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없는 인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6공 정부가 인사에 약하다는 지적이 계속돼왔지만 최근국영업체 이사장 교체 등의 일부인사를 보면 그 지적이 그다지 틀리지 않다는 것을 또 한번 실감케 된다.
최근 일부 국책은행과 국영업체 이사장에는 전직장관, 낙선한 민정당 전 의원들이 대거 임명되고 있고 모 국영업체의 경우 임기중의 사장을 전직장관으로 바꾸면서 이유실명도 없을뿐더러 주무장관이나 부총리 등도 알지 못하는 가운데 인사가 이루어졌다 하여 수근거리는 말이 많았다.
원래 국영업체의 이사장자리는 필요없는 옥상옥격의 자리로 예산낭비를 초래하고 업무추진의 효율성에도 별도움이 안된다는 것이 우리의 견해였고, 사회 각계에서도 그 불용론이 팽배했던 터였다. 실제 이사장제가 도입된 84년 후의 경험은 이런 불용론을 뒷받침했다고 볼수 있고 대부분의 경우 이사장으로 기용된 전 고위 공직자·정치인·예비역 장성 등을 위한 위인설관이었다는 비판을 면치 못했다. 정부가 굳이 이 제도를 존치시키려 한다면 그 업체의 발전에 실질적 기여가 가능한 전문성과 경륜을 가진 인물의 발탁이 있었어야 했는데도 이런 기대도 충족되지 못했다.
6공 정부가 이런 이사장제의 폐단을 시정하기는커녕 새해 들어 다시 그대로 반복하고 있음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5공 때나 마찬가지로 낙선한 민정당의 전 의원들과 지난번 개각에서 물러난 전직장관들을 다시 줄줄이 이사장으로 기용하고 있다. 국영업체의 부담 역시 직·간접적인 국민부담인터에 이사장 자리를 마치 정권의 전리품처럼 여권 인사들의 생계대책이나 소일거리로 활용하는 것 같은 이런 인사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
최근 이뤄진 인사중에도 기록카드의 연령을 고쳐 말썽된 경찰고위간부가 사표를 낸지 며칠만에 도로교통안전협회 이사장으로 임명된 경우도 있었다. 그의 사표를 수리한 것은 일종의 문책성 조치로 보이는데 그래놓고 1주일도 안돼 다른 공직에 임명한 것은 일을 어떻게 하자는 작정인지 어리둥절할 뿐이다.
공직사회의 기강을 세우고 공직자가 소신과 직업정신을 갖고 직무를 수행토록 하는 가장 바탕이 되는 것 중의 하나가 인사의 타당성과 공정성임은 재언할 필요도 없다. 6공 정부가 최근 들어 법질서 확립을 부르짖고 공직자 기강확립을 외해 암행감사반까지 보내고 있지만 원칙없고 객관적 지지를 받기 어려운 인사가 거듭되면 이런 노력은 헛수고가 될 공산이 크다.
지금까지 6공정부가 출범한후 민주화를 내세우고 권위주의 요소의 청산을 외쳤지만 여전히 정부의 청산의지가 의심받고 있는 중요한 한 원인도 인사에 있어 기대가 어긋났기 때문이다. 가령 5공의 거물들은 힘에 부쳐 어떻게 할 수 없었다고 하더라도 정부의 인사권으로 얼마든지 조치가 가능한 일반관료들에 대해서도 6공 정부는 출범후 전혀 민주화 기준이나 5공청산 기준에 의거한 인사를 단행하지 못했다.
그 결과 공직사회에 있어서는 민주화나 5공 청산이 구호로만 맴돌뿐 소수의 고위급만을 제외하고는 그 얼굴이 그 얼굴이고 이런 현상은 6공의 정권적 부담이 되고있음도 사실이다. 여권 내부나 여권의 변두리를 살펴보면 3공 때부터 지금껏 자리를 바꿔가며 등 따습고 배부른 자리를 태평스레 유지하는 상당수 인물군이 있다.
6공 정부는 국영업체 사장이나 이사장 자리뿐 아니라 각종 공직인사에서 보다 시대정신에 부합되고 국민적 공감을 받을 수 있는 인사정책을 가져야 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