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을 향해 "자기 정치를 하려거든 비서실장 자리에서 내려오라"고 하자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29일 “동의할 수 없다”며 공식 대응에 나섰다.
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임 실장이 자기 정치를 했느냐”며 반문한 뒤 “그 자체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임 실장이) 철원 화살머리고지를 방문한 것은 남북공동선언 이행위원장으로서 상황을 점검하고 이행 수준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라며 “(유해발굴 현장) 동영상에 내레이션한 것은 국민소통수석실에서 그 내용을 국민에게 널리 알리는 게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내고 (임 실장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 실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유럽 순방 중이던 지난 17일 선글라스를 착용한 채 강원도 철원 남북 공동 유해발굴 현장을 찾았다. 또한 26일엔 청와대가 공식 유튜브 계정에 유해 발굴 현장을 촬영한 4분짜리 영상을 공개했는데, 임 실장이 직접 내레이션을 했다.
이에 앞서 손 대표는 이날 오전 당 회의에서 “비서실장은 나서는 자리가 아니다”라며 “비서실장이 왜 국정원장과 국방ㆍ통일장관을 부하 다루듯 대동하고 전방을 시찰하며, 비서실장이 왜 대통령을 제치고 청와대 홈페이지 첫 화면에 나서서 야단이냐”며 임 실장을 직격했다.
특히 손 대표는 “국민은 또 하나의 차지철이나 최순실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 촛불을 똑똑히 기억하라”고 말했다. 차지철 전 청와대 경호실장은 박정희 정권 때 권력자로 부상했다가 10·26 사태 때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에 맞아 숨졌다.
손 대표와 임 실장의 대립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 초 청와대가 "평양 회담에 여야 대표도 동행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손 대표 등이 이를 거절하자, 임 실장은 페이스북에 “당리당략과 정쟁으로 어지러운 한국 정치에 ‘꽃할배’ 같은 신선함으로 우리에게 오셨으면 한다”고 적었다. 이에 손 대표는 "비아냥으로 들린다"고 불쾌감을 표했다.
청와대 대변인까지 나서 비서실장 논란에 대응한 것을 두고 정치권에선 "향후 거취 등을 고려해 임 실장 관리에 나선 거 아니냐"는 분석이 적지 않다. 임 실장은 문재인 정부 첫 비서실장으로 지금까지 1년 5개월간 비서실장 역할을 해왔다. 청와대 안팎에선 “임 실장이 2020년 총선에 출마하거나, 그 전에 입각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실제로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남북관계와 관련해 임 실장의 역할이 크기에 당분간 직을 유지할 것"이라면서도 “그렇다고 임기 내내 비서실장만 할 수는 없지 않나. 정치인으로 다른 길을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 실장은 전남 장흥 출신이다. 전남 영광 출신인 이낙연 국무총리와 더불어 여권 내 호남 출신 차기 대선 주자군으로 분류된다. 공교롭게 이날 한 매체는 “이 총리가 임 실장의 전방 방문에 대해 크게 화를 냈다”는 보도를 했다. 김 대변인은 이에 대해 “파악된 것이 없다”고 답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