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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앞에서 편하게 시간 보내는 게 노년의 여가일까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이한세의 노인복지 이야기(23)

요즘 우리는 여가활동에 관심이 많다. 여가(餘暇)라고 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는 것, 취미 생활, 여행 등을 떠올릴 수 있다. 청소년, 장년, 노년 등 연령대와 각자의 상황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사전을 찾아보면 “직업에 관한 일이나 가사, 면학 등의 일상생활에 소요되는 시간을 뺀 나머지의 자유 시간”이라고 적혀있다(체육학대사전, 민중서관 2000).

65세 이상 노인들의 여가시간은 하루 7시간 이상으로 길어졌지만 노인들은 길어진 여가를 대부분 TV 시청을 하며 보낸다. [사진 pxhere]

65세 이상 노인들의 여가시간은 하루 7시간 이상으로 길어졌지만 노인들은 길어진 여가를 대부분 TV 시청을 하며 보낸다. [사진 pxhere]

한국인의 여가는 하루 평균 3시간이 조금 넘는다(2016 국민여가활동조사, 한국문화관광연구원). 현대사회에는 여가가 누구에게나 주어지지만 과거에는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다. 노비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일반 평민들도 힘든 노동으로 고단한 하루를 살았기에 여가가 길지 않았다.

이렇게 소중한 여가가 노년이 되면 자연스럽게 늘어난다. 65세 이상 노인들의 여가시간은 하루 7시간 이상으로 전체 평균보다 두 배 이상 길다. 옛날로 치면 귀족에게나 가능한 긴 여가의 호사를 은퇴 후에 누리게 되는 셈이다.

그러나 노인들이 길어진 여가를 어떻게 보내고 있는가를 분석해보면 호사와는 거리가 멀다. 하루에 여가의 반이 넘는 3시간 48분을 TV 시청을 하며 보낸다. 대화상대도 없이 5시간 이상 TV 앞에서 시간을 보내는 노인도 30%가 넘는다. 그 밖에 집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공원이나 경로당에서 아는 지인들과 담소를 나누는 정도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노인 10명 중 7명 이상은 특별한 여가활동 없이 일상생활을 무료하게 보낸다고 한다.

우리는 어르신들께 “편안하게 잘 지내시지요?”라고 안부를 여쭈곤 한다. 그런데 편안하게 지낸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 밖에 나가면 번거로우니 집에서 여유롭고 안전하게 시간을 보내라는 뜻일까?

혼자서 생활하는 부모님을 찾아뵀을 때 건강해 보이면 대부분의 자녀는 ‘부모님이 편안히 잘 계시는구나’ 생각한다. 그러나 부모가 특별한 여가활동 없이 집에서만 주로 지낸다면 편안할지는 몰라도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닐 수 있다. 노인 10명 중 7명이 일상생활을 무료하게 보내고 있다고 하니 부모님이 행여 여기에 해당하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아야 한다.

60대 이상 남녀의 여가활동 비교. [중앙포토]

60대 이상 남녀의 여가활동 비교. [중앙포토]

자유 시간이 많은 노인에게 시간을 소중하게 보낼 수 있는 적극적인 의미의 여가가 필요하다고 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여가 그 자체가 삶의 재미와 목적이 될 수 있다면 대부분의 시간이 여가인 노인들에게 삶의 목적이 주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삶의 목적이 주어지면 보람도 생기고 더 행복해질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13 여가백서에 따르면 60~70대 노인들의 49~58%가 스포츠·문화예술활동과 여행 및 관광과 같이 적극적인 여가활동을 원하고 있다. 그런데도 겨우 3~8%의 노인만이 만족할 만한 여가활동을 하고 있다. 노인들이 적극적인 여가활동을 하고 싶어도 막상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뜻이다.

은퇴 후 노인들이 적극적인 여가활동을 제대로 못 하는 데에는 크게 4가지 요인들이 있다. ①넉넉지 않은 경제력, ②건강문제, ③타인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 ④어떻게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서 등이다. 이 중 ④의 경우는 주변 사람들의 노력과 배려로 충분히 극복이 가능하다.

어려운 시절에 자녀들 키우고 부모님 봉양하면서 사느라 바빴던 70~80대 어르신들은 여가나 취미가 무엇인지 잘 모르고 살아왔다. 취미활동은 그저 부유층이나 하는 사치스러운 단어로 생각해 왔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적극적인 여가를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막연해하며 재미를 붙이는 데에도 시간이 걸린다. 자녀들이 부모의 경제력, 건강, 주변 환경 등을 고려해 여기에 맞는 여가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권장할 필요가 있다.

주말농장에서 건강도 챙기고 보람도 느끼는 모친

모친의 여가 활동에 도움을 주기 위해 10여 년 전부터 주말농장을 시작한 필자. 농작물 수확에 재미를 붙인 모친은 평일에 거의 주말농장에서 살다시피 했다. [사진 이한세]

모친의 여가 활동에 도움을 주기 위해 10여 년 전부터 주말농장을 시작한 필자. 농작물 수확에 재미를 붙인 모친은 평일에 거의 주말농장에서 살다시피 했다. [사진 이한세]

필자는 10여 년 전부터 형제들과 의논하여 모친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주말농장을 시작하였다. 모친의 여가 활동에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 농작물로는 가급적 자주 수확해야 하는 엽채류, 오이, 가지, 방울토마토 등을 심었다. 이 농작물들은 한창 자랄 때 일주일에 3~4번은 가서 따 주고 물을 줘야 한다. 농작물 수확에 재미를 붙인 모친은 평일에는 거의 주말농장에 살다시피 했다.

주말농장에 온 다른 가족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기 시작하여 관계교류의 폭도 넓어졌다. 여기에 더해 수확한 엽채류와 토마토, 오이 등을 나눠주기 위해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 방문도 잦아졌다. 무언가 본인의 힘으로 수확한 것을 이웃에게 나누어 줄 수 있다는 것에 자긍심도 높아지고 행복해하셨다. 또한 매일 할 일이 많아진 모친은 활기와 함께 건강도 덤으로 얻은 듯 보였다.

사진에 취미를 붙인 후배의 부모

사진에 취미가 있는 후배는 따로 사는 70대 후반의 부모께 카메라와 노트북을 사 드렸다. 그리고 시간이 날 때마다 부모를 모시고 야외로 나가 함께 사진을 찍으며 부친에게도 사진을 찍도록 권했다. 함께 집으로 돌아와 부친이 찍은 사진을 노트북에서 확대해 보면서 구도에 대해 설명도 해 주고 잘 찍은 사진은 칭찬도 하였다.

사진에 취미가 있는 후배는 부모에게 카메라와 노트북을 사 드렸다. 처음엔 탐탁지 않게 생각하던 부모는 나중에 혼자 사진을 찍어 노트북에 저장하고 포토샵을 사진 보정을 하는 등 취미생활을 즐겼다. [사진 pixabay]

사진에 취미가 있는 후배는 부모에게 카메라와 노트북을 사 드렸다. 처음엔 탐탁지 않게 생각하던 부모는 나중에 혼자 사진을 찍어 노트북에 저장하고 포토샵을 사진 보정을 하는 등 취미생활을 즐겼다. [사진 pixabay]

처음에는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하던 부친도 본인이 찍은 사진에 애정이 갔는지 점차 사진 찍는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나중에는 부친 혼자서 사진을 찍어 노트북에 저장하고 포토샵으로 사진을 보정하는 수준까지 이르게 되었다. 후배에게 카카오톡으로 사진을 전송해 품평을 요청하기도 하고, 다음 주에는 어느 곳으로 출사를 갈 거라고 들뜬 기분을 메시지로 전해오기도 한다.

이제는 부친뿐만 아니라 모친도 사진에 취미를 붙여 두 분이 같이 출사를 나가게까지 되었다. 출사 후 집에 돌아와 포토샵이 필요할 때에는 하나밖에 없는 노트북을 서로 먼저 쓰겠다고 다투는 바람에 후배는 노트북을 하나 더 사드려야 할 지경이라며 웃었다.

위의 두 경우를 살펴보면 적극적인 여가활동이 꼭 큰돈이 들거나 강인한 체력이나 높은 사교성을 요구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평균 수준의 노인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 밖에 자녀들이 정기적으로 공연에 모시고 가거나 백화점 문화센터 등에 함께 등록해 성공적으로 여가활동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노인분들이 적극성을 가지고 스스로 여가활동을 찾아서 하기란 쉽지 않다. 부모의 행복한 여가활동을 위해 자녀들이 나서야 할 때다.

이한세 스파이어리서치&컨설팅 대표 Justin.lee@spireresearc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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