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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공기 진동에 불과한 소리를 문자로 바꾼 경악할 기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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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즉위 600년 다시 보는 세종<중>

노마 히데키

노마 히데키

한글의 특성과 우수성을 인정하는 전문가는 현대 언어학이 태동한 서양에만 있는 게 아니다. 이웃 일본에도 있다. 미술가로 활동하다 방향 전환한 언어학자 노마 히데키(野間秀樹·사진)다.

『한글의 탄생』 쓴 일본인 학자 노마 #“세종, 단순히 현명한 군주 아닌 #극한까지 배우려 했던 거대 지성”

그는 2010년 일본에서 출간한 저서 『한글의 탄생』에서 “기원전 2000년께 지금의 시리아·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시작된 표음문자, 알파벳 로드가 한반도에 이르러 확고한 종언을 선언했다”고 했다. “조선 왕조의 문자가 유라시아의 정상에 우뚝 섰다”고 덧붙였다.

발음기관의 모양을 본떠 글자를 만들었다는 『훈민정음 해례본』의 대목을 언급하며 “경악할 만한 기술(記述)”이라고 하고, 세종은 단순히 현명한 군주가 아니라 배울 수 있는 극한까지 배우려 했던 거대한 지성이었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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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는 e메일 인터뷰에서는 차분한 모습이었다. ‘한글은 가장 발달된 문자인가’라고 묻자 “문자체계의 발달사는 진화론 같은 단선적인 척도로 보지 않는 게 좋다”고 답했다.

한글의 가장 혁신적인 점은.
“마치 논리를 형태화했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지극히 논리적인 구조이면서도 유연한 쓰임을 가능케 한 점이 인상적이다. 글자 모양의 형성도 그렇고, 음절을 초성·중성·종성 그리고 (지금은 사라진) 성조라는 4분법(分法)으로 논리적으로 철저하게 구조화하면서도 실제 쓰임에서는 가로쓰기와 세로쓰기가 가능하게 했다.”
한글 창제 당시 조선의 언어학 수준이 이미 현대 언어학 수준에 도달했다고 썼는데.
“자음과 모음의 형태화, ‘ㄱ’에서 ‘ㅋ’을, ‘ㅁ’에서 ‘ㅂ’을 만든 가획의 원리에서 보이는 변별적 특징 등에 비춰어 볼 때, 훈민정음을 만든 15세기 정음학은 현대 언어학이 도달한 ‘음소’라는 개념에 거의 다다르고 있었고, 또 그 음소를 분석함으로써 얻어진 변별적 특징에까지 접근했던 것 같다.”(※영국의 언어학자 샘슨이 자질(feature)문자라고 지적한 특성에 대한 설명이다.)
1459년 편찬된 보물 제745-11호 『월인석보』 초간본. 즉위 600주년을 맞아 일반에 처음 공개된 세종 관련 문화재 중 하나다. 『석보상절』과 『월인천강지곡』을 합친 것으로, 한자를 먼저 적고 한글로 음을 적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지난 7월 3억5000만원에 구입했다. 12월까지 전시한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1459년 편찬된 보물 제745-11호 『월인석보』 초간본. 즉위 600주년을 맞아 일반에 처음 공개된 세종 관련 문화재 중 하나다. 『석보상절』과 『월인천강지곡』을 합친 것으로, 한자를 먼저 적고 한글로 음을 적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지난 7월 3억5000만원에 구입했다. 12월까지 전시한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영어 알파벳 등에는 한동안 모음 글자가 존재하지 않았다. 반면에 세종은 처음부터 모음 글자를 만들었다.
“역시 정음학이 추구한 고도의 논리성으로부터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직접 만들었다는 친제설은 어떻게 생각하나.
“적어도 기본적인 원리와 구조, 형태는 세종의 사상이라 생각한다. 『훈민정음 해례본』과 『언해본』의 기술을 보면 그런 판단이 나온다.”
미술가로 활동하다 한글의 형태적 측면에 매력을 느껴 언어학자가 됐다고 들었다.
“한국어라는 언어에 관심을 갖고 있다가 나중에 『훈민정음 해례본』을 아주 감명 깊게 읽었다. 책에도 썼듯이 마치 공기진동에 불과했던 소리가 문자로 바뀌는 순간을 엿보는 감동이었다. 그리고 서예에는 전부터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관점에서 한글 서예, 특히 궁체에 주목하고 있었다.”
『한글의 탄생』은 한국과 일본에서 각각 얼마나 팔렸나.
“3만 부씩 팔렸다.”

◆ 특별취재팀=신준봉·김호정·노진호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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