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개혁 칼 빼든 메르켈 독일 총리 '대처의 길' 따라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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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24일 베를린에서 열린 독일노조총연맹(DGB) 총회에 참석해 노조 개혁을 촉구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노조원들의 야유가 심해 메르켈 총리는 연설을 여러 차례 중단해야 했다. [베를린 로이터=연합]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이끄는 집권 대연정 정부가 연일 노동조합을 두들기고 있다. 사흘간 중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메르켈 총리는 24일 독일노조총연맹(DGB) 총회에 참석해 노조가 요구한 '전업종 공통 최저임금제'를 거부했다.

산업별로 조직된 독일 노조들은 현재 시간당 7.5유로(약 9100원)의 전업종 공통 최저임금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메르켈은 이날 "단일 최저임금은 일자리 창출을 더 어렵게 할 것"이라며 반대했다. 그는 이어 "독일은 글로벌 경쟁에 대비해야 하며, 더 이상 '복지'를 당연하게 여겨선 안 된다"고 말했다. "지금 (개혁을) 하지 않으면 막판엔 쓴맛을 볼 것"이라고까지 했다.

그는 또 "달라진 기업 환경에 맞게 제도를 바꿔야 한다"며 노조의 기업 의사결정 참여 권한을 축소할 것도 촉구했다. 독일에선 노조의 감독이사회 의석이 전체의 3분의 1을 넘는다. 종업원 2000명 이상 회사에선 의석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25일 같은 행사에 참석한 프란츠 뮌테페링 부총리는 한술 더 떴다. "1970년대식 처방은 더 이상 쓸 수 없다. 세상은 수도 없이 바뀌었다"고 했다. 노총 대의원들이 야유를 퍼붓자 "수다만 떨지 말고 행동을 하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보수 노선의 기민당 소속인 메르켈 총리는 지난해 11월 취임 뒤 노동시장 개혁과 복지 혜택 축소를 강조해왔다. 이 때문에 메르켈을 고실업.저성장의 '영국병'을 고친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에 비유하는 사람들도 있다.

메르켈의 단호한 입장에 언론.학계는 성원을 보냈다. 유럽경제연구소(ZEW) 볼프강 프란츠 소장은 "프랑스의 사례에서 보듯 전업종 공통 최저임금제가 도입되면 비숙련 청년근로자의 실업률이 치솟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파이낸셜 타임스(FT)는 26일 사설에서 "메르켈 총리가 고속 성장을 하고 있는 중국을 방문하더니 개혁 의지에 불을 붙인 것 같다"고 평가했다. FT 독일어판과 경제지인 한델스 블라트도 노조의 완강한 태도를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했다.

베를린=유권하 특파원, 서울=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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