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권남용죄가 적폐청산의 주무기로 떠오르면서 관련 연구가 뜸했던 법학계에서의 논의도 활발해지고 있다. 조기영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지난 7월 발표한 논문 ‘직권남용과 블랙리스트’는 문화예술계와 사법부 블랙리스트 사건을 정면으로 다룬 첫 연구다. 지난 18일 그에게 최근 부각된 직권남용죄의 쟁점들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블랙리스트 논문 쓴 조기영 교수
- ‘직무권한’ 해석에 대한 판례의 경향은.
- “일관된 것 같지 않다. 과거에는 직무권한이 있느냐 없느냐가 직권남용 유·무죄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최근 법원이 직무권한 안이냐 밖이냐를 지나치게 형식논리적으로 따지는 것 같다. 다스 소송 지원을 맡기기 위해 특정인을 LA총영사로 임명한 것을 직무권한 밖의 일이라고 본 이명박 전 대통령의 1심 재판이 대표적이다.”
- 최근 해석의 문제점은.
- “직권남용죄가 보호하려는 법익은 공무원 직무행위의 공정성이다. 고위 공직자가 지위를 이용해 법정 권한을 넘어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과 직무권한을 행사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정도가 조금 과한 것 중 어떤 것이 더 비난받을 행위인가. 당연히 전자다. 법원이 같은 행위를 강요죄로도 처벌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고려해 해석 범위를 좁힌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지만 일반인의 법감정과는 거리가 있다.”
- 대법원장 등이 일선 재판에 개입한 게 확인된다면 처벌할 수 있다는 뜻인가.
- “재판 독립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대법원장의 소명을 앞세워 재판 개입을 무죄라고 주장하는 건 역설이다. 사법부의 수장인 대법원장은 일선 재판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와 권한을 지녔다고 보는 게 상식적이지 않나.”
- 문건 작성자를 피해자로 볼 수 있나.
-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을 기소한 것도 같은 방식에 따른 것이다. 문화예술위원회 등의 실무자를 피해자로 봤다. 자기 의지나 직무에 반하는 업무를 강제당했다면 피해자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 문화계는 “블랙리스트 집행자들이 어떻게 피해자냐”고 반발했다. 공범과 피해자의 경계가 모호하다.
- “솔직히 위계적인 조직에서 어디까지 공범이고 어디서부터 피해자인지 정확한 기준을 제시하기는 어렵다. 얼마나 적극적으로 문제의 행동에 동참했는지 주관적 의사와 정황을 고려해 판단할 문제다. 재판 과정에서 명확한 기준이 제시될 필요가 있다.”
- 문제의 문건들이 ‘내부용’이라는 주장이 사실이더라도 처벌할 수 있다고 보나.
- “내부용이더라도 심의관들의 정상적인 업무 행위라고 볼 수 없기 때문에 부적절한 업무를 강제당한 것이라고 본다. 업무를 맡았던 심의관들이 실제 어떻게 느꼈다고 진술했는지도 중요한 변수다.”
임장혁 기자·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