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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택시 승객의 선택권이 최우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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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민상 기자 중앙일보 기자
김민상 사회팀 기자

김민상 사회팀 기자

지난 3월 초 서울 중구 두산타워 앞 도로. 한 승객이 택시에 탄 뒤 “성신여대 쪽으로 가주세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택시 기사는 “반대방향이 빠르니 건너서 타라”고 말했다. 승객은 내려 반대 방향으로 건너갔다. 택시를 이용한 사람들이면 한 번쯤 겪었을 일이다.

그런데 그날 현장엔 서울시 단속반이 있었다. 단속반은 이를 승차거부로 판단해 운전기사에 자격 정지 30일 처분을 내렸다. 기사는 처분이 억울하다며 소송을 냈다. 법원은 어떤 판결을 내렸을까.

답은 “승객에게 한 번 더 물어보라”였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부장 유진현)는 택시기사 김모씨가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서울시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고 7일 밝혔다. 재판부는 “승객에게 ‘건너가서 타는 것이 빠르다’고만 얘기했을 뿐, 조금 돌아가야 하는데 괜찮은지 물어보며 승객에게 선택권을 준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기사가 승객에게 ‘이 택시를 탈지 내려서 반대편 택시를 탈지’ 한 번 더 물었으면 이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다. ‘선택권’이 기사보다는 승객에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한 판결이다.

물론 서울 시내 상황에서 판결이 심하지 않느냐는 지적도 있다. 두산타워 앞에서 성신여대를 가려면 500m 앞인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사거리에서 유턴 신호를 받아야 한다. 오후 10시 차가 밀리는 상황에서 시간은 더 걸릴 수 있다. 택시 기사도 소송에서 “행선지가 반대 방향이라 ‘조금 돌아가야 하는데 괜찮냐’고 물었더니 승객이 ‘건너가서 타겠다’면서 내린 것”이라며 억울해했다.

하지만 판결이 공개되자 온라인에선 “홍대나 강남과 같은 장거리 승객이 타도 기사가 그렇게 유도를 했겠느냐”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서울시에서 지난해 받은 택시 민원 중 승차거부는 6909건이 접수됐다. 전체 택시 민원 중 30.8%에 달한다.

택시를 잡는 애플리케이션이 나오면서 기사들이 단거리 승객을 피하는 경향도 심해지고 있다. 서울 시내 중심가 뒷골목에는 ‘빈차’ 표시등을 끈 채 장거리 승객을 골라잡는 택시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택시 문제를 해결하려면 수요가 몰리는 시간대에 택시를 늘리고 요금을 현실화해야 서비스 질을 올릴 수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법원이 판단한 대로 택시 업계는 ‘선택권은 승객에게 있다’는 원칙을 가장 먼저 지켜야 한다. 고객이 외면하는 서비스는 살아날 수 없다.

김민상 사회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