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Review] '월드컵 민족주의' 를 퇴장시켜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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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축구장을 보호하라
정윤수 지음, 사회평론
287쪽, 9000원, 2002년 출간

2002년 온 나라를 집단최면과 최루의 상태로 빠뜨렸던 '대~한민국 짜작짜짝짝!'의 감흥을 복기하기에 '축구장을 보호하라'는 썩 괜찮은 선택으로 보인다. 문화평론가이자 축구칼럼니스트인 저자는 2002년 월드컵 전 과정을 밀착마크하면서 인문학적 소양이 엿보이는 문화적 분석을 곁들인다.

그는 축구를 "문명화와 현대성에 의해 거세된 원시적 에너지를 회복하려는 현대인의 욕망"이자 "20세기의 야만이 남긴 대립과 제도의 억압을 벗어나려는 치료제"로 파악한다. 그러므로 그라운드가 '민족주의의 격전장'이 되는 사태를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2002년 4강 신화를 '애국심으로 똘똘 뭉친 한국인'이나 '시민사회의 에너지'로 단순화하지 말라는 당부와 함께.

'자로 잰 듯한 패스''현란한 드리블''전광석화와 같은 슛'등 상투어들과는 뚜렷이 차별되는 뛰어난 문장력은 이 책을 뭇 축구 관련서 중에서 돋보이게 한다. 좋은 예가 대이변으로 기록됐던 월드컵 개막전 부분.

"신은 인간의 오만을 용서하지 않았다. 신은 '바벨탑의 신화'를 꿈꾸는 제국 프랑스를 희롱하기 위해 세네갈을 선택했다. (…) 월드컵 1호 골이 터지는 순간 관중은 현기증을 느낄 틈조차 없었다. 만약 관중의 심박수를 집단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기계가 있었다면 그순간 고장나고 말았을 것이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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