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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현 이사장 “김정은, 좀 더 신속과감한 결단 내려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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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8일 오후 평양 중구역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린 제3차 남북정상회담 특별수행들과 김영남 북한 노동당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오른쪽) 면담에 앞서 김 상임위원장이 홍석현 한반도평화만들기 이사장(왼쪽)과 인사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지난달 18일 오후 평양 중구역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린 제3차 남북정상회담 특별수행들과 김영남 북한 노동당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오른쪽) 면담에 앞서 김 상임위원장이 홍석현 한반도평화만들기 이사장(왼쪽)과 인사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지난달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원로자문단의 일원으로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홍석현 한반도 평화 만들기 재단 이사장이 한반도 평화를 위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신속과감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홍 이사장은 4일 보도된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첫 방북을 생각하면 곧 다시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벌써 20년이 됐다”며 1988년 ‘고난의 행군’ 막바지였던 첫 방북과 비교하면 고층 아파트가 즐비한 여명거리 등 북한이 엄청나게 바뀌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홍 이사장은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으로 ‘경제발전에 대한 북한의 열망’을 꼽았다. 그는 “우리가 60~70년대 ‘과학입국’을 강조했던 때처럼 북한 어린아이들이 과학자가 꿈이라고 할 정도로 과학자를 우대하는 분위기였다”며 “과학입국에 관한 열망, 경제발전에 대한 큰 열망이 가장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홍 이사장은 “평양 남북정상회담은 비핵화를 의제화한 것이 성과”라며 “기대를 모두 충족시키지는 못했지만 동창리 미사일 엔진시험장과 발사대를 참관인을 두고 폐기하기로 한 점, 미국의 상응 조치를 전제로 달았지만 영변 핵시설 폐기 용의를 밝힌 점은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좀 더 빨리 ‘시간게임’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조금 더 빨리, 과감한 행동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한다”며 “개인적으로는 북한이 국제사회에 신뢰를 줄 만한 행동을 아직 보여주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해외 반출한다거나 핵무기 몇 개를 해체하는 액션이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홍 이사장은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노벨상 공동 수상에 관해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생각하면 후폭풍도 있다”며 “김 위원장이 경제를 발전시킬 생각이 있다면 근본적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봤다.

홍 이사장은 또 ‘남남갈등’을 우려하며 “통일은 되어야 하지만 지금은 체제문제로 얘기할 때는 아니다. 대북 문제에서 하나의 목소리를 이루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문 대통령을 향해서는 “북한에 가서 열심히 설득한 만큼 야당 지도자, 보수와도 많은 대화를 할 필요가 있다”며 야당을 향해서도 “협조할 것은 협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홍 이사장은 지난해 펴낸『한반도 평화 만들기』에 이은 후속작으로 이달 중순 『한반도 평화 오디세이』(가제)를 출간한다. 홍 이사장은 “남북관계가 급물살 타는 현실을 반영해 남북 화해와 평화 만들기를 위한 실천적이고 구체적인 방안을 정리했다”며 “분량은 짧지만 나름대로 완결성을 기했다”고 소개했다.

홍석현 이사장, 프레시안과 인터뷰 전문

1990년대부터 한반도 문제에 관심을 많이 기울여 왔는데, 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다면?
내가 1974년 스탠퍼드대 대학원생으로 공부할 때, 케임브리지대학의 맑시스트인 조앤 로빈슨 교수가 온 일이 있다. 그 분이 북한을 다녀와서 1964년 발간한 <코리안 미러클>이라는 소책자를 읽고 충격을 받았다. 로빈슨이 말한 코리안 미러클은 대동강의 기적이었다. 한강의 기적은 그 다음이었다. 당시 북한은 정말 못사는 나라인줄로만 알았는데 일인당 소득이 우리보다 높았다는 것(일인당 GDP가 2배)을 알고 쇼크를 받았다. 우리나라보다 잘산다는 북한을 다시 보게 된 첫 번째 계기였다. 남북의 경제력이 역전되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이후였다. 물론 폐쇄경제인 북한 경제는 이후 더 이상 의미 있는 성장이 어려웠다.

두 번째는 내가 원불교 신자인데, 원불교 3대 종법사인 대산 김대거 종법사님이 1986년부터 통일 말씀을 하시면서 관심을 가지라고 했다. 그러다 1994년 만난 김대중 선생이 결정적이었다.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당시 소위 '이부영 조문 파동'이 났을 때, 김대중 선생이 나를 일산 자택으로 불렀다. 이희호 여사 조카인 내 친구와의 연으로 김대중 선생과는 어릴 때부터 오랜 인연이 있었다. 그런 인연으로 편하게 여기셨는지 김대중 선생이 '다른 신문은 몰라도 홍 사장은 공부를 한 사람인데 왜 그렇게 하느냐'면서 서너 시간동안 강의를 하시더라. 그때는 내가 통일에 대한 조예가 깊지 않았을 때였는데, 상당히 깊은 지적 충격을 받았다.

돌아와서 중앙일보 내부적으로 토론을 많이 했다. 당시 한완상 부총리가 물러나고 김영삼 대통령의 대북정책이 강경노선으로 바뀌었을 때인데, 중앙일보는 1995년 초 대북 포용정책에 관한 사설을 내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의아하게 생각했다. 북한 붕괴론이 나올 때였으니 사람들이 큰 관심을 갖지도 않았다.  

예산의 1%를 대북 지원에 쓰자는 제안도 했었는데.
2002년에 '예산 1%' 얘기를 했다. 2008년에도 다시 한 번 했다. 진보 정권 때 내가 던진 화두였다. 당시에 정책화됐으면 계속 살려나갈 수 있었을 텐데, 홍석현이 던진 화두라서 수용하기 어려웠던 게 아닌가 싶다.

1% 예산을 말한 이유가 있다. 선진국들은 ODA(공적개발원조)를 많이 한다. GDP의 0.17%가량 된다. 우리도 한국국제협력단(KOICA)을 통한 지원 금액과 함께 예산의 1% 가량을 적립하면 0.15% 정도 수준은 맞출 수 있을 것으로 계산했다. 먼 나라를 지원하지는 못하더라도 우리 동포인 북한을 위한 적립은 해나가자고 한 것이다. 그런 뜻에서 제안했지만 메아리는 없었다. 그 때 적립하기 시작했으면 지금은 70~80조 원 정도 됐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평양 방문을 함께 하고 돌아왔다. 방북이 처음은 아닌데, 당시와 지금을 비교하자면?
20년만의 두 번째 방북이다. 첫 방북은 1998년이었다. 사석에서 만난 유홍준 교수와 정치적으로는 방북이 안 되니 문화 코드로 접근해보자고 해서 유홍준 교수, 고은 시인, 김주영 소설가와 함께 방북을 했다. 김정일 위원장을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당시 일주일 간 일정을 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다 짜주기도 했다.

첫 방북을 생각하면 곧 다시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벌써 20년이 됐다. 1998년 8월에 처음 갔을 때는 '고난의 행군' 막바지였다. 김치가 없을 정도로 북한이 어려울 때였다. 원로자문단 일원으로 이번에 가보니 엄청나게 바뀌었다. 겉모습만 보면, 50~60층 아파트들이 즐비한 대동강변 려명거리도 그렇고 외관상으로는 주민들 옷차림도 많이 좋아졌다.

특히 경제발전에 대한 북한의 열망이 가장 인상적으로 느껴졌다. 우리가 60~70년대에 '과학입국'을 강조했던 때처럼, 북한 어린아이들이 과학자가 꿈이라고 할 정도로 과학자를 우대하는 분위기였다. 과학자들 덕에 핵이 완성됐다는 생각도 가진 것 같았다. 최근 신문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김책공대 70주년 기념식에서 목례하는 사진을 봤는데, 그만큼 과학입국에 관한 열망, 경제발전에 대한 큰 열망이 가장 인상 깊었다.  

5~6월만 해도 곧 남북관계의 실질적인 진전이 이뤄지고 종전선언도 곧 이룰 수 있을 듯한 분위기였지만, 이번 문 대통령 방북 때도 비핵화가 가장 중요한 의제였다. 이번 방북의 성과와 의미를 평가하자면?
6월 전까지는 기대수준이 굉장히 높았다. 개인적으로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의 합의문이 추상적이어서 기대수준에 미치지 못했다고 본다. 폼페이오 장관이나 트럼프 대통령이 큰소리를 친 것에 비하면 구체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 4.27 판문점 선언보다 진일보한 합의 수준이 나와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고, 북미 정상이 만났다는 상징성 이상으로 진척되지 못했다. 거기서부터 험난한 길이 예고됐다.

이런 상황에서 평양 남북 정상회담은 비핵화를 의제화한 것이 성과다. 물론 평양 정상회담도 기대를 모두 충족시키지는 못했지만, 동창리 미사일 엔진시험장과 발사대를 참관인을 두고 폐지하기로 한 점, 미국의 상응 조치를 전제로 달았지만 영변 핵시설 폐기 용의를 밝힌 점은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본다. 제일 중요한 성과는 교착상태에 빠진 북미 대화를 문 대통령이 재점화한 것이다. 비핵화 과제는 우리도 당사자이지만, 핵심적으로는 북미가 풀어야 할 과제다. 이를 재점화하고 의제에 올려놓은 것은 상당한 성과다.  

트럼프 대통령이라는 독특한 개성 가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간의 톱다운 방식 담판이다. 하지만 싱가포르 회담 이후 실무관료들의 견제나 저항이 있고 미국 내 여론이 좋지 않다.  
미국의 기득권층이나 싱크탱크, 의회 양당, 백악관 내에서조차 북한에 대한 신뢰가 높지 않다. 하지만 톱다운 방식은 북한에게는 최대의 축복이다. 트럼프 같은 성향을 가진 대통령이 아니라면 여기까지 오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북한도 그런 인식 가지고 있다고 본다.

다만 북한이 좀 더 빨리 '시간게임'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오랜 세월에 거쳐서 체결한 이란 핵 협정마저 파기한 미국을 믿지 못하는 북한 입장도 이해는 된다. 하지만 조금 더 빨리, 과감한 행동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이 있다.

북한은 미국이 취한 조치는 한미 연합훈련 중단 하나밖에 없는 반면, 풍계리 실험장 폐쇄 조치 등은 불가역적인 조치 아니냐고 반발한다.
인식의 차이다. 북한 주장이 논리적으로는 틀리지 않다. 북한의 조치는 불가역적이고 미국의 조치는 가역적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초강대국의 대통령이 아무런 조건 없이 김 위원장을 만나줬다. 이로 인해 얻은 김정은 위원장의 정치적 자산은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것이다.  
단계적 동시적 해법도 중요하지만 미국과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상 차이도 있으니 북한이 반 발짝은 앞서 나가야 한다는 얘기인가?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는 전문가들의 참관 없이 기자들만 참여했다. 미국 입장에선 비핵화 행동에 들어갔다고 인정할 수 없는 조치다. 또한 나름대로 핵 개발에 이유가 있었더라도,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한 건 북한이다. 비핵화는 미국 뿐 아니라 국제사회의 문제라는 의미다.

개인적으로는 북한이 국제사회에 신뢰를 줄만한 행동을 아직 보여주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북한은 논리적으로 문제제기를 할 수 있다. 수긍할 만한 점도 있다. 하지만 싱가포르 회담의 의미를 되새기고, 남한 대통령이 우호적인 이 타이밍을 살려서 행동을 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프런트 로딩'이 필요하다.

북한 핵무기 숫자와 관련해서, 많게 보는 사람들은 65개 정도로 보고, 북한은 10~20개라고 주장한다. 북핵 전문가인 지그프리드 해커 박사는 25~30개라고 추정한다. 35개 전후라고 봐도 상당한 양이다. 북한을 의심하는 사람들 입장에선 지금까지 북한이 비핵화 행동을 했다고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핵물질 신고를 하는 것도 쉽지 않다고 한다. 미국이 리스트를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신고를 다 할 수도 없고 반쯤만 하면 거짓말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프런트 로딩의 의미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해외 반출한다거나 핵무기 몇 개를 해체하는 액션이 있어야 한다.  

해커 박사는 비핵화에 시간이 필요하다고 본다. 처음부터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해커 박사는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 내 완전한 비핵화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래서 오히려 북한이 국제사회와 신뢰를 쌓아가는 반보의 행동이 필요한 것 아닌가 싶다. 국제사회는 지금까지 조치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비핵화를 위해 북한이 취할 수 있는 성의 있는 조치를 보다 구체적으로 제언한다면?
구체적 방안까지 내가 언급할 수는 없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과 시간게임을 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행동을 지렛대로 미국의 조야를 설득하면서 반 발, 한 발 나아갈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줘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과 사랑에 빠졌다'고 긍정적인 메시지를 보내고 있지만 행동으로 구체화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리용호 외무상의 유엔총회 연설은 터프해 보였지만, 기본적으로 김정은 위원장을 비롯해 북한 리더들이 지금처럼 살 수 없다고 절감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국제사회를 움직여야 가능하다는 것을 안다는 뜻이다.

북한 인사들이 방북 기업인들을 최고 VIP처럼 대접하는 것을 보면서 정말로 경제를 발전시켜보고 싶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쇠도 뜨거울 때 두드려야 하듯이 남쪽에 우호적인 정부가 들어서있고 다들 도와주고 싶어 하니 프런트 로딩이든 사찰이든 신고든 적어도 트럼프 대통령 마음을 움직일만한 진정성 있는 행동이 필요하다.  

북한 입장에선 비핵화 추가조치에 상응하는 조치로 제재해제를 바라는 것 같다.
제재 해제가 가장 크다. 중국, 러시아가 사실상 부분적 해제를 하고 있다고 해도 의미 있는 제재 해제가 일어나려면 트럼프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정치적 부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싱가포르 회담처럼 하지는 못할 것이다. 북한의 행동을 약속 받고 실천에 들어가야 회담도 가능하다. 구체적 비핵화 조치가 약속되지 않으면 2차 정상회담은 무산될 것으로 본다. 2차 정상회담까지 가서도 대북 제재가 완화되지 않으면 북한으로서도 허탈할 것이다. 중요한 때인 만큼 김정은 위원장이 파격적인 결단을 내려야 한다.  
싱가포르 선언의 요지는 신뢰를 바탕으로 북미 관계를 개선해 나가자는 것이다. 미국의 제재 고수 방침, 선(先)비핵화는 강압적 비핵화라는 비판이 있다.
싱가포르 회담은 북한이 협상을 잘 한 것이다. 그에 기반해 북한은 강압적 비핵화라고 주장할 수는 있겠지만,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선 국내정치적으로나 국제적으로 북한 주장을 수용하기 쉽지 않다. 북미 간 문제가 아니라 남북 간 문제라면 가능하겠지만, 북핵 문제는 국제문제다.  
종전선언 문제는 어떻게 보나?
종전선언은 트럼프 대통령이 사실상 수용했기 때문에 그 의미에 시비를 따지는 건 의미 없다. 실질적 종전은 평화협정이 체결 될 때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종전선언 자체가 신뢰를 쌓는 정치적 수단으로서 의미가 생겨버렸다. 남북미 정상들이 그 점을 다 인정했다고 본다.

지금은 종전선언의 대칭점에 어떤 조치가 있어야 하느냐로 협상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미국은 지금 상태에선 종전선언을 해주지 않을 것이다. 미국 조야에서 비판하면 제아무리 미국 대통령이라도 로마 황제처럼 할 수는 없다. 10월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도 예정돼 있으니 밀고 당기기가 있지 않을까 싶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중간선거 이후가 될 가능성이 많다. 공화당의 선거 전망이 좋지 않고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 뒤 국내정치적으로 수세에 몰리면 북미 협상의 동력이 떨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많은 사람들이 그 점을 우려한다. 북한에 우호적인 사람들도 7~8월에 더 나아갔어야 한다면서 북한이 실기를 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한다. 아직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만 보여줬을 뿐이다. 다행히 트럼프 대통령이 공화당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고, 민주당은 공화당보다는 북한에 우호적이라서 중간선거 이후에 대한 걱정은 덜하다. 평양에서도 중간선거 이후에 대한 면밀한 계산을 하고 있을 것이다. 평양 회담 때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과도 많은 이야기를 했으리라 본다.  
세 정상이 노벨상을 같이 받으면 혹시 비핵화 추진에 도움이 될까?
현재로선 내년에 공동 수상을 한다면 최선이겠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을 생각해보면 노벨상 수상은 후폭풍도 있다. 노벨상과 별개로 나는 김정은 위원장이 나이도 젊고 큰 꿈도 있다고 본다. '북한 주민들이 이렇게 똑똑하고 우수한데 왜 중국보다 못사느냐'는 얘기를 많이 한다고 한다. 김 위원장이 경제를 발전시킬 생각이 있다면 근본적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
지난해 낸 <한반도 평화 만들기>에 이어 곧 새 책을 낼 계획으로 아는데, 어떤 내용을 담았나?
<한반도 평화 만들기>는 내가 가진 여러 생각과 글을 모아서 정리한 것이기 때문에 다소 관념적이다. 이번 책은 남북관계가 급물살 타는 현실을 반영해서 남북 화해와 평화 만들기를 위한 실천적이고 구체적인 방안을 정리한 것이다. 분량은 짧지만 나름대로 완결성을 기했다.  
<한반도 평화 만들기>를 통해 동아시아 관점에서 미중 간 이익의 조화가 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최근 미중 갈등 속에 중국 쪽에서도 신형대국관계에 대한 희망을 버렸다는 말도 나온다. 미중 갈등관계가 한반도 평화를 향한 프로세스에 부정적 영향 미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선 어떤 견해인가?
미중 갈등이 이렇게 빨리, 심각하게 갈 줄은 몰랐다. 미국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중국 견제는 트럼프 대통령만의 정책이라기보다는 미국 주류의 전반적 사고가 그렇다고 한다. 힐러리 클린턴이 대통령이었어도 세련도나 속도, 파장에서 차이는 있을지언정 미중 충돌은 언젠가 벌어질 일이었다는 것이다.

미중 갈등의 가장 큰 배경은 무역 문제가 아니라 중국의 군비 확충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것이다. 군비 확충을 가능하게 하는 건 두 가지다. 하나는 경제규모다. 중국은 연간 4000억불에 육박하는 대미 흑자를 내고 있다. 또 하나는 기술 경쟁이다. 중국 학생들을 많이 받으면서 첨단기술이 넘어가고 있다는 인식을 미국 주류들이 갖고 있다. 그러다보니 이 단계에서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는 인식이 생긴 것이다. 심각하게 보는 사람들은 1986년 일본 엔화를 절상시킨 플라자 합의처럼, 중국을 상대로 '중국판 플라자 합의'가 나올 때까지 몰아칠 거라고 보기도 한다. 플라자 합의 당시 230엔이던 일본 엔화 가치가 120엔, 80엔으로 폭등하면서 자산 거품이 일어났고 1990년 거품이 꺼지면서 잃어버린 20년이 시작됐다. 그때처럼 미국이 중국의 기를 꺾어버리겠다는 얘기다.

나아가서 심하게 말하는 사람은 중국 정치 상황에도 충격파 갈 수 있다고 한다. 중국의 군비 확충에서 비롯된 '투키디데스의 함정(기존 패권국과 신흥 강대국은 필연적으로 갈등을 빚게 된다는 국제정치학 용어)' 같은 것이다. 2025년까지 10대 핵심 산업을 집중 육성하겠다는 중국의 '제조 2025' 구상에 대한 미국의 반격이다. 중국 내에서도 좀 더 도광양회를 해야 하는데 너무 고개를 빨리 들었다는 관점에서 반성이 있는 것으로 안다.

결국 미중 갈등은 북한 비핵화에 마이너스다. 친중파인 헨리 키신저가 트럼프와 5번을 만났다. 키신저는 트럼프에게 북핵 문제에 너무 힘을 기울이기보다는 ICBM이나 미 본토에 위협적인 문제 외에는 깊이 관여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대선 기간에 남한이나 일본이 핵무장 하면 어떠냐는 식으로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동북아는 굉장히 어려운 환경에 처한다. 동북아와 한반도 주변국들은 북한이 체제 안전 보장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줘야 한다.

지난해 나온 저서 <한반도 평화 만들기>를 최장집 선생이 상찬한 이유는 한반도를 넘어선 글로벌 퍼스펙티브가 담겨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이 책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평화롭고 안정된 동북아시아를 보장할 수 있는 미국과 중국 사이의 '그랜드 바겐'"이며 "미국과 중국 사이의 광범한 교류를 통해 한반도의 통합을 위한 정지작업이 이뤄질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가장 큰 걸림돌은 북한이 아니라 타성"이며 "불행히도 냉전시대의 안보 구조를 더 편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한미 안보조약과 미일 안보조약으로 구축된 안보동맹에 의지"하면서 "새 질서나 새로운 접근방식의 제안을 꺼린다"고 비판했다. 나아가 "동북아는 유럽‧아세안이 통합을 이룬 것에 견줄 기회를 잡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뛰어넘어 새롭고, 어쩌면 전례 없었던 제도들을 만들어냄으로써 세계에 미래의 가능성을 보여주게 될지도 모른다"고 전망했다.('한반도 평화만들기' 33-34쪽, 160-161쪽) 그런 측면에서 이번 책을 소개하자면?
이번 책 내용이 좀 실제적이지만, 책의 기본 맥락은 북한 비핵화 문제는 국제문제라는 것이다. 그 시각을 잃지 않고 풀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걸음도 나가지 못한다.

동북아 관계에서 북한 비핵화가 중요한 이유는 일본에 핵무장의 빌미를 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일본 핵무장은 중국이 가장 두려워하고 미국도 두려워한다. 만일 북핵이 고착화돼서 일본이 핵을 갖게 될 경우 발생할 중일 패권경쟁이 우리에게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이는 미국에도 최악의 시나리오다. 우리가 깊은 생각을 가지고 북핵 문제를 국제문제로 접근해야지, 남북문제로만 접근하면 오판하기 쉽다.  

말씀을 종합하면, 미중 갈등이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하는 상황에서 북한이 실기를 할 수도 있으니 북한이 더 빨리 과감한 조치를 하는 게 중요하다는 뜻으로 이해한다. 
그렇다. 북한에 유일하게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은 현재로선 트럼프 대통령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도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고 싶어 하니 이를 레버리지로 잘 활용할 필요도 있다. 경제를 제대로 발전시키는 게 중요한 것 아닌가.
지난 2000년 조명록 차수와 메들린 올브라이트 장관이 뉴욕과 평양을 방문하며 북미 관계가 수교 직전까지 진전됐지만, 결국 빌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 문제를 김정일 위원장이 너무 망설여 무산됐던 것과 비교할 수 있겠다.
돌이켜보면 안타깝다. 북한을 아끼는 미국의 많은 유력 인사들은 그때 김정일 위원장의 망설임을 제일 아쉬워한다. 김정일 위원장이 좀 더 과감했으면 북미 관계가 해결됐을 것이다. 그때 만약 결단했다면 북미 관계가 풀렸을 텐데 김정일 위원장이 소심했다. 당시 김정일 위원장은 미국 대선을 계산했다.

지금 상황을 보면 꼭 그때 상황과 비슷하다. 이번 미국 중간선거도 중요한 선거다. 미국 선거를 앞둔 상황이라는 점에서 김정은 위원장도 비슷한 입장에 처했다. 여기서 논리에 빠질 게 아니다. 외교 관료들의 논리는 우수하지만, 리더는 논리까지 넘어설 필요가 있다. 김 위원장은 아버지가 했던 실수를 다시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김 위원장이 시간 게임을 해야 한다는 말이 그런 의미이다.  

백낙청 선생이 쓴 <흔들리는 분단체제>의 영문판 서문을 쓴 브루스 커밍스는 한반도가 분단체제가 유지되는 한 북한도 제대로 사회주의를 할 수 없고, 남한도 제대로 된 자유민주주의를 이룰 수 없다고 분석했다. 홍 이사장도 <한반도 평화 만들기>에서 남남갈등을 지적했는데.
분단체제 문제와 관련해서 우리나라 국민들 중에 통일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나. 하지만 남북갈등보다 풀기 어려운 문제가 남남갈등이다. 분단체제 문제를 이야기하면 남남갈등이 더 격화된다. 통일은 되어야 하지만 지금은 체제문제로 얘기할 때는 아니다. 동서독이 싸우지 않은 나라였던 것과 달리 남북은 전쟁을 한 나라다. 따라서 대북 문제에서 하나의 목소리를 이루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독일의 동방정책은 빌리 브란트의 진보 정부가 만들어서 헬무트 슈미트로, 보수 정부의 헬무트 콜로 연결된 과정이었다. 일관된 정책을 만들어 가는 작업을 우리도 해야 한다. 통일을 앞세워서 분단체제에 직접적으로 접근하면 남남갈등이 심해진다. 여야 정치권을 보라. 진보 정부가 10년간 폈던 정책을 보수정부가 다 없애는 상황에서 남북문제를 풀 수 있을까.

김 위원장 서울 답방을 생각해보라. 이번 방북 때 옥류관 오찬을 하며 김정은 위원장에게 정말 서울에 올 수 있겠냐고 물어봤다.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이 너무 간곡하게 말씀하시지만 우리 쪽은 태반이 반대입니다'라면서도 연내에 오겠다고 했다. 전날 다른 테이블에선 김 위원장이 '내가 남쪽에서 환영받을 만큼 일을 많이 못했다'고 겸손을 보이는가 하면, '태극기 부대가 데모 좀 해도 괜찮다'며 여유를 보였다고도 한다.

어쨌건 김 위원장이 서울에 올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져야 하지 않나. 내 주변 보수 성향 분들은 김정은이 오면 엄청난 남남갈등 벌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문 대통령이 북한에 가서 열심히 설득한 만큼 야당 지도자, 보수와도 많은 대화를 할 필요가 있다. 김 위원장도 100% 환영을 받을 수는 없겠지만, 분위기를 만들려면 비핵화 행동을 하고 종전선언과 북미 정상회담이 이뤄지는 등 조건들을 갖추려 노력해야 한다.

남남갈등은 정부 정책을 보는 차이에서 드러난다. 진보 쪽은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낸 성과를 박근혜·이명박 정부가 까먹었다고 보는 반면, 다른 쪽에선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이 부족하다고 본다. 역대 정부의 대북정책을 평가하자면?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다소 차이가 있더라도 대북 정책은 큰 흐름이 같다. 하지만 지금과는 상황이 달랐다. 북한에 핵이 없거나 핵을 막아야 할 때 제기한 포용정책은 과감하고 옳았다. 다만 자민련과 동거정부였던 김대중 정부가 보수와 조금 더 진지한 대화를 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두 정부 모두 보수야당을 끌어들여 대북정책이 바뀌지 못하도록 하려는 노력이 좀 아쉬웠다.

이명박 정부도 대북 정책을 독점하려는 욕심이 있었다고 본다. 야당과도 대화를 해가며 해야 하는데, 국정원, 통일부, 청와대 비서실까지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려고 서로들 경쟁했다. 내 경우 2008년 즈음에 북한에서 초청이 와서 가려고 했었는데, 정부가 가지 못하도록 막아서 무산됐던 일이 있다. 누구든 작은 일이라도 하면 공은 대통령에게 돌아가는 것인데 정부가 다 하려고 했다. 또한 이명박 정부는 '비핵개방 3000' 정책처럼 돈으로 북한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북한을 이해하는 수준이 낮았던 것 같다.

박근혜 정부는 통일대박 논리가 어디서 나온 것인지 모르겠지만 결국 흡수통일을 하겠다는 것 아니었나. 흡수통일, 적화통일 논리를 잊어버리고 남북이 평화를 만들고 함께 번영하고 통일의 열망을 끌어올리면서 대화하는 게 순서 아니었나 싶다.

문재인 정부도 대북 정책을 당파적으로 이용한다고 보나?
문재인 정부는 지금까지 숨 가쁘게 왔다. 집권하자마자 북미 간에 전쟁이라도 할 것 같은 국면을 맞았다. 물론 나중에 알게 된 바로는 그 와중에도 미국의 관계자가 북한을 수차례 방문했다고 한다. 그래도 '말 전쟁'을 하던 때였음에도 문재인 정부가 올해 1월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를 계기로 삼아서 평창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렀고 4.27 판문점 회담, 6.12 싱가포르 회담으로 이어왔다. 여기까지는 당파적으로 생각했다고 보지 않는다. 전쟁 국면을 평화 국면으로 바꾸는 대단한 일을 했다. 하지만 지금부터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이 남아 있고, 잘 되면 제재가 부분적으로 풀려서 경협 얘기도 나올 텐데, 야당과 보수가 토라져있지 않나.
이번 방북 때 국회의장단이나 야당과 동행 방북이 무산된 예도 있듯이, 청와대가 방북 초청 과정에서 무례했다는 평가도 있다.
삼권분립 관계에 있는 국회의장단이 대통령을 수행해 방북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얘기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 다만 야당 대표는 갈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노력을 좀 더 했어야 하지 않았나 싶다. 판문점 선언 국회 비준 문제도 있고, 대북 제재가 풀리면 예산이 많이 동원될 텐데 이런 남북관계를 다수결로 할 문제는 아니다.  
반대로 자유한국당은 너무 막무가내로 반대하고 있다는 느낌도 있다.
야당도 협조할 것은 협조해야 한다. 다만 여당이 성의를 보여줘야 한다. 독일이 그랬던 것처럼 정권이 바뀌어도 변치 않는 정책에 관한 남북 합의를 만드는 과정을 세워야 한다. 국회에서 비준할 수 있는 합의를 만들어서 굳혀나가는 작업이 대북정책이고 남남갈등 줄여나가는 첫걸음이다. 보수 인사들 사이에 유통되는 카톡 내용을 보면 험악하다. 우리끼리의 신뢰 부족이다.  
남북 화해가 되면 성장 동력이 멈춘 한국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일부에선 남한식 천민자본주의 관점이라고 비판한다. 결국 남북 경협이 진행되더라도 남한도 바뀌고 북한도 바뀌어서 인간적이고 친생태적인 경제로 발전하는 방식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선 북한 경제의 가능성을 어떻게 보며, 올바른 남북 경협 방안은 무엇이라고 보나?
나는 북한 경제의 가능성을 굉장히 높게 본다. 렉스 틸러슨 전 국무장관이 사업가 출신인데, 지난해 대미 특사로 갔을 때 자기 친구들도 북한에 투자하겠다는 말을 했다고 하더라. 로저스홀딩스 회장인 짐 로저스도 전 재산을 북한에 투자하고 싶다고 하지 않았나. 우리 같은 사람이 봐도 북한은 백지 같다. 우선 우수한 인력이 있다. 자원도 우리보다 많다. 백두산이나 원산처럼 관광자원도 많다. 북한 경제 개발의 가능성은 상식적으로 봐도 상당히 크다. 다만 우리가 겪었던 것과 같은 경제개발의 시행착오는 피해야 한다. 친환경적 성장, 분배 정의, 도시 집중이 아닌 균형발전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일각에서 '퍼주기' 비판을 하지만, 북한 경제개발의 주체는 북한이 되어야 한다. 일부 투자가 가능하겠지만 기본적으로 남한은 성실한 조력자다. 세계은행, 아시아개발은행이 북한에 대한 관심이 아주 많다고 들었다. 퍼주기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사회간접자본에 북한이 무리한 요구를 할 수도 있지만 국제기관과 함께 들어가면 경제성 있는 투자가 될 수 있다.  

대북 경협을 가장 먼저 시작했음에도 중단을 겪은 정주영 회장의 예를 생각해보면, 북한에 미국 기업이 먼저 들어가는 게 효과적이라는 말도 있다. 자본 진입의 선후관계 문제다.
미국 자본도 상당히 들어갈 것으로 본다. 트럼프 대통령이 돈을 쓰지 않겠다고 말한 것은 정부자본이다. 공공섹터 투자는 어렵더라도 민간자본은 얼마든지 대북 투자가 가능하다고 본다. 북한 지도부 마음속을 알 수는 없지만, 그들은 중국보다 미국에 의존하고 싶을 것이다. 미국 자본에 대한 기대가 굉장히 많다.

북한이 비핵화 문제에서 미국 조야에 감동 줄만큼 한다면, 미국 정부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북한산 제품에 대한 무관세 협정 정도는 해줄 수도 있다고 본다. 북한이 좋은 방향으로만 움직인다면, 경제가 발전하고 국제사회에서 인정받는 국가가 돼 저절로 체제보장도 되는 것 아닌가.  

북한 인권문제도 남남갈등의 주요 의제다. 진보 쪽에선 생존권이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접근해야 한다고 보나?
북한 인권 문제에서 나는 진보 쪽과 생각이 비슷하다. 이번 평양 방문에서 보니 저번 방북했을 때보다는 나아졌다고는 해도 북한은 정말 어렵다. 오랜 기간 영양 부족에 시달렸던 북한 주민들의 체구를 보면서 가슴이 아팠다. 주민들의 생존권 문제가 전쟁 없이 해결되는 게 일차적으로 중요하다.

다만 북한 인권문제는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국제사회에서 제기하는 정치범 이슈 같은 인권 문제 정도에는 동참해야 한다. 내가 2005년 주미대사를 지낼 때, 유엔 대북 인권결의안 표결에 우리 대사관만 찬성하자고 했다. 남북관계도 물론 중요하지만, 국제사회가 추진하고 모든 나라가 지적하는 문제에는 같이 가야 한다.

최장집 선생은 평화를 정착시킨 뒤에 통일을 생각해도 된다는 입장이고, 백낙청 선생은 지금 가는 길이 남북연합으로 가는 길이라고 본다. 양국론과 연합론 사이에도 공통점이 있지 않을까 싶은데, 두 분의 논쟁이 치열하다. 단순화 하면 통일이냐 평화냐 논쟁인데, 이에 대한 견해는?
백낙청 선생과 최장집 교수님은 제가 오랜 동안 존경해왔고 개인적 친분도 있는 분들이다. 하지만 나는 '통일이냐 평화냐' 하는 문제는 지금은 얘기를 안 하는 게 좋지 않나 싶다. 물론 학자들은 할 수 있다고 보지만, 양국론은 너무 심하고 통일지상주의도 지금 흐름과는 동떨어져 있다. 남남통일부터 우선 했으면 좋겠다. 통일을 가슴에 안고 평화의 길을 가다보면 자연스럽게 통일로 이어질 것이다. 두 분 견해에 차이가 있지만, 실천적 방안에서는 큰 차이가 있을까 싶다. 통일이냐 양국이냐, 그건 내 머릿속에는 비껴놓고 있다. 통일을 가슴에 새기고 평화 만들기의 길을 갈 때 통일의 길이 열린다. 독일의 경우, 전문가들도 예상하지 못한 통일이 된 배경은 동독 주민들이 하고 싶어 했고 서독 주민들도 거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도 진정한 통일을 이야기하려면 적어도 20년은 지나야 하지 않을까.
홍 이사장 저서에 상당부분 공감을 하면서도, 미국의 의도가 항상 선하지만은 않다는 점을 경계해야하지 않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미국은 베트남에서 10년 이상 전쟁을 벌였고 현재 중동지역에서 15년 이상 계속되고 있는 전쟁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빌미가 되지 않았나.
동의한다. 국제정치에선 어느 국가도 선하지 않다.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지역이 동북아다. 군비경쟁으로 인한 갈등이 높고 미중도 충돌하고 있다.

그래서 쉽진 않겠지만 동북아 국가들과 인도를 포함하고 미국까지 참여하는 나토 같은 공동 방위체가 마련돼야 하지 않을까 싶다. 중일 간 군비경쟁이 가장 좋지 않은 시나리오이기 때문에 동북아에서 미국의 역할이 사라지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  

와다 하루키 선생도 2000년대 초에 펴낸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이라는 책에서 미국이 동북아 공동안보에 들어와야 한다면서 적어도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정당한 국익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했다.
김정일 위원장도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통일이 되더라도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나. 균형자로서 미국이라는 존재가 필요하다. 미국이 빠진 동북아는 한반도에 재앙이라고 본다. 통일이 된 후에도 공동방위체의 일원으로서 미국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향후 계획을 밝혀 달라. 정치에는 관심이 완전히 없는 건가?
내가 살아온 길을 돌이켜보면, 계획한 것은 아니지만 일관된 것은 있다. 국제기관과 정부, 신문사 일을 하면서 공적 가치에 대한 추구가 늘 있었다. 물론 사업도 했지만, 돈을 벌기보다는 공적인 가치에 시간을 더 많이 썼다.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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