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치원의토론이야기(끝)] 영·수도 토론 수업으로 재미 붙여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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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 토론의 목적은 의사결정이나 문제 해결일 따름이다. 바로 '지식 학습'을 위해서도 토론이 효과적임을 놓치고 있다. 이는 사실(지식학습)이 가치(의사결정), 의지(문제 해결)와 더불어 토론의 세 가지 내용 가운데 하나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지식을 습득하는 데 문답이 중요함은 교육의 기본이다.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다. 2학년 때 수학 선생님 한 분께서 도회지에서 부임해 오셨다. 실력이 좋으신 분인데, 건강이 좋지 않아 요양 겸 시골에 오셨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분의 수업방식은 독특했다. 수업시간에 다룰 진도의 범위 안에서 중요한 문제 하나를 뽑고 나서 칠판을 4등분으로 줄을 그어 나누면서 묻는다.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학생, 누구 없나요?" 예습을 해온 학생이라면 누구나 칠판 앞에 설 수 있다. 문제를 푼 4명의 학생들이 제자리에 돌아가고 나서 또 묻는다. "누구의 풀이가 가장 좋은가요? 어느 부분이 틀렸나요?" 이것이 토론식 수학공부의 하나다. 토론은 문답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내 기억대로라면, 그 후 수학을 지겨워하는 친구들의 수가 줄어들었다. 수업시간은 재미있고, 유익하고, 공정했다. '재미, 유익, 공정'은 토론의 성공 여부를 가르는 기준이다.

이런 방법은 어떨까. 영어독해를 예로 들어보자. 우선 다음 시간에 다룰 진도의 범위 안에서 학생들의 예습을 자극하기 위해서는 교사의 질문이 중요하다. "다음 시간에 이런 것을 공부하고자 하는데, 질문을 준비해오세요." 이제 수업시간이 되었다. 교사의 질문은 이어진다. "나는 강의에 앞서 여러분의 질문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질문이 없으면 강의시간이 지루하지 않을까요?" "이런 것은 알고 있나요?" 학생들의 질문을 받아 칠판에 적어나간다. 일종의 브레인스토밍이다. 손 드는 순서에 따라 질문을 적어 나가되 가능하면 많은 학생이 질문에 참여하도록 한다. 아니면 교사가 묻고 싶은 질문을 칠판에 적는다.

칠판에 적힌 질문을 처리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질문 가운데 다른 학생이 대답할 수 있는 것은 없는지 찾아본다. 스스로 해결하면 학생들의 실력향상은 더 잘 된다. 둘째, "누구의 질문이 좋나요?" 비교도 해본다. 셋째, 질문들을 분류한다. 바로 범주화.체계화의 작업이다. 이는 브레인스토밍 후의 마인드맵에 해당한다. 글쓰기의 구성뿐만 아니라 논리적 사고를 위해서도 아주 중요하다. 넷째, 모둠을 편성하여 모둠별로 해결하게 해본다. 활기찬 질문과 대답이 있는 토론식 학습의 '재미, 유익, 공정'을 모든 교실에서 느껴볼 수 있는 날은 언제쯤 가능할까.

강치원 원탁토론아카데미 원장·강원대 교수 (wontak21.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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