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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키니 입은 인어공주 문란해” 쿠웨이트 금서 지정 논란

중앙일보

입력

쿠웨이트 정부가 최근 도서 검열을 강화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의회에서 세를 확장하고 있는 보수 세력의 요구에 맞추기 위해 갈수록 더 많은 책을 금서로 지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수 세력에 부응하려 대대적 검열 #다비드상 사진 들어간 사전도 금지

지난 8월 쿠웨이트 정부는 2014년 이후 4390종의 책을 금서로 지정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이 중 수백 종은 올해 금지 목록에 올랐다.

금서가 된 책의 종류는 다양하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 사진이 들어간 백과사전, 디즈니의 『인어공주』,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 년 동안의 고독』 등 장르를 망라한다.

이유는 대체로 이슬람의 보수적 ‘기준’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백과사전의 경우 다비드상이 국부를 무화과 잎사귀로 가리지 않은 채 벌거벗은 상태라서, 인어공주의 경우 비키니 차림이라서 금지됐다. 『백 년 동안의 고독』도 아내가 벌거벗은 남편을 보는 장면 때문에 금서가 됐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 [중앙포토]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 [중앙포토]

쿠웨이트의 독자들은 정부의 조치에 반발하고 있다. 쿠웨이트의 여성 운동가인 샤마엘 알-샤리크는 NYT에 “히잡을 쓴 인어공주는 없다”며 “권력자들은 인어공주의 비키니가 문란하다고 생각하나 본데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비판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에는 금서들을 쌓아 올린 사진을 게재하며 정부를 비판하는 글이 이어지고 있다. 한편에선 정부의 검열이 지역 서점이나 출판사에만 적용되기 때문에 해외 온라인 서점에는 책을 배송받을 수 있다며 정부의 허술함을 비웃기도 한다.

지난달 활동가들과 작가들은 정부의 금서 지정에 항의하는 시위도 세 차례 열었다. 쿠웨이트는 걸프 국가 중 드물게 대중 집회를 허용한다. 검열반대 단체의 활동가는 NYT에 “책이 마약처럼 되고 있다”며 “금서 거래상을 둬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쿠웨이트 정부는 지난 5년에 걸쳐 20만8000 종의 책 가운데 4300종만 금서로 지정됐다면서 이는 전체의 2%에 불과하며 일부 책은 미국과 유럽 등 다른 국가에서도 금지돼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NYT는 “쿠웨이트는 추방된 아랍 작가를 받아주는 등 보수적인 페르시아 걸프 지역에서 지적 자유를 인정하는 국가이고자 했다”며 “그러나 (금서 조치로 인해) 이같은 이미지는 유지하기 어려워졌다”고 비판적으로 평가했다.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nag.c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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