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한국당, 독한 인적 쇄신만이 살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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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무기력과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자유한국당이 모처럼 인적 쇄신의 칼을 뽑아들었다. 조직강화특위(조강특위)를 가동해 전국의 당협위원장 253명을 일괄 사퇴시킴으로써 대대적인 물갈이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예상대로 쇄신은 첫 삽도 뜨기 전에 거센 역풍에 부딪혔다. 당장 친박 의원들은 4일 “인적 쇄신이 당 분열을 자초해선 안 된다”며 인적 청산 기준을 자체적으로 정해 당에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쇄신의 최우선 타깃으로 지목된 친홍(홍준표)계 당협위원장 60여 명도 “집단행동 불사”를 외치며 반발하고 있다. 당 일각에서 “어차피 내년 2월 전당대회에서 새 대표가 뽑히면 말짱 도루묵이 될 쇄신책”이라며 냉소하는 기류가 상당한 현실도 조강특위에 부담을 안겨주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당의 인적 쇄신은 당의 생존을 위해선 물론 제1 야당의 식물화로 멈춰서다시피 한 정당정치를 부활시키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실현돼야 할 과제다. 따지고 보면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예전 같지 않은 상황에서도 한국당 지지율이 10%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건 바로 지금 쇄신에 반발하고 있는 세력들 탓 아닌가.

한국당은 자신들이 배출한 대통령이 2명이나 감방에 가고, 6·13 지방선거에서 헌정 사상 최악의 참패를 당했는데도 누구 하나 제대로 책임지는 모습을 보인 이가 없었다. 이제라도 한국당 의원들은 기득권과 계파 논리를 초개같이 버리고 재창당 수준의 인적 쇄신에 동참해야만 살길이 열린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당 지도부도 공정하고 예외 없는 인적 청산에 당력을 결집하고, 개혁적이고 젊은 인재들로 라인업을 일신하는 데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럼으로써 민심의 지지를 되찾아 와야 내년 초 당 지도부가 바뀌어도 손댈 수 없는 ‘불가역적 인적 청산’을 이뤄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