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주노동자 “정규직 안 해도 좋다…죽지만 않게 해 달라”

중앙일보

입력

“정규직 안 해도 좋습니다. 더 이상 죽지만 않으면 좋겠습니다.”

비정규직 근로자 신분인 이태성 한국발전산업노동조합 한전산업개발 발전지부 사무처장이 이 같이 말하며 눈물로 호소하자 국정감사장은 숙연해졌다.

이 사무처장은 18일 열린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참고인으로 출석해 화력발전사들이 재해 발생 위험이 높은 업무를 하청업체에 떠넘기는 ‘위험의 외주화’ 행태를 고발했다.

이 사무처장은 “최근에도 사실 동료 하나를 잃었다”며 “점심시간에 무리하게 작업을 하다 머리가 파열돼 협력회사 간부 차를 타고 가다가 한 시간 만에 사망했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는 “더 슬픈 건 그가 죽은 자리에 ‘원인: 작업 안전수칙 미준수, 조치결과: 사건 조사 후 징계 및 과태료’라는 표지판이 세워졌다는 것”며 “저는 사람이 죽어도 잘잘못을 가리고 징계하고 과태료를 부과하는 대한민국 공공기관 화력발전소에서 일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 사무처장은 “업무지시는 발전사에서 직접 받지만,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용역 계약 기준에 감점을 준다. 그렇기 때문에 협력업체는 안전사고가 발생해도, 사람이 죽어 나가도 그것을 숨기는 구조로 바뀔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5600명의 노동자가 매일 죽음을 걱정하면서 일하고 있다. 정규직 안 해도 좋다. 제발 죽지 않고 일하게 해 달라. 더는 옆에서 죽는 동료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고 말한 뒤 자리에 앉았다.

참고인 출석은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의원의 요구로 이뤄졌다.

국정감사에서 증인에게 질문하는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 [뉴스1]

국정감사에서 증인에게 질문하는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 [뉴스1]

우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한국전력과 한국수력원자력, 화력발전 5개사 등 7개 전력기관의 재해자 대부분이 외주협력업체였다. 한전 전체 재해자 중 협력업체 노동자는 95.7%를 차지했고, 한수원은 91.7%, 남동발전은 89.8%, 서부발전은 95.5%, 중부발전은 97.4%, 동서발전은 97.9%에 달했다. 특히 남부발전은 모든 재해자가 협력업체 소속이었다.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