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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韓男)일녀(日女)수다③-일본배우 쿠니무라 준, 한국서 왜 두번 울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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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관계를 설명할 때, 진부하지만 '가깝고도 먼 나라' 이상의 표현은 없는 듯 합니다. 공감할 부분도, 갈등할 부분도 많다는 뜻이겠지요. 1년간 일본 도쿄에서 연수를 한 중앙일보 정현목 기자, 동국대 대학원에서 한국영화를 공부하고 있는 나리카와 아야 칼럼니스트(전 아사히신문 기자)가 의기투합했습니다. 국적은 물론, 성별도 연령대도 다른 둘이 양국 사이의 이런저런 이슈들에 대해 허심탄회한 토크를 진행합니다. 야스쿠니 신사, AKB 48에 이어 이번 주제는 '마스고미'입니다. 마스고미가 무슨 말인지 궁금하시죠? 일본에도 '기레기'라는 단어가 있더군요.



나리카와(이하 나): 기레기란 말을 처음 듣고 '기러기 아빠' 뭐 그런 걸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군요. ㅎ 언제부터 그런 말이 생겼나요?

정현목(이하 정): '기자+쓰레기'란 뜻인데, 이런 부끄러운 단어가 언제부터 생겼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세월호 사태부터라는 말도 있는데, 당시 일부 언론의 취재에 대중의 불만이 엄청났었거든요. 

나: 세월호 때 저도 현장에 있었어요. 아사히신문 특별취재팀으로 팽목항에서 취재를 했거든요.

정: 그러면 당시 분위기를 잘 알겠네요. 엄청난 재난상황에서 오보, 보도윤리가 결여된 뉴스들이 이어지면서 언론과 기자에 대한 불만이 커졌고 결국 기레기란 말까지 생겨나지 않았나 하는 추측이에요.  

2014년 4월 전남 진도 팽목항에서 세월호 실종자 가족이 무사귀환을 바라는 노란 손수건들을 보며 걷고 있다. [중앙포토]

2014년 4월 전남 진도 팽목항에서 세월호 실종자 가족이 무사귀환을 바라는 노란 손수건들을 보며 걷고 있다. [중앙포토]

나: 그때 미디어에 대한 유가족의 시선이 정말 살벌했어요. 일본 기자들은 한국 기자들과 구분이 안되니까, 같은 대접을 받았죠. 유가족에 대해 질문은 커녕 카메라도 못꺼낼 분위기였죠. 정부 발표를 어디까지 믿고 어떻게 취재해야 할 지 우리도 당황스러웠어요.

정: 일본도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후쿠시마 원전사고 때 비슷한 상황을 겪지 않았나요?     

나: 맞아요. 미디어를 믿을 수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했죠. 정부는 계속 괜찮다고만 하고, NHK를 비롯한 매체들도 정부 발표를 중계하기만 했는데, 나중에 위험한 상황이었다는 게 알려졌잖아요. 언론에 대한 불신감이 극에 달했죠. 이후 정부 발표, 언론 보도에 대해 의심부터 하고 보는 이들이 많아졌고. 그 때부터 '마스고미(マスゴミ)'란 말이 확산된 거 같아요.

정: 마스고미?

나: 매스컴(マスコミ, 마스코미) + 쓰레기(ゴミ, 고미) 의 합성어죠. 쓰레기 언론이란 뜻이에요.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때의 폭발 모습 [중앙포토]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때의 폭발 모습 [중앙포토]

정: 쓰레기가 공통적으로 들어가네요. ^^ 선정적이고 과장된 기사에 대한 불만도 상당하죠. 포털에서의 뉴스 소비가 대세가 되면서 매체들 간의 속보 경쟁, 자극적인 제목 경쟁도 심해졌어요. 제목 보고 들어갔더니 내용은 허접하고 제목과 그리 연관도 없고 그럴 때 허탈함을 느끼죠. 또 낚였구나 하고. 그런 게 누적되면서 언론에 대한 불신감이 더욱 커졌죠. 꽤 오래 전인데 한 인터넷매체의 제목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곧 결혼하는 연예인 커플에 대한 기사였는데, '***(여배우), ***(약혼한 남배우)에게 잠자리 선물'이란 제목이었어요. 그런데 그 '잠자리'가 곤충 잠자리였어요.    

나: 푸하하하. 정말 역대급 제목이네요. ^^ 일본은 스포츠 신문이 그런 제목 장사가 심한 편인데, 독자들은 스포츠지 기사는 어느 정도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니까, '당했다'고 느끼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정: 기레기는 기자 개인에, 마스고미는 언론사에 대한 비난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네요. 

나: 마스고미란 말은 특히 '네토우요'(ネトウヨ, 인터넷에서 활동하는 우익성향 사람들)들이 많이 써요. 그들에게 가장 많이 공격받는 매체는 아사히 신문이죠.

정: 일본에서 보니, 아사히 신문은 우익들로부터 당장 폐간해야할 신문으로 공격받던데.

나: 한국 관련 보도에서 비난받는 게 많아요. 한국에 우호적이라는 이유로. 가장 큰 건 위안부 관련보도에요. 아사히 신문은 일제강점기 때 자신이 제주도에서 200여명의 여성을 무리하게 연행해 위안부로 삼았다는 요시다 씨의 증언을 80~90년대 수차례에 걸쳐 보도했는데, 2014년 그의 발언을 뒷받침할 증거를 찾지 못했다며 기사를 공식취소하고 사과했어요. 아사히 신문은 그 부분에 대해서만 사과했는데, 우익들은 위안부의 존재도 아사히 신문이 꾸며낸 허구라고 주장했죠. 우익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도 그런 식으로 비난했고요.

정: 그 때 아사히 신문이 휘청거렸겠네요. 사장도 물러난 것으로 기억하는데. 

나: 네. 구독자가 계속 떨어져 나가니까, 판매국에서 당분간 위안부 관련기사는 쓰지 말아달라고 편집국에 요청하기도 했어요. 아베 정권의 우경화 분위기에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죠.

정: 그 오보 때문에 아사히 신문이 마스고미 취급을 받았군요.

나: 지난해 2월에는 아사히 신문이 모리토모학원 스캔들을 특종 보도해 아베 총리를 곤경에 빠트렸는데, 그 또한 날조기사라고 공격받았어요. (모리토모학원 스캔들: 아베 총리의 부인 아키에 여사와 가까운 사이인 사학재단 모리토모학원이 오사카 국유지를 헐값에 매입하는 과정에서 아베 총리 부부가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 이것과는 다른 차원에서 요미우리 신문이 마스고미란 비판을 받기도 했죠.

정: 어떤 기사 때문인가요?

나: 모리토모 스캔들과 함께 아베 내각 지지율을 끌어내린 가케학원 스캔들에 결정적 증언을 한 마에카와 전 문부과학성 차관이 있었는데, 그의 폭로가 시작된 뒤 요미우리 신문이 그가 '밀회바'(남녀의 은밀한 만남을 주선하는 유흥업소)의 단골이었다고 보도했어요.

정: 정권 비리를 폭로한 사람의 사생활을 들춰내 보도한 거군요.  

나: 네. 비리 폭로와 사생활은 전혀 상관없잖아요. 주간지나 스포츠지에서나 하는 보도를 요미우리 신문이 해서 다들 놀랐고, 그때 요미우리 신문도 마스고미란 비난을 받았어요. 아베 정권과 요미우리 신문이 결탁한 것 아니냐고 의심한 이들도 많았죠.

정: 사실 한국 언론도 그런 비난에서 자유롭지 않죠. 마에카와 전 차관의 사생활 보도와 비슷한 보도가 한국에서도 있었고... 아무튼 마스고미와 기레기의 차이를 보면, 어떤 일에 대한 책임을 개인에게 지우는 한국과, 조직에게 지우는 일본의 문화 차이가 느껴지는 것 같네요. 십자포화같은 비난을 받으면서도 꿋꿋히 버티는 아사히 신문, 맷집이 대단하네요. 적어도 손타쿠 미디어(忖度Media, 권력의 뜻을 알아서 헤아려 권력에 유리한 방향으로만 보도하는 매체)는 아니잖아요. ㅎㅎ

모리토모 스캔들 관련 특종보도한 아사히 신문 [중앙포토]

모리토모 스캔들 관련 특종보도한 아사히 신문 [중앙포토]

나: 아베 정권이 계속 이어지니까 너무 힘들어요. 첨언하자면,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가 아사히신문에게는 정말 잘된 일이었어요. 오보 사태 때문에 위안부 자체가 아사히 신문이 꾸며낸 소설이라고 믿는 이들이 많았는데, 일본 정부가 위안부 합의를 통해 위안부 존재 자체를 인정한 셈이 됐으니까요. 이후엔 어느 누구도 위안부가 아사히 신문이 만들어낸 허구라고는 얘기 못하게 됐죠.

지난 3월 모리토모 스캔들과 관련, 총리 관저 앞에서 '내각 총사퇴'를 촉구하는 시민들 [도쿄 교도=연합뉴스]

지난 3월 모리토모 스캔들과 관련, 총리 관저 앞에서 '내각 총사퇴'를 촉구하는 시민들 [도쿄 교도=연합뉴스]

정: 얼마전 막을 내린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한 기자가 네티즌들로부터 맹비난 받은 일이 있었죠. 한국영화 '곡성'에도 출연했던 일본배우 쿠니무라 준이 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참가했는데, 한 인터넷매체 기자가 기자회견에서 그에게 당시 한일 간 첨예한 갈등사안이었던 일본해상자위대 욱일기 게양문제에 대한 입장을 밝혀달라고 했잖아요.

나: 저도 부산영화제에 갔었는데, 그게 큰 논란거리가 됐어요. 쿠니무라 배우가 욱일기 관련 영화에 출연한 것도 아니고, 정치이슈에 대해 의견을 적극 개진하는 사회파 배우도 아닌데, 그런 질문을 던지는 건 너무 했어요.

이달 5일 부산 해운대구 신세계센텀시티점에서 열린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심사위원 기자회견에서 일본배우 쿠니무라 준이 취재진으로부터 일본 해상자위함의 욱일기 게양과 관련한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이달 5일 부산 해운대구 신세계센텀시티점에서 열린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심사위원 기자회견에서 일본배우 쿠니무라 준이 취재진으로부터 일본 해상자위함의 욱일기 게양과 관련한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정: 맞아요. 영화제라는 잔치에 초청받은 손님에게 뜬금없이 욱일기 질문을 던져 곤혹스럽게 만든 건 적절치 못했어요. 욱일기 문제에 대해 전혀 몰랐던 쿠니무라 배우가 '일본이 한국의 마음을 이해해야 한다'는 원론적 답변을 했는데, 파장이 커지니까 부산영화제 측에서 사과까지 했잖아요. 만약 제 후배가 그런 질문을 했다면 저는 꾸짖었을 것 같아요. 방탄소년단이 일본 공연을 갔는데 기자회견장에서 독도 문제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면 어떻게 답하겠어요? 결과적으로 쿠니무라 준 배우는 한국에 와서 두 번 울었다고 봐요.  

나: 두 번이나?

정: 영화 '곡성' 찍을 때 너무 힘들어서 한 번, 그리고 이번 부산영화제에서 심한 마음고생을 하며 또 한번 울었을 거라는 얘기죠. '곡성' 찍을 때 끊임없이 '한번 더'를 외치는 완벽주의자 나홍진 감독의 집요한 요구에 결국 울음을 터뜨린 건 잘 알려진 얘기잖아요.

영화 '곡성'에 출연한 일본배우 쿠니무라 준

영화 '곡성'에 출연한 일본배우 쿠니무라 준

나: 지금 생각났는데, 2014년 아사히 신문 기자로 부산영화제 취재할 때 데스크로부터 곤혹스런 지시를 받아 힘들었어요.

정: 어떤 지시?

나: 그 때 일본배우 와타나베 켄과 한국배우 문소리가 개막식 사회를 봤는데, 현장에서 한일 관계가 안좋은 와중에도 한국과 일본의 배우가 공동사회를 보는 등 영화제는 좋은 분위기라고 기사를 썼더니, 데스크가 한국 관객이나 영화관계자들 중에는 일본배우가 사회보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 분명 있을 거라며 그걸 취재하라고 지시를 내리더라고요. 데스크에게 '한국 사람들에게 그런 질문 하는 것 자체가 부끄럽다. 도저히 못하겠다'고 했어요. 많이 힘들었던 기억이에요.

정: 영화판에서 유독 그런 일이 많네요. 작년에 영화 '군함도' 개봉전 기자간담회에서도 아사히 신문 서울특파원이 류승완 감독에게 '영화의 몇 프로 정도가 사실인가' '영화가 한일 관계에 영향을 미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나' 라는 질문을 해서 분위기가 '싸'해지기도 했죠. 

나: 그 특파원을 잘 알아요. 한국에서 계속 만들어지는 식민지 배경 영화 때문에 한일 관계가 안좋아질 수 있다고 걱정하는 기자에요. 나중에 들어보니, 본인은 그렇게까지 논란이 될 줄 몰랐대요. 200명 넘는 기자들이 있는 자리에서 손을 들었는데 그렇게 첫번째로 지명될 줄 몰랐고, 당황해서 그런 질문까지 나와버렸다고 하네요.

영화 '군함도'의 스틸컷 [CJ엔터테인먼트]

영화 '군함도'의 스틸컷 [CJ엔터테인먼트]


정: '군함도'가 대작이고 강제징용이라는 예민한 소재의 영화니까 일본특파원 입장에서 그런 궁금증을 가질 순 있겠지만, 질문 받는 류승완 감독 입장에선 당혹스러울 수 있죠. 영화감독이 외교적·정치적 파장까지 고려하며 영화를 만드는 건 아니니까. 정 궁금하면 영화가 개봉하고, 어느 정도 흥행한 뒤에 따로 인터뷰를 하면서 물어보는 게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에요. 

나: 일본 신문은 한국 신문과 달리 기자 개인 이메일이 공개돼있지 않아요. 그래서 독자들로부터 항의메일이 와도 데스크를 통해 전달받죠. 한국 기자들은 공개된 개인 이메일로 독자들과 직접소통할 수 있어 좋지 않나요?

정: 격려 메일이나 제보 메일이 오면 좋지만, 내용없는 악의적인 비난 메일이 올 때도 많아요. 예전에 어떤 유명가수의 새로운 앨범에 대해 비판적인 리뷰를 썼더니, 팬클럽 차원에서 제 이메일에 좌표를 찍었는지, 며칠간 수백여통의 항의·비난 메일이 와서 식겁했어요. 테러 수준이었죠. 요즘도 그런 이메일 폭탄을 받는 기자들이 적지 않다고 하네요. 일본도 마찬가지지만, 언론 보도를 삐딱하게 보고, 의심부터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 같아 아쉬워요.

나: 맞아요. 결국 언론이 더 많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건 그렇고, 그 유명가수는 누구에요?(궁금 궁금)

정: 아,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습니다만... 노 코멘트!  

gojh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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