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정권 총대 메기보다 본업 충실 밝힌 공정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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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권오승 공정거래위원장이 주목할 만한 발언을 했다. 그는 어제 "과거 공정위는 대기업의 지배구조와 투명성을 강조했지만 앞으로는 그런 얘기를 하지 않을 것이며 개별시장의 독과점을 해소하는 데 초점을 맞추겠다'고 했다. 재벌 때리기의 첨병 역할을 중단하고 공정위 본연의 기능인 경쟁정책에만 주력하겠다는 얘기다. 맞는 말이지만 실행에 옮기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동안 공정위가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과거 공정위는 본업인 소비자 보호와 경쟁 촉진보다 대기업 옥죄기에 치중하느라 본분을 잃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전임 위원장 시절엔 위원장이 재벌 총수들을 불러 어떤 지배구조가 바람직 하다느니, 경영의 투명성이 어떻다느니 하면서 훈시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공정위로서는 재벌들 위에 군림하고 쩔쩔매게 하는 것이 위상을 높이는 일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실은 공정거래 정책의 본 줄기와는 거리가 먼 일이다.

신임 위원장이 이런 구습에서 벗어나 공정위를 제자리로 돌려놓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은 그래서 다행스럽다. 문제는 위원장의 말만으로는 공정위의 행태가 바뀌기 어렵다는 점이다. 공정거래법을 고쳐 대기업 소유.지배구조와 관련된 업무에서 제도적으로 확실히 손을 떼도록 해야 한다. 그러자면 위원장이 직접 나서서 부적절한 업무의 이관을 요청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권 위원장은 또 "아파트 부녀회의 가격담합 등 공정위가 할 수 없는 분야에 개입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다. 공정위가 무분별하게 다른 정책에 동원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차제에 신문시장에 대한 불필요한 개입도 철회하기 바란다.

그는 "출자총액제한제도는 대단히 거칠고 무식한 제도로 예외가 너무 많고 복잡하다"며 "다른 대안을 찾아보겠다"고 했다. 이 제도가 그토록 '거칠고 무식한 재벌 규제'라면 연말까지 기다릴 게 아니라 앞당겨 폐지하는 게 바람직하다. 권 위원장이 과연 소신대로 공정위를 탈바꿈시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