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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1심 재판, 직권남용 좁게 해석 … 일반 법감정과 멀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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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6호 04면

조기영

조기영

직권남용죄가 적폐청산의 주무기로 떠오르면서 관련 연구가 뜸했던 법학계에서의 논의도 활발해지고 있다. 조기영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지난 7월 발표한 논문 ‘직권남용과 블랙리스트’는 문화예술계와 사법부 블랙리스트 사건을 정면으로 다룬 첫 연구다. 지난 18일 그에게 최근 부각된 직권남용죄의 쟁점들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블랙리스트 논문 쓴 조기영 교수

‘직무권한’ 해석에 대한 판례의 경향은.
“일관된 것 같지 않다. 과거에는 직무권한이 있느냐 없느냐가 직권남용 유·무죄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최근 법원이 직무권한 안이냐 밖이냐를 지나치게 형식논리적으로 따지는 것 같다. 다스 소송 지원을 맡기기 위해 특정인을 LA총영사로 임명한 것을 직무권한 밖의 일이라고 본 이명박 전 대통령의 1심 재판이 대표적이다.”
최근 해석의 문제점은.
“직권남용죄가 보호하려는 법익은 공무원 직무행위의 공정성이다. 고위 공직자가 지위를 이용해 법정 권한을 넘어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과 직무권한을 행사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정도가 조금 과한 것 중 어떤 것이 더 비난받을 행위인가. 당연히 전자다. 법원이 같은 행위를 강요죄로도 처벌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고려해 해석 범위를 좁힌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지만 일반인의 법감정과는 거리가 있다.”
대법원장 등이 일선 재판에 개입한 게 확인된다면 처벌할 수 있다는 뜻인가.
“재판 독립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대법원장의 소명을 앞세워 재판 개입을 무죄라고 주장하는 건 역설이다. 사법부의 수장인 대법원장은 일선 재판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와 권한을 지녔다고 보는 게 상식적이지 않나.”
문건 작성자를 피해자로 볼 수 있나.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을 기소한 것도 같은 방식에 따른 것이다. 문화예술위원회 등의 실무자를 피해자로 봤다. 자기 의지나 직무에 반하는 업무를 강제당했다면 피해자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화계는 “블랙리스트 집행자들이 어떻게 피해자냐”고 반발했다. 공범과 피해자의 경계가 모호하다.
“솔직히 위계적인 조직에서 어디까지 공범이고 어디서부터 피해자인지 정확한 기준을 제시하기는 어렵다. 얼마나 적극적으로 문제의 행동에 동참했는지 주관적 의사와 정황을 고려해 판단할 문제다. 재판 과정에서 명확한 기준이 제시될 필요가 있다.”
문제의 문건들이 ‘내부용’이라는 주장이 사실이더라도 처벌할 수 있다고 보나.
“내부용이더라도 심의관들의 정상적인 업무 행위라고 볼 수 없기 때문에 부적절한 업무를 강제당한 것이라고 본다. 업무를 맡았던 심의관들이 실제 어떻게 느꼈다고 진술했는지도 중요한 변수다.”

임장혁 기자·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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