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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GM ‘법인 분리’ 주총서 의결…노조 입구 봉쇄하며 반발

중앙일보

입력

한국GM이 신설 법인을 통해 연구개발(R&D) 부분을 분리하는 안건을 주주총회에서 의결했다. 2대 주주인 산업은행과 노동조합의 강력한 반대에도 법인 분리 계획을 밀어붙이기로 한 것이다.

노조 등 강력 반대했지만 회사는 강행 #비토권 예고한 산은 의결 참여 못해 #법적 대응·파업 등 갈등 장기화될 듯

산은과 노조는 각각 법적 조치와 파업 등을 예고했다. 이에 따라 한국GM은 경영정상화 합의 이후 다섯 달 만에 또다시 격랑에 휩싸이게 됐다.

한국지GM 주주총회가 열린 19일 오후 인천시 부평구 한국GM 부평공장 본사 사장실 주 통로 앞에서 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GM지부 노조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지GM 주주총회가 열린 19일 오후 인천시 부평구 한국GM 부평공장 본사 사장실 주 통로 앞에서 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GM지부 노조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GM은 “연구개발을 전담할 신설법인, ‘GM 테크니컬센터 코리아’의 설립 안건이 오늘(19일) 열린 주총을 통해 의결됐다”며 “향후 법인등기 등 후속 절차를 완료하고 신차개발에 착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앞서 “법인 설립의 근거가 불명확하고 설명이 충분치 않았다”는 이유로 반대 입장을 밝힌 산은 측 대리인은 주총에 참석하지 못해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역시 법인 분리에 반대하는 노조가 부평 본사 3층 출입구 등을 물리적으로 봉쇄하고 사장실 앞에서 농성을 벌이며 강력 대응에 나섰다. 이에 막혀 산은 측 관계자들이 주총에 참석하지 못하는 사이 의결이 이뤄졌을 가능성도 있다. 산은은 구체적인 상황을 파악한 뒤 공식입장을 낼 것으로 보인다.

이동걸 산은 회장은 지난 10일 국정감사에 출석해 “주총에서 비토(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산은은 GM과의 협상을 통해 17개 사항을 주주 85%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특별 결의사항으로 정해놨다.

그러나 주총에서 앞서 일각에선 산은이 가진 주요 의사결정에 대한 거부권이 효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해석도 제기됐다. 법인 신설을 통한 사업 분리가 아예 17개 사항에 포함되지 않거나, 혹은 분리할 사업 규모가 산은이 비토권을 행사할 수 있는 범위 밖에서 이뤄지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다. 산은은 한국GM이 총자산의 10% 이상을 매각ㆍ처분할 때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한국GM 관계자는 “비밀유지협약에 따라 17개 사항의 세부적인 내용을 밝힐 순 없지만, 법인 설립과 사업 분리는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범위에 들어가지 않으며 총자산 10%를 넘지도 않는다”고 주장했다.

노사 임금단체협상이 진행되던 지난 4월 한국GM 부평공장 정문. [인천=연합뉴스]

노사 임금단체협상이 진행되던 지난 4월 한국GM 부평공장 정문. [인천=연합뉴스]

향후 한국GM은 주총 결과에 따라 계획대로 법인 신설 작업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다만 과정이 순탄하진 않을 전망이다. 우선 산은은 법적 대응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산은은 전날 입장문을 통해 “한국GM이 지금처럼 이해관계자에 대한 충분한 설명과 협의 없이 법인 분할을 추진하는 것에 깊은 우려를 갖고 있다”며 “주총 결과를 지켜본 후 후속 법적 대응에 대해 신중하게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먼저 소송을 통해 비토권을 인정받아 법인 분리 작업에 제동을 걸거나, 아예 주총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이나 본안 소송 등을 벌여 법인 설립 자체를 취소하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노조 역시 파업 등 더 강한 카드를 꺼내며 실력행사에 나설 예정이다. 노조는 이미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78%의 동의를 얻었다. 사실상 파업 준비를 마친 것이다. 중앙노동위원회의 쟁의 조정 중단 결정이 내려질 경우 곧장 파업 일정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4월 열린 '전북민중대회'에 참석한 한국GM 노조원들의 모습. [전주=연합뉴스]

지난 4월 열린 '전북민중대회'에 참석한 한국GM 노조원들의 모습. [전주=연합뉴스]

다만 산은과 노조의 입장이 완전히 같지는 않아 상황이 급변할 가능성도 있다. 산은은 법인 분리의 목적과 이에 대한 설명이 충분치 않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을 뿐, “한국 시장 철수를 위한 수순”이라는 주장에 완전히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법인 분리가 경쟁력 제고와 경영정상화에 도움이 된다는 구체적인 근거가 있으면 다시 협의해 볼 수 있다는 입장을 이동걸 회장이 국감에서 밝히기도 했다. 향후 한국GM의 설명을 더 듣고 난 뒤 반대 입장을 철회할 수도 있는 것이다.

반면 노조는 R&D 인력이 분할되고 새 법인에도 노조가 생기면 노조가 둘로 나뉘게 된다. 그렇지 않아도 무급휴직자에 대한 생계비를 회사와 함께 지급해야 하는 상황에서, 협상력이 약해질 수도 있다. 노조 입장에선 이미 정부와 정상화 합의까지 한 한국GM이 국내 시장에서 철수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더라도, 신설 법인을 반대해야 할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사측이 법인 설립을 계획대로 진행하더라도 마찰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또한 소송에 돌입하면 법인 설립과 소송이 동시에 진행되며 사태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GM 관계자는 "산은·노조 등이 납득할 수 있도록 계속 설득하면서 법인등기 등 절차를 함께 진행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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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민 기자 yunj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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