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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에 온 23세 중국 청년, 한 달에 1억 버는 비결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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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1시 30분, 자정에 가까운 시각이지만 동대문 시장 쇼핑타운은 활기가 넘친다. 시끌벅적한 이곳에서 단연 눈에 띄는 풍경은 스마트폰을 앞에 두고 열심히 무언가를 설명하고 있는 중국인들의 모습. 이들은 대부분 중국 ‘타오바오 즈보(直播)’에서 생방송을 진행하는 1인 방송인(BJ·Broadcast Jockey)이다.

타오바오에서 한국 여성복·액세서리 등 판매 #동대문 시장 돌며 스마트폰으로 생방송 중계 #20~30대 여성 시청자들에게 폭발적 반응 #한 달에 100만 위안 버는 BJ로 활동

알리바바가 운영하는 오픈마켓 ‘타오바오’는 2016년 실시간 인터넷 방송 채널인 '타오바오 즈보’를 열었다. 타오바오에 입점한 판매자가 직접 생방송으로 자신의 물건을 팔 수 있는 플랫폼을 개설한 것이다. 이용자만 5억 명이 넘는 타오바오에서 판매자가 직접 만드는 ‘홈쇼핑’을 방송하는 셈이다.

최근에는 한국 물건을 취급하는 판매상들도 즈보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이들은 한국의 백화점, 면세점, 도매시장, 쇼핑몰 등에서 매장의 제품을 생중계로 보여주고 방송을 시청하는 소비자들의 댓글에 답하며 직접 물건을 판매한다.

[출처 타오바오]

[출처 타오바오]

BJ 성타이(盛太)는 즈보로 한국 제품을 판매하는 8000여 방송인 가운데 인기 순위 3위 안에 드는 유명 BJ다. 1995년생, 만 23살인 그는 즈보를 시작하고 한 달에 100만 위안(약 1억 6000만원)을 버는 사업가로 변신했다.

어떻게 그는 중국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아 ‘걸어다니는 중소기업’이 될 수 있었을까.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8월, 서울 서소문 근처에서 BJ 성타이를 만났다.

 지난 8월, 서울 서소문 근처에서 BJ 성타이를 만났다 [사진 차이나랩]

지난 8월, 서울 서소문 근처에서 BJ 성타이를 만났다 [사진 차이나랩]

한국과 어떻게 인연을 맺었나
2013년에 전문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돈을 벌기 시작했다. 보험사에서도 일하고 자동차 영업소, 인테리어 업체에서도 있었다. 내 사업을 하고 싶어서 디저트 가게도 차렸었는데 장사가 잘 안됐다. 그 때 옆에 있는 가게 주인과 친해져서 구매 대행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중국에서 인기 있는 한국 물건을 사와서 사람들에게 파는 일이었다. 디저트 가게를 접고 자세히 알아보기 시작했다. 2016년 10월, 구매 대행업자를 따라 한국에 와봤다. 동대문 시장과 면세점, 백화점을 둘러 봤고 ‘이거다’ 싶었다. 바로 준비를 시작해 타오바오에 입점했다 
무엇을 파나
시청자가 거의 100% 여성이다. 주 시청층이 20대 중반에서 30대 중반 여성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맞는 제품을 소개한다. 여성복이 대부분이고 화장품이나 액세서리 가운데서도 괜찮은 물건이 있으면 판매한다. 지난해까지는 주로 한국의 동대문 시장을 배경으로 방송을 했는데 시청자가 많아지면서 다른 해외 제품에 대한 수요도 늘었다. 얼마 전에는 태국에 건너가 방송을 통해 현지의 라텍스 베개와 여성 속옷을 소개했는데 속옷의 경우 4시간 동안 3000개가 팔렸다. 앞으로 일본, 홍콩 등으로 건너가 방송할 계획도 있다.

↓ 아래 동영상을 클릭하면 BJ 성타이의 방송 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방송을 시작한 계기는
타오바오에서 다른 판매자들의 상점을 구경하는데 ‘생방중’이라는 표시가 나왔다. 궁금해서 살펴보니 방송을 통해 실시간으로 물건을 팔고 있었다. 사실 이 일을 하기 전에도 개인 방송을 가끔씩 했었다. 이런저런 일상 생활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주기만 했는데 용돈 정도는 벌 수 있었다. 그래서 나도 방송으로 제품을 홍보하고 판매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타오바오의 모든 판매자가 방송을 할 수 있나
그건 아니다. 신청 절차가 꽤 까다롭다. 타오바오에 온라인 점포를 갖고 있는지, 실제로 물건을 팔고 있는지, 해외에 자주 가거나 실제 거주하는지를 심사했다. 테스트 영상을 제출해 방송을 잘할 수 있을지도 평가 받았다.처음 방송을 시작했을 때는 한정된 소수만 방송을 볼 수 있었다. 이후 심사를 통해 방송 횟수가 많은지, 내용은 어떤지, 인기는 많은지 평가 받은 후에야 공개적으로 방송을 할 수 있었다. 대여섯 달을 기다린 끝에 지난해 6월 첫 방송을 시작했다.
생방송 판매의 장점은
방송을 하기 전에는 위챗을 통해 제품을 홍보했다. 구매 의향이 있는 사람들은 연락을 해오는데 많아 봐야 1000명 정도였다. 그런데 방송은 처음부터 1만 명이 동시에 보기 때문에 구매자 수도 훨씬 많다. 요즘은 시청자 수가 더 많아져서 최대 10만 명이 동시에 방송을 본다. 그리고 구매 대행의 경우 사람들이 원하는 제품을 사다 주는 것이지만 방송은 다르다. 내가 먼저 괜찮은 제품을 발굴해 소개하고 판매할 수 있다. 채팅을 통해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을 바로바로 알려줄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출처 타오바오 즈보]

[출처 타오바오 즈보]

매출이 궁금하다
올해 3월 30일에 기록을 세웠는데 그날 하루 60만 명이 방송을 시청해, 총 400만 위안의 매출을 올렸다. 그날 여러가지를 팔았는데 동대문 시장 여성복이 제일 잘 팔렸고 라인 프렌즈 제품과 MLB 모자도 인기 있었다. 보통은 한 달에 100만 위안(약 1억 6000만원) 정도 번다.
다른 판매자도 그렇게 많이 버나
타오바오 생방송 채널을 운영하는 사람이 전 세계적으로 3만 명 정도다. 한국에서 나와 비슷하게 활동하는 사람들은 8000명 정도 있다. 면세점과 백화점, 아웃렛,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 등 주 활동영역이 있다. 나는 그 중에서 매출 순위 톱(TOP) 3에 들어간다.
인기 비결은 뭐라고 생각하나
비슷한 제품을 판매하는 경쟁업자 대부분이 여성이다. 남자가 여성 제품을 판다는 점이 특이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흔히 중국 동북 지역 사람들이 말을 재미있게 한다고들 하는데 나도 그런 편이다. 또 여성 판매자의 경우 자신이 예쁘고 날씬하기 때문에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 앞에서 외모에 대한 얘기를 할 때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나는 다른 BJ들이 쉽게 할 수 없는 장난을 많이 하곤 한다. 방송 중 누군가가 채팅창에 ‘지금 소개하는 옷은 날씬한 사람만 입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쓰면 ‘아니다. 얼굴이 예쁘면 뭘 입어도 다 이쁘다. 몸매 상관 없이 예쁜 사람이 입으면 된다’고 말하는 식이다.
[출처 타오바오]

[출처 타오바오]

재미만 있다고 물건을 사지는 않을 것 같은데
동대문을 1년 이상 다니다 보니 중국 소비자 취향에 맞는 제품을 판매하는 곳이 어디인지, 품질이 좋고 믿을 수 있는 가게가 어디인지를 알게 됐다. 제품을 고르는 노하우도 생겼다. 옷을 한 번 만져보면 소재가 어떨지, 입으면 감촉이 어떨지 가늠할 수 있게 됐다. 요즘에는 맞춤 서비스도 제공한다. 사실 시청자 중에 ‘빅사이즈’를 찾는 사람도 많은데 동대문 시장에서 파는 옷은 보통 ‘미디엄’ 한 가지 사이즈로만 나온다. 그래서 괜찮은 옷이 있으면 가게에 ‘라지’나 ‘엑스라지’사이즈를 따로 만들어달라고 요청한다. 한국과 중국에서 유행하는 스타일이 다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원피스를 소개했는데 채팅창에서 ‘디자인은 예쁜데 길이가 다소 길다’는 반응이 나오면 점주에게 ‘같은 디자인으로 길이만 좀 짧게 만들어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판매할 제품을 고르는 기준은
매일 방송을 마치고 다른 나라에서 방송하는 BJ들이 무엇을 팔았는지 살펴본다. 괜찮은 제품이 있으면 웨이보에서 정보를 확인하고 최신 유행 상품도 파악한다. 생방송 중에도 시청자들에게 뭘 사고 싶은지 계속 물어본다. 방송을 할 때는 가게와 사전에 어떤 물건을 팔지 협의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동대문 시장 쇼핑몰에서 물건을 살펴보다가 괜찮다 싶으면 주인에게 ‘방송 좀 하고 싶다’고 얘기한다. 어떤 품목을 소개할지만 정해놓고 현장에서 부딪친다.
다들 촬영에 선뜻 응하나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스마트폰을 보자마자 손사레를 치며 싫어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때는 어쩔 수 없이 매장 곳곳을 계속 돌아다니면서 방송을 했다. 지금은 단골 가게가 생겨서 며칠에 가겠다고 미리 허락을 받기도 한다. 약속을 하고 찾아가는 경우를 빼고는 무작정 돌아다니면서 물건을 소개한다. 소개한 제품은 그 자리에서 사진을 찍어서 타오바오 매장 판매 품목에 올리고 SNS에 그 제품을 홍보하기도 한다.
 지난 8월, 서울 서소문 근처에서 BJ 성타이를 만났다 [사진 차이나랩]

지난 8월, 서울 서소문 근처에서 BJ 성타이를 만났다 [사진 차이나랩]

혼자서 다 할 수 있나
처음에는 혼자 했는데 지금은 팀을 꾸렸다. 직원이 20명 정도 된다. 생방송 현장에는 친구 한 명과 같이 다닌다. 방송을 하는 동안 내가 소개한 제품의 사진도 찍고 가격 흥정도 도와준다. 중국 현지에 있는 인력들은 친구가 찍어서 보내준 사진을 활용해 타오바오에 바로 관련 게시물을 올린다. 제품 하나를 소개하고 판매글을 올리기까지 3분이면 충분하다. 방송을 본 사람들이 바로 주문 신청을 하면 이를 바탕으로 대략적인 수량을 파악해 매장에 예약 주문한다. 방송이 끝나고 나면 정확한 구매 수량에 맞춰 제품을 산 뒤 중국 현지 소비자에게 배송한다.
손해를 본 적은 없나
손해를 본 적은 없지만 돈을 많이 못 번 경우는 있다. 동대문 시장에서 판매하는 가격에 배송비 등 필요한 경비와 이윤을 붙여서 판매해야 하는데 잘못 계산을 해서다. 하지만 이제는 방송을 오래 하다 보니 한국 가격을 들으면 중국에서 얼마에 팔아야 할지 대략 계산이 나온다.
방송 시간이 긴데 힘들지는 않나
보통 밤 8시에 시작해서 다음날 새벽 3시까지 꼬박 7시간을 연속으로 방송한다. 방송 시작 10분 전쯤 일어나 있다가 스마트폰 촬영 버튼을 누른 후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일상이 방송이다. ‘지금 일어났어요. 세수하고 올 테니 잠깐만 기다리세요. 촬영하는 친구가 이야기하고 있을거예요. 저 요즘 이 마스크팩 쓰는데 한 번 써보세요. 이제 밥 먹겠습니다. 다 먹었으니 동대문으로 가볼까요’ 이런 식이다. 방송이 끝나고 물품을 정리하면 새벽 5시. 누구와 약속 잡기도 힘들다. 원래 말이 많은 편이었는데 이제 방송할 때 아니면 말하기가 싫다. 가만히 쉬고 싶다.
 지난 8월, 서울 서소문 근처에서 BJ 성타이를 만났다 [사진 차이나랩]

지난 8월, 서울 서소문 근처에서 BJ 성타이를 만났다 [사진 차이나랩]

쉬는 날이 거의 없다
일 년 중 새해 첫 날인 1월 1일, 추석 당일. 이렇게 이틀만 쉰다. 토요일에는 동대문 시장이 문을 닫는데 그 때는 백화점이나 면세점에 협조를 구하고 방송을 했다. 타오바오 서버 점검 때문에 방송 송출이 안돼서 일주일 쉰 적이 있긴 하다. 올 여름에 동대문 시장이 일주일간 문을 닫은 적이 있는데 그 때도 3일은 중국에서 방송을 하고 다른 날엔 팀원들과 가을에 어떤 옷을 팔지 점검했다.
그래도 행복해 보인다
예전에 이런저런 직장을 전전했을 때는 미래가 없는 것 같아 절망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이 곳은 굉장히 평등한 플랫폼이다. 다른 개인 방송은 BJ의 외모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하지만 즈보의 BJ는 학력, 외모, 부와 상관 없이 노력해서 좋은 제품을 팔면 성공할 수 있다. 앞으로도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게다가 일을 시작하고 해외를 처음 가보게 됐다. 원래 여행을 좋아하는데 돈도 벌고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앞으로도 세계 곳곳에서 좋은 제품을 발굴하고 판매하면서 최대한 오래오래 일하고 싶다.

차이나랩 김경미, 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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