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아줌마] '면세품 반입 400달러까지만' … 지키기엔 너무 큰 유혹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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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해외 패션 트렌드를 조사하기 위해 출장을 자주 나간다는 디자이너들은 어떨까. 직업상 맘에 드는 의상을 구입해 한국에 가져와 분석해 보고 싶지만 400달러라는 기준이 매번 그들을 압박한다. 입국하기 전날 밤 구입한 옷들을 헌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파리 출장 중 들른 한 구두 할인 매장. 한국 여성들에게도 잘 알려진 이곳은 관광객은 물론 파리지엔느들로 북적대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 잘나간다는 디자이너 브랜드의 구두가 괜찮은 가격(물론 절대 저렴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에 팔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구두를 좋아하는 여성이라면, 또 한국에서 이 브랜드를 살 경우를 떠올린다면, 이곳을 그냥 지나치기엔 불가능한 것 아닐까?

물론 '400달러'가 주는 느낌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해외에서 무슨 쇼핑을 그렇게 하느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400달러를 누구 코에 붙이느냐"고 생각할 사람도 있을 터.

외국의 유명한 쇼핑몰 근처를 가면 '쇼핑의 여왕'으로 불리는 일본 여성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들은 왠지 여유롭게 이것저것 사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일본의 면세품 반입 기준은 얼마나 될까?

루이뷔통 매장에서 만난 한 일본인에 따르면 일본의 면세품 반입 기준은 20만 엔(약 180만원)이란다. 이런 기준이 있지만 일본에 입국할 때 강제로 검사당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고 했다. 물론 우리보다 훨씬 잘사는 나라니까 그렇겠지만 한국보다 면세품 반입 기준에 여유가 있어 보인다. 한국의 경우 출국할 때는 3000달러어치 이상 들고 나갈 수 있지만 입국할 때는 400달러 이상 샀으면 세관에 신고하고 세금을 물어야 한다.

관세청에선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를 봤을 때 400달러는 적당한 선"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국제통화기금(IMF) 자료를 보면 한국의 2004년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만4000달러고 일본은 3만6000달러다. 관세청의 논리대로 단순 계산해 일본이 우리보다 1인당 GDP가 세 배 정도 많다고 보면 일본의 면세품 반입 기준은 1인당 1200달러(약 110만원) 정도가 되어야 할 텐데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참 복잡한 문제다. 무분별한 사치품 쇼핑을 막기 위해 반입 기준은 필요하고, 법 적용을 엄격히 하자고 말하기엔 400달러는 아무래도 현실과 거리가 있어 보이고….

파리 공항에서 마주친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 가이드가 세관 신고서를 나눠 주면서 "신고 물품 없다고 체크하시면 돼요"라고 말하자 관광객 중 한 명이 되물었다. "정말 그래도 돼요?" 그러자 가이드가 짜증 난다는 듯 한마디 한다. "아니 그럼 세금 다 내실 거예요?" '400달러의 기준'에 대한 현실은 이렇다.

조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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