말을 하고 성매매 장소로 이동했다. 그는 상대가 여고생인 줄 알면서도 20만원을 건네고 성관계를 가졌다. 이러한 사실이 경찰 단속에서 적발됐고, A씨는 소속 기관에서 해임 처분을 받았다. 그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소청심사위원회에 이의를 제기했다. 위원회 측은 A씨의 징계 수위를 ‘강등’으로 한 단계 낮춰줬다.

위원회는 “깊이 반성하고 있는 점, 장기간 재직하면서 징계 전력 없이 성실하게 근무한 것으로 보이는 점, 부양가족의 생계유지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점을 참작했다”며 “심기일전해 다시 직무에 매진하도록 징계를 감경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징계 수위를 낮춘 이유를 설명했다.

여고생 성매매를 했는데도 반성해서 봐줬다고 한다. A씨 같은 공무원은 적지 않다. 30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정춘숙 의원(더불어민주당)은 2015년부터 올해 8월까지 성매매·성희롱 등 성범죄를 저질러 징계받은 공무원 중 소청 심사를 통해 징계를 감면받은 사례를 모두 공개했다. 소청 심사는 징계받은 공무원이 이의를 제기할 경우 열린다. 자료에 따르면 29.6%인 71명이 징계 수위를 낮췄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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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계 감면도 문제지만 사유가 더 황당하다. ‘반성’이 32건으로 가장 많았고, ‘성실 근무(모범)’이 28건, ‘피해자 처벌 불원’ 14건, ‘우발적’이 11건 순이었고, ‘생계유지(사회적·경제적 어려운 사정)’도 5건에 달했다.

회식자리에서 부하 여직원 5명을 성추행하고 사건을 은폐하려 한 공무원 B씨는 “고의성이 없고, 성적 의도가 없었고, 깊이 반성한다”는 이유로 해임 대신 강등 처분을 받았다. 강제추행·간음한 다른 공무원 C씨는 성관계가 전적으로 일방적 요구로 볼 수 없고 성실하게 근무했다고 파면에서 해임으로 낮췄다.

‘미투 운동’ 이후 정부는 공공부문 성폭력에 원스트라이크 아웃 제도를 도입하는 등 엄격한 대응을 약속했다. 하지만 말만 그럴 뿐 실제는 영 딴판이다. 피해자들의 2차 피해도 예상된다.

정춘숙 의원은 “현행 소청심사시스템은 사실상 공무원들이 모여서 다른 공무원을 감싸는 구조”라며 개혁을 촉구했다.

제 식구 감싸기에 골몰하면서 국민에게 ‘성폭력 근절’을 외칠 자격이 있을까. 공직사회의 왜곡된 인식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이에스더 복지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