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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화장장 포화 … 돈 6배 쓰고 천안까지 원정화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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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지난달 아버지를 여읜 김모(57·서울 서초구)씨는 당시만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하다. 상을 당한 직후 상조회사를 통해 화장장을 예약하려했지만 발인 날짜에 빈 화장로가 없었다. 김씨는 “집 근처에 있는 서울추모공원부터 벽제며 성남, 수원까지 알아봤지만 예약이 꽉 차 있었다”며 “충남에 있는 천안추모공원에 겨우 자리가 나 가까스로 3일장을 치를 수 있었다”고 말했다.

화장률 계속 높아져 90% 육박 #원지·벽제 2곳 만으로 감당 못해 #작년 천안시설 이용 시민 280명 #“박원순 시장, 사명감 갖고 확충을”

서울시민의 원정(遠征) 화장이 해마다 늘고 있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화장시설인 서울추모공원(서울 원지동)과 서울시립승화원(벽제화장터·경기도 고양시)만으로는 서울시민의 화장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서다. 대한장례지도사협회가 지난 6월 천안추모공원 이용객의 거주지를 분석한 결과, 서울 거주자의 이용 건수는  2010년 10건에서 2016년 225건, 지난해 280건으로 크게 늘었다. 올해는 5월까지만 226건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이처럼 서울시민의 원정화장이 늘어나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고령화로 노인인구는 크게 늘고 있는데 화장장 등 장례시설은 확충되지 못했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보건복지부가 올 3월 내놓은 ‘장사시설 수급 종합 계획안’에 따르면, 사망자의 약 40%는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 집중됐다. 특히 서울은 당장 2020년부터 화장시설 부족이 예상된다며 ‘우선 확충’ 지역으로 꼽았다.

이필도 을지대 장례지도학과 교수는 “서울시민의 화장률은 이미 90%에 육박하고 있는데, 화장시설은 화장률 50% 시대에 머물고 있다”면서 “윤년이 돌아오는 2020년에 화장 수요가 폭증하면 화장 대란이 일어날 게 뻔하다”고 지적했다.

박태호 대한장례지도사협회 연구위원은 “이미 2015년 초반부터 상당수 서울시민이 시립 화장시설 예약에 어려움을 느껴 수원과 용인 등 경기도의 시설을 이용해왔다”면서 “서울의 원정화장 대란은 이미 시작된 일”이라고 강조했다.

혐오시설인 화장장을 확충하는데 미온적인 지자체의 태도도 또 다른 원인으로 꼽힌다. 박태호 연구위원은 “서초구 원지동에 있는 서울추모공원의 경우, 주민 반대에 부닥쳐 완공까지 10년이 걸렸고 원래 20기로 예정됐던 화장로도 11기로 줄여야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서울의 고령화 속도 등을 감안하면 2~3년 내에 서울추모공원 규모의 화장시설이 더 필요한데, 정작 시에서는 이에 대한 논의조차 없다”고 지적했다.

원정화장은 유가족들에게 경제적으로도 부담이 된다. 현행법상 화장시설은 지역민 편의시설이어서 타 지역 주민들이 이용할 경우 비용을 비싸게 받고 이용시간도 제한한다. 서울시민의 경우, 시가 운영하는 서울시립승화원이나 서울추모공원은 12만원에 이용할 수 있지만 경기도 용인이나 강원도·충남의 시설을 이용할 때는 70만원을 내야 한다. 경기도 성남·수원, 인천광역시 소재 화장시설에서는 100만원을 지불해야 한다. 여기에 원거리 운구에 들어가는 비용까지 포함하면 경제적 부담이 더욱 커진다.

원정화장으로 인한 유가족들의 물리적·경제적 부담이 커지고 있지만 당분간 시설이 확충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는 “화장장은 대표적인 기피·혐오시설이라 부지 선정부터 지자체와 주민 간 갈등이 극심하다”면서 “유력한 대권 주자인 박원순 시장이 굳이 이런 위험 부담을 떠안으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연구위원은 “제3 화장장 건립은 지금 당장 논의를 시작해도 완공까지 빨라야 5년, 길면 10년 걸릴 일”이라며 “3선에 성공한 박 시장이 정치적 판단이 아닌 행정적·실무적 차원에서 사명감을 갖고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의 한 관계자는 “서울연구원에서 제3 화장장 설립의 필요성을 담은 연구보고서를 작성했지만, 아직 윗선에는 보고가 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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