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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리&세리키즈' 21년간 2300억 원 벌었다

중앙일보

입력

1998년 7월 7일 새벽(한국시간), 미국 위스콘신주 블랙울프런 골프장.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US여자오픈 연장전 마지막 18번 홀에서 박세리(41ㆍ은퇴)가 드라이버샷을 날렸다. 하지만 공은 연못 쪽으로 굴러가더니 경사가 심한 잡초 속에 묻혀버렸다. 박세리는 잠시 망설이더니 신발과 양말을 벗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침착하게 샷을 날려 공을 안전한 쪽으로 빼냈다.

'맨발의 투혼'

 1998년 US여자오픈에서 맨발의 투혼을 보여준 박세리. [중앙포토]

1998년 US여자오픈에서 맨발의 투혼을 보여준 박세리. [중앙포토]

전 세계에 박세리 이름 석 자를 알린 '사건'이었다. LPGA 투어에 갓 데뷔한 박세리는 이 샷으로 최고 권위의 메이저 골프대회인 US여자오픈 정상에 올랐다. US오픈에 앞서 열린 맥도날드 챔피언십에서 LPGA 첫 우승을 했던 박세리는 여세를 몰아 그해에만 총 4개 대회에서 우승했다.

박세리의 US오픈 우승은 한국 여자골프 전성기의 시작을 알린 '신호탄'이기도 했다. 박세리 이후 많은 한국 여자 선수들이 "나도 박세리처럼 되고 싶다"는 꿈을 안고 LPGA 문을 두드렸다. 박세리를 롤모델로 하는 이들에게는 '세리키즈'라는 별칭이 붙었다. 이들의 활약은 말 그대로 눈 부셨다. 98년 박세리부터 지난 14일 KEB하나은행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전인지(24)까지, 한국 선수들은 LPGA 우승 트로피를 총 169번(국가대항전 제외)이나 들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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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간 169번 우승, 누적 상금은 2억 달러 넘어 

한국선수들의 LPGA 활약상을 정량화해 볼 수 있는 또 다른 척도는 상금이다. LPGA에 따르면 지난 21년간 박세리와 '세리키즈'가 벌어들인 누적 상금은 약 2억448만 달러(약 2321억원, 2018년 10월 18일 환율 기준)에 달한다. 리디아 고(뉴질랜드·107억원), 미셸 위(미국·77억원) 등 해외동포들이 받은 상금까지 더하면 2억4800만 달러(약 2730억원) 이상이다.

지난 7일 인천 잭니클라우스CC에서 열린 2018 UL 인터내셔널 크라운 경기에서 우승한 한국 선수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전인지, 유소연, 김연경, 박성현. 2018.10.7 [UL 인터내셔널 크라운 조직위원회 제공]

지난 7일 인천 잭니클라우스CC에서 열린 2018 UL 인터내셔널 크라운 경기에서 우승한 한국 선수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전인지, 유소연, 김연경, 박성현. 2018.10.7 [UL 인터내셔널 크라운 조직위원회 제공]

LPGA 상금은 대회마다 다르지만 통상 컷오픈 통과자들에게 순위에 따라 차등 지급된다. LPGA는 이중 투어 회원이 공식 대회에서 획득한 상금만 공식 상금(official prize money)으로 집계한다. 초청 선수 자격으로 투어 대회에 참가한 선수들에게 돌아가는 돈은 공식 집계에서 빠진다. 예를 들어 2011년 US여자오픈 정상에 오른 유소연은 우승 상금 58만5000달러(약 6억6000만원)를 받았지만, LPGA 공식 상금 집계에서 빠졌다. 이 때문에 실제 한국 선수들이 받은 상금 총액은 LPGA 집계액을 상회한다.

우승 상금, 한국이 미국보다 66억원 많아

한국 선수들이 받은 상금은 지난 21년 간 지급된 LPGA 총 상금 8억7500만 달러(약 9932억원, 국가대항전 제외)의 약 23%에 해당한다. 박세리가 고군분투한 1998년에는 4%에 불과했다. 박세리의 우승 이후 투어에 참가하는 한국 선수들이 늘면서 비율이 꾸준히 올라갔고, 2010년 35%로 정점을 찍었다.

2010년 한국 선수들은 총 9개 대회에서 우승해 총 1266만 달러(약 144억원)를 챙겼다. 2015년과 지난해에는 15개 대회에서 정상에 올랐다. 우승 상금만 각각 50억원을 넘었다. 지난해에는 박성현이 26억원으로 상금 랭킹 1위에 올랐고, 한국 선수들은 총 1642만 달러(186억원)를 벌었다.

총 상금 가운데 우승 상금만 따로 떼어내 보면 더 대단하다. 총 169번의 우승으로 한국 선수들은 상금 4542만 달러(약 516억원)를 받았다. 이 기간 미국 국적 선수들은 181번 우승해 우승 상금 3963만 달러(약 450억원)를 벌었다. 우승 횟수는 미국이 앞서지만 벌어들인 상금액은 한국이 66억원 더 많다.

국가별 상금 순위 3위는 LPGA 투어 누적 상금 세계 1위 안니카 소렌스탐(256억원)이 버틴 스웨덴이다. 우승 93회, 우승 상금 1832만 달러(약 208억원)로 한국과 미국의 뒤를 잇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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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리 뛰어넘은 박인비

박세리가 데뷔 첫해 벌어들인 상금은 총 87만 달러(약 10억원)였다. 박세리에 이어 김미현·박지은·장정·한희원 등도 주 무대를 LPGA로 옮겼다. LPGA 한국 선수 1세대인 이들은 2000년대 초중반까지 활약하며 외화(外貨)를 벌어들였다. 이후 신지애·최나연·박인비·유소연·전인지·박성현 등이 두각을 나타냈다.

특히 2012년 프로에 데뷔한 박인비는 박세리와 맞먹는 수퍼스타로 성장했다. 1998년 이후 누적 상금을 보면 박인비가 165억원으로 한국 선수 가운데 가장 많다. 세계랭킹에서도 6위다. 박인비보다 누적 상금이 높은 현역 선수는 크리스티 커(3위·222억원·미국), 수잔 페테르센(5위·168억원·노르웨이) 2명뿐이다. 은퇴한 로레나 오초아(4위·169억원·멕시코)를 넘는 건 시간문제다.

박세리는 1998년부터 2016년까지 19년간 365개 대회에 출전해 총 123회 톱 10에 들었고, 25번 우승했다. 총상금은 1258만 달러(약 143억원)다. 19번 우승한 박인비에 비해 6차례 더 정상에 올랐지만, 누적 상금은 22억원 더 적다.

박인비·박세리에 이어 한국 선수 상금랭킹 3위는 2010~11년 4개 대회에서 우승한 최나연(약 122억원), 4위는 2012년 투어에 데뷔해 168개 대회에서 979만 달러(약 98억원)의 상금을 받은 유소연이다. 이어 김인경(105억원)-김미현(98억원)-양희영(96억원)이 순이다.

최근 5년 누적 기록만 놓고 보면 유소연이 723만 달러(약 82억원)로 가장 많다. 2위는 박인비(684만 달러), 3위는 김세영(564만 달러)이다. 지난해 상금왕 박성현은 2년간 369만 달러(약 42억원)를 벌어 한국 선수 중 5위다. KEB하나은행 챔피언십 우승자 전인지는 347만 달러(약 39억원)로 7위에 올랐다.

경기 타는 LPGA 상금   

하지만 전성기가 다른 선수들의 상금액을 단순 비교하긴 힘들다. 1998년 박세리가 US여자오픈 우승으로 받은 상금은 23만5000달러(약 2억6000만원)였던 반면, 2013년 같은 대회에서 우승한 박인비의 상금은 58만5000달러(약 6억6000만원)이었다. 15년 새 상금이 2배 넘게 뛴 것이다.

LPGA 총 상금은 세계 경제의 영향을 받는다. 1998년 이후만 보면 2008년 5270만 달러(약 598억원)로 정점을 찍은 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큰 폭으로 떨어졌다. 스폰서 기업을 구하기 어려워지면서 대회 수, 상금 규모 등이 축소된 탓이다. 2011년의 경우 총 3617만 달러(약 411억원)로 2008년에 비해 187억원이나 줄었다. 하지만 세계 경제가 살아나면서 2012년을 기점으로 다시 증가 추세로 전환했다. 올해 예정된 상금은 역대 최대인 6530만 달러(약 740억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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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배여운 데이터분석가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남녀 평등' 테니스...'남녀 차별' 골프

골프는 테니스와 함께 대표적인 상금 스포츠로 꼽힌다. 한 시즌 동안 전 세계를 돌며 투어 대회를 개최하고, 순위에 따라 선수들에게 상금을 배분한다. 하지만 상금 액수는 차이가 난다. 특히 여자 선수들의 상금 차이가 크다.

여자프로테니스(WTA) 투어 세리나 윌리엄스(미국)은 1998년 첫 투어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이후 총 72개 대회에서 정상에 올랐다. 누적 상금은 8823만 달러(약 1000억원)다. LPGA 투어 누적 상금 1위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 역시 72번 투어 대회에서 우승했지만, 누적 상금은 2257만 달러(256억원)로 윌리엄스의 4분의 1 수준이다. LPGA 누적 상금 8위 박세리(1258만 달러)는 윌리엄스의 7분의 1이다.

테니스는 대회별 남녀 단식 상금이 거의 같다. 과거에는 남자 단식 상금이 높았지만, 1973년 US오픈을 시작으로 메이저 대회 남녀 상금 차별이 사라졌다. 미국 여자 테니스의 전설 빌리 진 킹 등이 남녀 상금 평등을 꾸준히 주장해 거둔 성과다.

하지만 골프는 여전히 남녀 상금 차이가 크다. 메이저 대회인 US오픈의 경우 올해 남자대회 우승 상금이 216만 달러(약 25억원)인데 반해, 여자 대회는 90만 달러(약 10억원)다. LPGA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줄리 잉스터(미국)는 "여성 골프 선수는 언제나 합당하지 않은 대우를 받아왔다. 이 사실이 나를 화나게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1998년부터 21년간 한국 여자 골프 선수들이 번 상금(2억448만 달러)도 미국 메이저리그의 박찬호(8500만 달러)·추신수(1억1000만 달러)·류현진(3600만 달러)의 연봉 합(약 2억3000만 달러)과 비슷한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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