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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희의 시시각각] 이러니 연애가 될까요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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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5호 34면

양성희 논설위원

양성희 논설위원

여성 연예인은 ‘불법촬영’ 범죄의 주된 먹잇감이다. 1998년 한국 사회를 발칵 흔든 ‘O양 비디오’를 필두로, 여성 연예인의 이름을 딴 유사한 동영상들이 잇따랐다. 대부분 전 남친, 혹은 연인이던 매니저가 유포자다. 헤어진 후 앙심을 품고 퍼뜨리는 일명 ‘리벤지 포르노’다. ‘O양 비디오’ 당시 이를 아무 죄의식 없이 돌려보던 남자들이 주변에도 많았다. 주인공 O씨는 피해자이긴커녕 문란한 사생활을 단죄받으며 한동안 한국을 떠나야 했다. 2001년 또 다른 불법촬영 피해자인 B씨는 공식 기자회견을 열고 눈물로 사죄했다. 역시 피해자 아닌 죄인,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확산되는 개인간 성적 영상물 유포 #디지털 시대가 파괴시킨 인간성의 끝

그에 비해 가수 구하라 사건은 달라진 사회적 분위기를 보여준다. 처음엔 헤어지는 연인의 쌍방폭행으로 알려졌으나 남자친구 최 모 씨가 구하라에게 사적 영상을 두 차례 전송하고, 이를 연예매체에도 제보하려 했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급반전됐다. 비록 동영상이 유출된 것은 아니지만, 결별하는 여자친구에게 그 존재를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협박’이 될 수 있다며 최씨측을 비판하는 여론이 높다. ‘리벤지 포르노’를 엄벌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22만명을 넘겼고, 이를 의식한 듯 최근 법원은 이혼한 부인의 성적 동영상을 유포한 전 남편에게 징역 3년의 법정 최고형을 선고했다.

이참에 ‘리벤지 포르노’라는 표현 자체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마치 피해자가 잘못해서 보복(리벤지)을 당하고, 피해자가 음란물(포르노)에 출연한 듯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해외에서도 아직은 ‘리벤지 포르노’라고 통칭되지만, 여성가족부는 ‘개인간 성적 영상물’이라고 부를 것을 제안하고 있다.

스티브 파인먼의 『복수의 심리학』(2017)에 따르면 “리벤지 포르노 사이트는 3000여개로 추정되며, 피해자의 이름 주소 등 개인정보를 버젓이 노출한 사이트들도 많다.” 또 “전체 인터넷 다운로드의 35%가 음란물이고, 미국에서는 4000만명이 규칙적으로 포르노 사이트에 접속한다.” 2010년 개설된 리벤지 포르노 사이트 ‘이즈  애니원 업(Is Anyone Up)?’은 한때 매주 3만5000여 건의 음란물을 모으고, 매달 30만 달러의 수입을 올리기도 했다. 리벤지 포르노 사이트를 만들고, 동시에 이미지 삭제를 원하는 피해자들을 노린 디지털 장의사 업체를 만들어 이중으로 돈을 챙긴 사례도 많다. 디지털 시대의 끔찍한 초상이다.

한 20대 여성은 “남친이 몰카를 찍을지 의심해야 하니 어디 무서워서 연애할 수 있겠냐”고 털어놨다. 그녀는 “차라리 남자 아닌 여자를 좋아하는 취향이면 맘 편할 것 같다는 농담까지 나돈다”며 “저출산이다, 결혼을 기피한다 말이 많지만 사실은 연애도 안전하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남성들이 무심코 소비하는 ‘국산 야동’의 대부분은 ‘몰카’ 아니면 ‘리벤지 포르노’다. 최근에는 탤런트 신세경과 아이돌 윤보미의 방송 프로그램 촬영장에 몰카가 설치됐다가 발각된 일도 있다. 공공 화장실에서 연인과의 잠자리까지 여성들에게 안전지대는 없는 것이다. 혜화역의 젊은 여성들이 ‘불법촬영 편파수사’를 규탄하며 “내 일상은 너의 포르노가 아니다”라고 외쳤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불법촬영 피해 여성을 돕는 한 활동가는 “일하면서 가장 가슴 아플 때는, 비디오 속 남자는 몰카가 잘 찍히는지 힐끗힐끗 보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여자는 그저 남자를 사랑한다는 표정일 때”라고 말했다. 디지털 시대, 파탄 난 인격의 민낯이 디지털 성범죄다. 강력한 단속·처벌, 유포뿐 아니라 소비하는 것도 범죄라는 인식만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다.

양성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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