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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 4개에서 13조 기업으로…중국 경영 신화 새로 쓴 장융 하이디라오 회장

중앙일보

입력

홍콩 증시 상장을 앞둔 지난달 10일 투자자와의 오찬에 참석한 장융 하이디라오 회장(오른쪽)과 부인인 수핑 공동창업자. 하이디라오 상장으로 이들의 자산가치는 각각 4조3700억원으로 추산된다. [홍콩 로이터=연합뉴스]

홍콩 증시 상장을 앞둔 지난달 10일 투자자와의 오찬에 참석한 장융 하이디라오 회장(오른쪽)과 부인인 수핑 공동창업자. 하이디라오 상장으로 이들의 자산가치는 각각 4조3700억원으로 추산된다. [홍콩 로이터=연합뉴스]

중국에서 또 한 명의 ‘글로벌 공인’ 억만장자가 탄생했다. 중국의 큰 부자는 알리바바·텐센트 같은 정보기술(IT) 업체를 일구거나 헝다·다롄완다 같은 부동산 개발업에 뛰어든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번은 조금 다르다.

중국 훠궈 체인, 9월 26일 홍콩 증시 상장 #시총 120억 달러, 창업자 4명 억만장자로 #용접공 출신 장 회장, 서비스로 승부수 #내부 승진 원칙, 직원 부모에 보조금 등 #고객 중심, 직원 지향 경영이 성공 비결

중국의 훠궈 전문 체인인 하이디라오(海底撈)의 장융(張勇·47) 회장을 비롯한 공동 창업자 4명이 주인공이다. 하이디라오 성공 신화는 제조업 강국 중국에서 서비스 경쟁력을 앞세운 외식업체가 썼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이디라오는 지난달 26일 홍콩 증시에 상장했다. 기업공개(IPO) 과정에서 발행가를 주당 17.8홍콩달러(약 2500원)로 정했고, 상장 당일 0.1% 올랐다.

하이디라오의 시가총액은 단숨에 약 120억 달러(약 13조원)로 뛰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아시아 증시에 상장된 외식기업 가운데 최대 규모다. 시가총액이 미국 도미노피자(123억 달러)에 근접했다.

하이디라오의 성공으로 공동창업자인 장 회장과 부인 수핑, 스융훙 전무이사와 부인 리하이옌이 억만장자 반열에 올랐다. 블룸버그 억만장자 인덱스에 따르면 장 회장과 부인의 자산 가치는 각각 39억3600만 달러(약 4조3700억원), 스 전무와 부인은 각각 18억3600만 달러(약 2조400억원)로 추산된다.

4명의 창업자는 1994년 쓰촨(四川)성 젠양(簡陽)시에 테이블 4개짜리 훠궈 음식점을 열었다. 훠궈는 펄펄 끓는 육수에 고기·해물·채소·국수 등을 담가 먹는 중국의 대중 요리다.

창업은 당시 23세의 장융 회장이 주도했다. 그는 고교를 중퇴하고 직업학교를 나와 한 국유기업에서 용접공으로 일하고 있었다. 어느 날 기숙사 배정 문제로 회사와 다툰 뒤 사표를 던져지고 뛰쳐나왔다.

수년 전 큰마음 먹고 훠궈 음식점에 갔다가 실망했던 기억을 되살려 훠궈를 창업 아이템으로 정했다. 공장 식당 밥만 먹다가 외부 음식을 맛본 10대 소년에게도 맛과 서비스가 형편없었다. 그 집보다는 잘할 것 같은 자신이 있었다.

하이디라오를 경쟁사와 구분 짓는 차별점은 탁월한 고객 서비스다. 대기 고객들은 무료로 네일 케어와 어깨 마사지, 구두 닦는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대기실엔 카드와 보드게임, 음료와 과자·과일도 준비돼 있다.

자리에 앉으면 깨끗한 물수건과 앞치마를 준다. 휴대전화나 안경을 테이블 위에 놓으면 비닐 지퍼백에 넣어 준다. 머리카락이 긴 손님에게는 머리끈을 가져다준다. 훠궈 국물이 튀거나 냄새가 배지 않도록 하는 서비스다. 혼자 식사하는 손님 앞에 곰돌이 인형을 놔준다. (물론 원치 않으면 안 할 수 있다.)

고기와 채소, 완자를 곁들인 하이디라오 훠궈. [사진 하이디라오]

고기와 채소, 완자를 곁들인 하이디라오 훠궈. [사진 하이디라오]

훠궈는 손님이 테이블에서 조리해 먹기 때문에 요리 기술과 맛으로 승부를 보기 어렵다. 진입 장벽이 낮아 경쟁도 심하다. 이런 점을 극복하기 위해 서비스에 초점을 맞췄다.

대기시간이 길어지면 손님들이 다른 음식점으로 이탈할 가능성이 크다. 서비스를 강화하자 손님들이 기꺼이 기다리기 시작했다. 테이블 회전율을 올리니 수익은 따라왔다. 볼거리도 만들었다. 국수를 주문하면 ‘국수 마스터’가 테이블 앞에서 춤추면서 수타면을 만드는 퍼포먼스를 한다.

장 회장은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인기 서비스 대부분은 직원들 아이디어에서 나왔다”며 "창의성을 원한다면 직원들이 창의력을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대기 고객들을 위한 무료 구두 닦기 서비스. [사진 하이디라오]

대기 고객들을 위한 무료 구두 닦기 서비스. [사진 하이디라오]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핵심 자원은 사람이다. 장 회장은 쓰촨성 시골 마을에서 돈을 벌기 위해 도시로 나온 농민공 출신이다. 이주 노동자의 고단한 삶을 살아봤기 때문에 하이디라오에서 일하는 젊은이들 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때의 경험을 살려 사내 복지 시스템을 만들었다. 직원들에게 에어컨·와이파이가 제공되는 숙소를 제공한다. 매니저급 이상 간부의 고향 부모에게 매달 보조금을 지급한다. 고향 가족에 대한 걱정을 덜기 위해서다.

직원 가족이 자연재해를 당했을 때 돕기 위한 사내 자연재해기금을 만들었다. 중국 지방 소도시나 시골에서는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가 잦았다. 이직률이 높은 외식업계에서 하이디라오는 월 10% 미만의 낮은 이직률을 기록하고 있다. 이직이 적으면 서비스의 질을 관리하기 쉬워진다.

서비스 중심, 직원 중심이라는 기업 철학의 백미는 내부 승진 체계다. 서빙 직원이나 설거지 담당 등 말단 직원 중에서 뛰어난 인재는 관리직으로 승진할 수 있다.

양샤오리 전 최고경영자(CEO)는 서빙 직원 출신이다. 미국 사업 최고책임자는 도어맨 출신이다. 매니저나 점장의 성과는 매출액이 아닌 고객 서비스 만족도와 직원 윤리를 기준으로 평가한다. 일 잘하는 직원에게는 체인점 영업권을 내준다.

장 회장은 지난해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외부에서 사람을 영입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하버드대나 베이징대에서 학위를 땄다는 이유만으로 지원자에게 특별 대우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서빙 직원들을 보면, 어떻게 하면 내 자리에 오를 수 있는지 생각하는 게 보인다"고 말했다.

하이디라오 성공 사례는 하버드대 경영대학원(MBA) 등 세계 유명 대학의 연구 대상이 됐다. 2011년 하이디라오를 들여다보는 '사례 분석'을 맡았던 워런 맥팔란 하버드대 교수는 "하이디라오는 초창기부터 고객 서비스를 핵심 경쟁력으로 삼았다"며 "사업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하이디라오는 중국 100개 도시에 360개 점포를 두고 있다. 한국·미국·싱가포르·일본에도 지점이 있다. 지난해 매출액은 106억 위안(약 1조7000억원)이다. 해마다 30%씩 성장 중이다. 올해는 상반기에만 73억 위안의 매출을 올렸다. 지난해 전체 매출의 4분의 3 수준을 상반기에 달성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매출이 54% 증가했다.

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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