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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이슈] 작지만 큰 젊은 디자이너들의 발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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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간수문전시장 지하를 개조해 만든 패션쇼장. 10~20대의 젊은 관객들이 쇼를 보기 위해 자리를 꽉 채웠다. 쇼는 스트리트 패션을 주로 선보이는 '샐러드볼'.

이간수문전시장 지하를 개조해 만든 패션쇼장. 10~20대의 젊은 관객들이 쇼를 보기 위해 자리를 꽉 채웠다. 쇼는 스트리트 패션을 주로 선보이는 '샐러드볼'.

지난주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가 많은 사람들로 들썩이는 한 주였다. 10월 15일 한국의 대표 디자이너 중 한 명인 우영미 디자이너의 오프닝 쇼로 시작한 2019년 봄·여름 시즌 헤라서울패션위크 때문이다. 하루 방문객 수만 4만~5만명이 넘을 만큼 디자이너·바이어·기자 등 많은 패션업계 관계자와 패션쇼를 관람하려는 사람, 자신의 패션을 뽐내려는 패션피플들로 동대문 일대가 가득 찼다.
 같은 시기, DDP 바로 옆에서는 또 다른 패션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DDP와 제일평화시장 사이에 있는 이간수문 전시장에서 열린 '하이서울 패션쇼'다.
 하이서울패션쇼는 잘 알려지지 않은 신생 쇼다. 지난해 10월 2018 봄여름 시즌을 시작으로 이번이 세 번째다. 짧은 역사도 그렇지만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작은 규모의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들이 대상이다 보니 더 소문이 안 났다. 보통 서울패션위크에 서려면 신진 디자이너가 서는 'GN'(제너레이션 넥스트) 쇼에서 일정 기간 활동한 뒤, 브랜드가 매출 및 인지도 면에서 자리 잡았다고 인정받아야만 '서울컬렉션'이라 불리는 정식 서울패션위크 쇼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

하이서울패션쇼에서 열린 이다은 디자이너의 '블리다' 쇼.

하이서울패션쇼에서 열린 이다은 디자이너의 '블리다' 쇼.

하지만 GN에도 포함되기 힘들 만큼 사업 규모가 작거나 생긴지 얼마 되지 않은 신생 브랜드의 경우는 별도로 자비를 들여 자신의 쇼를 기획하지 않는 한 패션쇼 기회가 없다. 설사 그렇게 쇼를 한다고 해도 매출에 도움이 될 만한 바이어나 홍보에 도움이 될 기자를 부르기엔 한계가 있다. 이 빈틈을 채우기 위해 생겨난 게 바로 하이서울 패션쇼다.
 이 쇼의 주최자는 서울시 산하 기관인 서울산업진흥원이다. 중소기업 지원과 창업 지원 등을 주요 업무로 해온 기관으로 국내 작은 패션 브랜드들을 지원하자는 취지로 2016년 4월 브랜드와 바이어를 연결해주는 쇼룸 지원사업을 시작했다. 쇼룸은 해당 브랜드들의 옷을 항시 이간수문전시장에 전시해 놓고 해외 바이어가 왔을 때 보여주고 대신 판매도 해주는 시스템이다. 이곳의 김용술 책임은 "미국·일본 등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온 패션 비즈니스 형태"라며 "국내에선 중소 브랜드들을 지원하기 위해 시작했다"고 말했다. 현재 하이서울 쇼룸에 소속된 브랜드는 144개다. 모두 온라인을 통한 신청과 오프라인 심사를 거쳐 선별된 브랜드들이다.
 이들이 오프라인 쇼룸에 그치지 않고 이번에 패션쇼를 열게 된 이유는 단순하다. 쇼룸에서 옷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제대로 가치를 알리는 데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이번 쇼에 참가한 브랜드는 20개. 소그·제이초이·소누아·까이에·홀리넘버세븐·프릭스 바이 김태훈·쥬바인·더애쉴린·샐러드볼·슬링스톤·씨-웨어 바이 더 지니어스·아울나인티원·커스텀어스·아브라함케이한글·립언더포인트·쏘리투머치러브·더캄·블랭크·블리다·저스트인스타일이 그 주인공이 됐다. 이들은 10월 16일부터 19일까지 하루 5개씩 순서를 정해 쇼를 개최했다. 서울산업진흥원은 이간수문전시장 지하 공간을 쇼장으로 꾸미고 쇼 연출 및 모델 헤어·메이크업을 지원했다.

인디 디자이너 위한 '하이서울패션쇼' #온라인 기반의 작은 브랜드만 모아 #평소엔 쇼룸 형태로 바이어와 연결

 17일 오후 4시30분에 열린 '샐러드볼' 패션쇼에 직접 찾아가 봤다. 건물 1층 밖에 천막을 쳐 놓고 백스테이지로 사용할 만큼 소박하게 열린 패션쇼였지만 쇼장 내부의 열기는 대단했다. 지하 1층을 개조해 만든 쇼장은 빈 자리 없이 관람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주로 온라인을 기반으로 10~20대에 인기 많은 브랜드이다 보니 쇼 관람객 또한 젊다. 관객들은 쇼가 시작되자 환호와 함께 모델의 작은 동작에도 박수를 치며 쇼를 즐겼다. 대단한 무대 연출이 없어도 패션 사업을 하고 싶어하는 젊은 디자이너와 그가 만든 옷만으로 만족한 시간이었다.

샐러드볼.

샐러드볼.

저스트 인스타일.

저스트 인스타일.

블리다.

블리다.

 쇼를 통해 실질적인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작은 브랜드들이다 보니 여느 패션쇼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하고 파격적인 의상은 없었다. 당장이라도 사서 입을 수 있는 옷들이 대부분인 이유는 쇼가 판매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19일 오후 쇼를 한 '블리다'의 이다은 디자이너는 쇼 직후 바이어와의 미팅이 많이 잡혔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 패션업계는 초저가 혹은 럭셔리, 이렇게 시장이 양분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아주 저렴하게 빨리 만들어 파는 옷이거나, 고가의 수입 브랜드 제품이거나 둘 중 하나여야 팔린다는 얘기다. 중저가로 가격대를 맞춘 많은 국내 패션 브랜드들이 문을 닫거나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게 그 증거다. 한국 패션계가 어려운 이유가 "한국인이 만든 옷을 한국인이 입지 않기 때문"이라는 씁쓸한 이야기도 나온다. 하지만 하이서울 패션쇼를 보면서 마음이 든든해졌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좋아하는 옷을 만들겠다며 작은 천막 사이를 뛰어다니는 젊은 디자이너들 때문이다. 그들에게 힘찬 박수를 보낸다.

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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