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일자리의 질은 정말로 좋아졌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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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장원석 기자 중앙일보 기자
장원석 경제정책팀 기자

장원석 경제정책팀 기자

최근 정부에서 ‘일자리의 질이 좋아졌다’는 언급이 자주 나온다. 18일 국정감사에 출석한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양적 측면에서 엄중한 상황이지만 일자리의 질이 개선되는 측면은 있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의 입장도 같다.

주장의 근거는 첫째, 상용직 근로자 증가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지난해 1~9월까지 상용직은 325만 명 늘었다. 올해(311만 명)가 더 적다. 정부 말대로 상용직 비중은 약간 늘었다. 그러나 이는 취업자 증가가 정체된 상태에서 임시·일용직의 감소 폭이 더 컸기 때문이지 상용직이 많이 늘어서가 아니다.

애초에 상용직으로 질을 논하는 것 자체도 무리다. 상용직은 1년 이상 일하는 사람일 뿐 정규직이 아니다. 쉽게 말해 아르바이트만 1년 넘게 해도 상용직이다. 상용직 증가를 강조하는 정부는 정작 ‘고용의 질’을 까먹는 단시간 취업자의 급증은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다. 지난해 1~9월 1~35시간 취업자는 165만명 감소했지만, 올해는 816만8000명이나 증가했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둘째, 고용보험 피보험자의 증가다. 더 많은 근로자가 고용안전망의 테두리에 들어온 것이니 긍정적인 일이다. 그런데 올해는 취업자 증가 폭이 급감했는데도 피보험자가 이례적으로 많이 증가했다. 뜯어보면 고용보험 피보험자는 숙박음식·보건복지 등 최저임금의 영향을 받는 근로자 비중이 평균보다 높은 업종에서 두드러지게 늘었다. “질 좋은 일자리가 늘어서가 아니라, 일자리 안정자금을 받으려 새로 가입한 사람이 늘었다”(김태기 단국대 교수)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정부가 줄곧 강조하는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의 증가도 고용의 질과 무관하긴 마찬가지다. 고용의 질을 논하려면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가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로 이동했다는 근거가 필요하다. 이를 뒷받침할 통계는 어디에도 없다. 통계청도 “경제활동인구조사의 자영업자 숫자로 고용의 질 개선 여부를 파악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인정한다. 익명을 원한 한 교수는 “양으론 안 되니 질 타령”이라며 “정부가 숫자 해석에 매몰된 것 자체가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증거”라고 꼬집었다.

무리한 공무원 증원이나 세금으로 만드는 단기 일자리는 근본 대책이 아니다. 정부가 당초 목표(32만명)에서 낮춰 잡은 올해 취업자 증가 목표(18만명)도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일자리 재정으로 50조 원 넘는 혈세를 쓰고도 말이다. ‘고용의 질’을 언급하는 정부의 해명이 당장 욕먹지 않으려는 구차한 변명으로 들리는 이유다.

장원석 경제정책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