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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사이판 고립 국민에 소홀했던 외교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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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태윤 기자 중앙일보 기자
이태윤 사회팀 기자

이태윤 사회팀 기자

태풍 ‘위투’가 강타한 사이판에 고립된 국민을 구하기 위해 정부가 군용기를 파견했다. 긍정적인 평가도 나오지만 외교부 등의 미숙한 대응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정부 일각에선 29일 전원 귀국이 가능하다는 예상이 나왔지만 그렇게 되지 못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29일 “이날까지 대부분의 국민이 귀국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항공 사정에 따라 일부 국민이 좀 더 체류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번 태풍으로 사이판에 발이 묶인 한국인들이 모인 단체카톡방에선 “내 표가 당장 11월 1일이고 항공사는 연락도 없는데 무슨 29일 귀국이냐”며 “난 언제 들어가나”는 푸념이 넘쳐났다. 공군 수송기는 27일 161명, 28일 327명을 사이판에서 괌으로 실어날랐다. 29일엔 311명을 추가로 수송했다. 28~29일 민간 항공편으로 귀국한 사람은 총 729명이다.

태풍 ‘위투’로 사이판에 고립된 우리 국민의 이동을 위해 파견되는 공군 제5공중기동비행단 소속 C-130H가 27일 새벽 김해기지에서 이륙준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태풍 ‘위투’로 사이판에 고립된 우리 국민의 이동을 위해 파견되는 공군 제5공중기동비행단 소속 C-130H가 27일 새벽 김해기지에서 이륙준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외교부가 초기에 제대로 된 정보를 전달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24일 가족과 함께 사이판으로 여행을 갔다 현지에서 발이 묶인 이모(46·충남 천안시)씨는 기자에게 “25일 항공기 일정 변경에 유의하라는 문자 두 통 이후 27일까지 아무 연락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재난 앞에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라 현지 가이드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안전 수칙이라도 알려줬다면 좋았겠다”며 아쉬워했다. 사이판에 체류 중인 박모(28·대구 달서구)씨 역시 “호텔 내부 전기가 끊기고 인터넷도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홈페이지 참조’라는 외교부 문자메시지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25일 외교부가 현지 여행객에게 보낸 문자는 ‘태풍 위투 통과에 따라 공항 폐쇄, 항공기 일정 변경 등에 유의’ ‘항공기 일정은 각 항공사 홈페이지 참조 요망’ 등 단 두 통뿐이었다.

27일 공군 수송기를 띄운 이후 추가로 문자 안내를 했지만 구체적인 일정 안내나 특별편성 국적기 일정을 전달받지 못한 여행객도 많았다. 상세 내용은 공관 홈페이지를 확인하라는 문자도 있었다.

해외에서 갑자기 위기에 처한 국민의 신변과 안전을 챙기는 것은 국가의 첫번째 책무다. 그런데 의례적인 문자 메시지만 보내 놓고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한다면 큰 일이다. 천재지변이든 테러든 최악의 경우를 상정해 국민들을 안심시켜야 한다. 이번 기회에 위급한 상황에 놓인 해외 체류 국민을 위해 안내 메시지 개선 등 긴급 구호 시스템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이태윤 사회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