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이해찬 ‘50년 집권론’ 거침없이 하이킥, 약 될까 독 될까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605호 10면

지난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고위 당·정·청 협의회에서 이낙연 국무총리가 기념촬영을 마친 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참석자들을 회의장으로 안내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태년 민주당 정책위의장, 이 총리, 이 대표,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연합뉴스]

지난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고위 당·정·청 협의회에서 이낙연 국무총리가 기념촬영을 마친 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참석자들을 회의장으로 안내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태년 민주당 정책위의장, 이 총리, 이 대표,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연합뉴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행보가 연일 정가의 화제다. 취임 일성으로 20년 집권을 선언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집권 목표를 50년으로 늘려 잡았다. 이달 초 방북길에선 여권 내에서 사실상 금기시되던 국가보안법 개정 문제까지 거론하고 나섰다. 집권 여당 대표가 된 지 50일 만에 여야 공방의 중심에 선 모양새다. 야당의 강한 반발도 아랑곳하지 않는 그의 발언은 노무현 정부 때 책임총리를 맡아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과 사사건건 충동을 빚던 14년 전 상황과도 오버랩되고 있다.

국보법·장기집권 이슈 잇따라 제기 #“계산된 발언” vs “너무 나갔다” 공방 #이 대표 측 “정국 주도권 쥐려는 포석” #노무현 정부 때와 달리 완급 조절 #청와대, 여당과 역할 분담 기대 속 #“너무 튀면 오히려 역효과” 우려도

정치권에서는 그의 ‘소신 행보’가 약이 될지, 독이 될지를 둘러싸고 의견이 분분하다. 한편에서는 노회한 정치인이 집권 여당의 스피커를 자처하며 계산된 발언을 이어가는 것으로 보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그의 거침없는 발언이 결국엔 문재인 정부에 짐이 될 것이란 우려도 만만찮다. 과연 이 대표의 의도는 뭔지, 청와대는 어떤 입장인지, 야당은 그의 행보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이 대표의 발언록을 중심으로 짚어봤다.

“ 20년 연속 집권 위한 작업 시작할 것 ”(8월 25일) → “ 민주당이 대통령 열 분은 더 당선시켜야 ”(9월 17일) → “ 살아 있는 한 절대 정권을 안 뺏기게 단단히 마음 먹고 있다”(10월 5일) 

이 같은 일련의 언급에서도 나타나듯 이 대표의 발언 수위는 매달 한 단계씩 상승했다. 20년 집권론만으로도 충분히 논란거리인데 금세 대통령 열 명으로 확대시켰다. 5년 단임제가 지속된다고 가정하면 50년, 이른바 ‘50년 집권론’이다. 평양을 방문해서는 아예 정권을 뺏기지 않겠다며 결기를 다졌다.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작심 발언으로 해석되는 이유다.

이 대표 측근은 “정치권 이슈를 선점해 정국의 주도권을 쥐면서 자연스레 여당의 존재감을 확보하려는 포석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정치는 말로 이뤄지는 행위인 만큼 선제적으로 화두를 던진 뒤 상대방의 반응을 이끌어내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원하는 방향으로 국면을 이끌어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게 이 대표의 판단이란 설명이다. 바둑으로 치면 ‘정치 9단’으로 선수(先手)를 쥐는 게 전투의 핵심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는 “노무현 정부 때의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이 대표의 의지가 담겨 있다는 게 주변 측근들의 공통된 전언이다. 평소 이 대표는 2004년 총선 때 노무현 대통령 탄핵 후폭풍으로 열린우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했음에도 이후 ‘4대 개혁입법’(국가보안법·사학법·과거사진상규명법·언론개혁법) 처리 과정에서 무기력한 모습으로 일관하며 결국 정권에 치명타를 안겨줬던 쓰라린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당시 책임총리를 맡아 여야 공방의 최전선에 섰던 그는 정권의 성공을 위해서는 ‘강한 여당’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했다고 한다.

지난 8월 민주당 대표 경선에서 이 대표가 고령과 건강 논란에도 불구하고 무난히 당선될 수 있었던 것도 강력하고 힘 있는 집권 여당에 대한 지지층의 바람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경선 당시 친문 커뮤니티에서도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뒷받침할 수 있는 강한 여당이 최대 화두였다. 실제로 이들 친문 지지층의 강력한 지원은 최근 이 대표의 소신 행보를 지탱해주는 주된 힘이 되고 있다.

“판문점선언 국회 비준 빠른 시일 내 이뤄져야 ”(10월 1일) → “국가보안법 어떻게 할지 논의해야 ”(10월 5일) → “평양 공동선언 가시적 성과 도출에 당·정·청 역량 집중할 때 ”(10월 8일) 

이달 들어 이 대표의 발언이 북한 문제에 집중되는 것도 다분히 전략적 포석의 일환이라고 한다. 한 참모는 “평양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협상 재개 등으로 국내외 관심사가 온통 북한 문제에 집중돼 있는 만큼 최대 이슈에서 선제적으로 발언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가 다시 당의 전면에 나서기로 결심한 것도 북핵 문제 해결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고자 하는 바람이 컸다는 후문이다. 지난 1월 문익환 목사 24주기 추도식에서 이 대표가 “문 목사의 못다 이룬 꿈을 꼭 이루겠다”고 다짐했을 때 측근들은 이미 대표 출마 결심이 섰음을 직감했다고 한다.

청와대와 역할 분담도 주목되는 부분이다. 이 대표는 지난달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국회의장단 방북 초청 논란을 빚자 “지금처럼 청와대와 국회가 직접 맞닥뜨리게 놔둬선 곤란하다”며 직접 총대를 메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또 다른 측근은 “노무현 정부 때 책임총리로 대통령의 보호막을 자처했던 역할을 문재인 정부에서는 집권당 대표로서 떠안으려는 의중이 담겨 있다고 보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 대표는 더 나아가 경제 문제도 적극 챙기겠다는 입장이다. 지난 8일 고위 당·정·청 협의회가 상징적인 자리였다. 이날 이 대표는 평양 정상회담 후속 조치를 논의한 데 이어 “고용 문제에서 당·정·청이 긴장감을 갖고 실질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문했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 경제 투톱을 앞에 두고서다. 이는 이 대표가 최근 사석에서 “북한과 경제 이슈가 올 연말까진 지금 흐름대로 가겠지만 내년 집권 3년 차엔 고비를 맞게 될 것”이라며 “결국 경제가 관건인 만큼 미리 대비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수차례 강조한 것과도 일맥상통하는 모습이다.

“국보법은 북·미가 평화협정을 맺는 단계가 돼야 얘기할 수 있어. 제도 개선 먼저 논의하면 본말 전도돼” “20년 집권론 강조했는데, 내가 앞으로 20년 살겠느냐”(이상 10월 9일) 

문제는 ‘과유불급’이란 단어가 이 대표에게 늘 따라다닌다는 점이다. 노무현 정부 때도 당시 이 총리의 3·1절 골프 사실이 알려지자 단단히 벼르고 있던 야당이 “당력을 총집중해 반드시 물러나게 할 것”이라고 공언할 정도였다. 그만큼 야당과 구원(舊怨)이 깊은 그가 이번에도 괜한 분란만 야기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범여권 내에 폭넓게 퍼져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지난 9일 이 대표의 발언은 이런 의미에서 일종의 ‘치고 빠지기’ 성격이 짙다고 할 수 있다. 한 핵심 참모는 “이 대표는 평소 경중·완급·선후에 늘 신경 써야 하며, 이걸 잘해야 유능한 정치인이라고 강조해 왔다”며 “이번에 한발 물러선 것도 완급 조절 차원으로 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좀처럼 소신을 굽히지 않는 완고한 스타일로 알려진 그이지만 노무현 정부의 쇠락과 문재인 정부의 등장을 지켜보며 ‘버럭’ 기질을 상당 부분 완화했다는 주장이다.

노 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의 스타일 차이도 이 대표가 신경 쓰는 부분이다. 이 대표와 가까운 여권 인사는 “노 전 대통령은 일단 지르고 보는 승부사 기질이 강했다면 문 대통령은 그 누구보다 ‘디테일’에 강하고 그런 만큼 실수도 적어 이 대표가 나서야 할 경우가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더욱이 한국의 대통령제는 청와대가 정국을 주도하는 구조인 만큼 오히려 여당 대표가 너무 튀면 불협화음만 낳기 쉽다”며 “이 대표도 이런 정치 지형을 잘 인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장기집권 발언 논란에 이어 국보법 논쟁까지 불거지자 “이 대표가 본래 성격을 억누르지 못하는 것 아니냐” “국보법 발언은 누가 봐도 오버한 것”이란 비판이 커지고 있다. 민주당 재선 의원은 “개혁 과제를 구체화하려면 국회 입법이 중요한데, 이 대표의 설화가 이어지면 자칫 여야 협치가 난관에 봉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도대체 어느 나라 집권당 대표냐”(10월 8일) “민주당의 홍준표가 돼 가는 것 같다”(10월 10일) “힘 있는 여당 잘 이끌어주면 좋지만 불똥이 청와대까지 튀게 하면 곤란 ”(10월 12일) 

야당은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 한편으론 나쁠 게 없다고 보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이 대표가 두는 수를 잘 읽고 대처할 필요가 있다는 신중론도 만만찮다. “도대체 어느 나라 집권당 대표냐”고 꼬집은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도 내부적으로는 이미 대응 전략 마련에 나선 상태다. 정두언 전 의원이 “이 대표가 민주당의 홍준표가 돼 가는 것 같다”면서도 “계산에 의한 발언이란 분석도 있다”고 단서를 단 것도 이 같은 야권 기류와 무관치 않다.

청와대는 겉으로는 긍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내부적으론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힘 있는 여당을 이끌며 여의도 정치를 잘 관리해 준다면야 더 바랄 게 있겠느냐”며 “당·청 소통과 역할 분담도 그 어느 때보다 원활히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또 다른 관계자는 “불필요한 갈등을 유발해 불똥이 청와대까지 튀게 하면 곤란하지 않겠느냐. 너무 튀면 되레 역효과만 내기 십상”이라며 우려를 감추지 않았다. “2006년 골프 파동으로 총리를 사퇴하면서 정권의 위기를 불렀던 교훈을 되새겨 수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차기 주자를 둘러싼 미묘한 신경전도 주목 대상이다. 일각에선 “이 대표의 역할 확대를 임 실장 등 청와대 486 인사들이 마뜩잖아 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 대표가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에 넘긴 것도 민감한 사례로 거론된다. 이에 대해 이 대표 측근은 “이 대표가 사심이 없다는 건 문 대통령도, 임 실장도 너무 잘 알고 있다. 지금 이 대표의 관심은 오로지 한반도 평화와 강한 여당에 꽂혀 있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이해찬 대표 취임 후 말말말

이해찬

이해찬

“ 민주정부 20년 연속 집권 위한 당 현대화 작업 시작할 것”
“ 앞으로 민주당이 대통령 열 분은 더 당선시켜야”
“ 판문점선언 국회 비준, 빠른 시일 내 이뤄져야”
“ 내가 살아 있는 한 절대 정권 안 뺏기게 단단히 마음먹고 있다”
"국회 차원에서 국가보안법 등을 어떻게 할지 논의해야”
“ 고용 문제에서 당·정·청이 긴장감 갖고 실질적 대책 마련해야”
“ 북·미가 평화협정 맺는 단계 돼야 국보법 개선 얘기할 수 있어. 제도 개선 먼저 논의하면 본말 전도돼”
“ 20년 집권론 강조했는데, 내가 앞으로 20년 살겠느냐”

박신홍 기자 jbjea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