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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도를 넘은 통일부 장관의 대북 저자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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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지난 15일 판문점 남측 구역 평화의집에서 열린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이선권 조국평화통일(조평통)위원장에게 보인 태도는 ‘북한 눈치 보기와 대북 저자세의 전형’이란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이선권이 “바로잡을 문제들이 있다. 남측이 더 잘 알 거다. 연말까지 분투하길 기대한다”고 하자 조 장관은 “말씀주신 대로 역지사지하며 풀어가겠다”고 했다.

북한의 이선권은 열흘 전 평양에서 열린 회의에 조 장관이 2~3분쯤 늦자 “단장(조 장관)부터 앞장서야지”라며 면박을 주기도 했다. 조 장관이 “시계가 고장난 때문”이라고 해명하자 “시계도 주인을 닮아서 그렇게(늦네)”라며 재차 핀잔을 줬다. 조 장관은 대꾸 한마디 못하고 넘어갔다. 이쯤 되니 “통일부 장관이 조평통 사무관이냐”는 야당의 비판을 받는 것이다.

조 장관이 15일 고위급회담 개최 직전 돌연 탈북민 출신 기자의 취재를 불허한 것도 마찬가지다. 북측의 공식 요구도 없었는데 우리 지역에서 열리는 남북회담에 정부가 특정 기자 취재를 배제한 건 전례를 찾을 수 없는 언론 자유 침해다. 탈북자 보호가 핵심 업무인 통일부 장관이 북측의 심기를 미리 헤아려 손수 탈북민 기자의 취재를 막았다는 점에서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이러니 통일부 출입 49개사 기자들이 소속 매체와 이념적 성향을 초월해 한목소리로 비판 성명을 내고, 야당이 “조 장관은 즉각 사퇴하라”며 목소리를 높이는 것 아닌가.

조 장관은 대한민국의 통일부 장관이다. 남북대화가 아무리 중요해도 지켜야 할 원칙과 금도가 있다. 북측의 외교 무례와 과도한 요구는 단호하게 일축하고, 인권과 언론 자유 등 우리 공동체의 근본 가치를 지키면서 남북대화를 해나가야 할 것이다. 북측의 비위를 맞춘다고 이런 원칙들마저 내팽개친다면, 그런 장관은 우리에게 필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