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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만의 새 루트 찾겠다던 선구자"…히말라야 원정대 추모 발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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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히말라야 구르자히말 등반 중 사고로 사망한 故김창호 대장 등 5명의 시신이 17일 오전 인천공항을 통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들을 추모하는 합동 분향소가 김 대장의 모교인 서울시립대 대강당에 차려졌다. 이날 오전 분향소에는 고인들을 아끼던 지인들과 산악인, 서울시립대 교직원 및 학생들의 추모 발길이 이어졌다.

17일 오전 서울시립대에 마련된 '구르자히말 원정대' 합동 분향소. 김정연 기자

17일 오전 서울시립대에 마련된 '구르자히말 원정대' 합동 분향소. 김정연 기자

사망한 5명의 산악인을 생전에 알고 지냈던 지인들은 하나같이 "너무 아까운 사람"이라는 말을 했다. 이날 분향소의 첫 조문객이자 사고 초반부터 수습을 지켜본 아시아산악연맹 이인정 회장은 “다들 너무 좋은 사람이고, 말도 못하겠다. 잠을 못잔다”며 슬픈 심경을 전했다. 이 회장은 김 대장의 결혼식 때 주례도 섰을 만큼 가까운 사이라고 했다. “거의 양아들이다. 자식을 잃은 거나 다름없다. 떠나기 전에 전화로 '시간이 없어서 용돈도 받으러 가기도 힘듭니다, 다녀오겠습니다'  그랬는데…“라며 그는 한숨을 쉬었다.

오전에 빈소를 찾은 동북아공동체연구재단 이승률 이사장은 조문 내내 눈가가 촉촉했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원정 전에 전화와서는 ‘남북관계가 잘 풀리면, 남북 청년 산악인 연합으로 에베레스트 같이 가자’고 하더니, 그냥 가버렸네”라고 전했다.

“실력‧인성 탑인 대원들…한국 산악계 큰 슬픔, 오래갈 것”

지난달 28일 인천공항, '2018 코리안웨이 구르자히말' 원정대가 네팔로 떠나기 직전 기념촬여을 위해 포즈를 취했다. 왼쪽부터 임일진 감독, 유영직 대원, 김창호 대장, 이재훈 대원. [사진 원정대 제공]

지난달 28일 인천공항, '2018 코리안웨이 구르자히말' 원정대가 네팔로 떠나기 직전 기념촬여을 위해 포즈를 취했다. 왼쪽부터 임일진 감독, 유영직 대원, 김창호 대장, 이재훈 대원. [사진 원정대 제공]

“다정다감하고 똑똑한 사람이었다. 선배들에게도 잘하고, 후배들도 다독거릴 수 있는 사람.인성, 지성 다 갖춘 사람." 한국산서회 허재을 총무는 김 대장을 이렇게 표현하며 “대원 4명 다 실력‧인성 우리나라 톱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더 아파하는 거고... 대한민국 산악계의 큰 슬픔이다. 이 슬픔은 오래갈 것 같다”고 전했다. 그는 “선구자가 얼마나 힘든데, 김 대장은 ‘왜 우리가 외국 사람들이 만든 루트만 따르나’ 하면서 새 루트를 찾은 거다”고도 했다. 이인정 회장은 “김창호같은 친구는 앞으로도 나타나기 힘들다. 젊은 나이에 실력도 그렇고, 주위 친구들에게도 아주 존경받는 사람이고…. 산악계의 충격 정도라는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말했다.

네팔 원정에서 사망한 김창호 대장과 원정대원 합동분향소가 차려진 서울시립대학교에서 17일 조문객들이 조문하고 있다. 사진 강정현 기자

네팔 원정에서 사망한 김창호 대장과 원정대원 합동분향소가 차려진 서울시립대학교에서 17일 조문객들이 조문하고 있다. 사진 강정현 기자

임일진 감독에 대한 추모도 쏟아졌다. 생전 김 대장 및 대원들을 잘 알고 지냈다는 한국 산서회 안일수 부회장은 “임일진 감독은 이번에 네팔 가기 얼마 전에 ‘만나자’ 했는데 결국 못 봤다. ‘갔다와서 술먹자, 다녀와서 산서회 가입할게요’ 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대학산악연맹 일을 하면서 임 감독을 알게 됐다는 김영광 사무국장도 “정말 좋은 분이었다. 마음이 많이 쓰인다. 아이디어가 많아서 진행하려는 프로젝트가 많았는데…큰 의미가 있겠나 이제 와서”라며 허탈함을 표했다.

이번 사고를 ‘피할 수도 있었던’ 사람들도 있어 더 안타까움을 더했다. 등반대원이 아니었지만 응원차 베이스캠프를 찾았다가 사고를 당한 故정준모 한국산악회 이사는 등반 당시 함께 올라가던 사람이 1명 있었다. 그러나 동행은 체력 저하로 베이스캠프에 도달하지 못하고 중간에 내려갔고, 정 이사 홀로 베이스캠프에 도착해 대원들을 만났다고 했다. 임 감독도 원래 원정대원에 포함돼있지 않았지만, 9월에 ‘산악 다큐영화 후원’이 들어와서 출발 직전에야 김 대장의 등반에 합류했다고 한다.

"같이 네팔에 가자고 하셨는데요!" 셰르파의 방명록

181017 서울시립대 합동분향소에 네팔인 셰르파가 남긴 방명록. 김정연 기자

181017 서울시립대 합동분향소에 네팔인 셰르파가 남긴 방명록. 김정연 기자

분향소 방명록에는 네팔인 셰르파가 '같이 네팔에 가자고 하셨는데요! 못 가서 아쉽습니다. NAMASTE(네팔에서 쓰는 인사말)'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이날 합동분향소에는 시립대 관계자와 학생들도 꾸준히 찾아왔다.
서울시립대 기획처장 남진 교수는 이날 오전 9시쯤 직원들과 함께 조문을 했다. 그는 “김 대장님은 워낙 학교를 많이 도와주셨다. 특강으로 도전정신도 전해주셨고, 정도 많으시고. 그에 비해 저희가 해드린 게 많이 없어서 죄송하다”며 김 대장이 생전 모교인 서울시립대를 위해 많은 도움을 준 것에 대해 고마움을 표시했다.

산악인 김홍빈(54)씨는 2002년부터 김 대장을 알았고, 2007년 김 대장과 함께 에베레스트를 같이 등반했던 인연으로 분향소를 찾았다. 그는 “작년에 낭가파르밧 등반 때 길을 못 찾아서 급하게 전화를 했었다. 그때가 한국 시간으로 새벽이었는데도 전화를 받아서 자세히 알려줬던 기억이 있다”며 김 대장을 추억했다. 그는 “유영직 대원과는 올 봄에도 안나푸르나 정상 다녀왔는데, 뜻밖의 비보 들으니 억장이 무너지는 게 아니라 모든 실타래가 엉킨 것 같다”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수업 듣는 학생 전체가 조문을 온 경우도 있었다. 교통공학과 학생 문태한(23)씨는 "전산 수업 시간인데, 교수님과 함께 다같이 조의를 표하러 왔다. 선배님이시라 좀 더 감정이입이 되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좋은 일을 하다 가셔서 더 마음이 아프다"고 전했다.

이날 분향소에는 문재인 대통령, 이낙연 국무총리, 강경화 외교부장관도 조화를 보내왔다. 이재오 전 의원도 김 대장과의 인연으로 분향소를 찾아 “출국 며칠 전에 통화하면서 ‘갔다와서 라이딩하자’고, 이번에는 약속을 단단히 했는데”라며 눈물을 훔쳤다. 시립대에 마련된 합동분향소는 19 정오까지 운영되며, 19일 오후 2시에 영결식이 있을 예정이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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