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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10년 보장 상가임대차법 개정…일본처럼 '백년가게' 나올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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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인·임차인 간 분쟁을 겪은 후 빈 건물로 남아 있는 서울 '서촌궁중족발' 빌딩. 중앙DB

임대인·임차인 간 분쟁을 겪은 후 빈 건물로 남아 있는 서울 '서촌궁중족발' 빌딩. 중앙DB

3년째 국회에 묶여 있던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상가임대차법) 개정안이 20일 오후 8시쯤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간 자영업자들이 줄기차게 요구한 임차인의 계약갱신 요구 기간을 현행 5년에서 10년으로 늘린 게 골자다. 임차 상인이 ‘마음 편히 장사할 수 있는’ 기간이 10년으로 늘어난 셈이다.

서울 구로동에서 맞춤 양복점을 하는 구본석(33) 씨는 아버지가 하던 양복점을 물려받아 지난해 본인 명의의 새 임대차 계약서를 작성했다. 이번 상가임대차법 개정으로 구 씨는 최소 2028년까지 한 자리를 지킬 수 있게 됐다. 구 씨는 “아버지는 지금 자리를 포함해 구로동 일대에서 30년간 양복점을 하셨다. 작년에 아버지 가게를 물려받으면서 단골을 이어받았는데, 이 자리를 떴으면 그렇지 못했을 수도 있다”며 “단골 위주의 작은 가게는 한 곳에서 오래 장사하는 게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말했다.

계약갱신 요구 기간 연장은 임차인 입장에서 투자금 회수 기간이 10년으로 늘어났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이상암 공인중개사는 “음식점의 경우 투자비 회수 기간을 7년으로 본다. 10년은 투자금에 대한 감가상각 비용을 회수하고 수익을 낼 수 있는 기간”이라고 말했다. 이어 “무엇보다 자영업자들이 심리적으로 쫓기지 않고 장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개정 상가임대차법은 ‘법 시행 후 최초로 체결되거나 갱신되는 임대차 계약(부칙 2조)’에 한해서 적용한다. 소급적용이 안 된다는 뜻으로 법 시행 전에 맺은 임대차 계약은 여전히 기존의 상가임대차법에 따라 ‘계약갱신 요구 기간 5년’을 적용한다. 단 ‘갱신되는 임대차 계약’에 한해서는 적용을 받기 때문에 임차인은 최초 계약일로부터 5년 이내에 한 번이라도 계약을 갱신하면 ‘총 10년’의 기간을 보장받을 수 있다. 보통 임대차 계약은 1~2년에 한 번씩 갱신하기 때문에 현재 시점 3년 이내 임대차 계약이라면 이 경우에 해당한다.

그러나 5년이 임박한 임대차 계약일 경우, 임대인이 재계약을 하지 않은 채로 임대 기간이 만료하면 임차인은 개정 임대차보호법을 적용받지 못하고 가게를 비워야 할 가능성이 높다. 시민단체 등에서 개정 상가임대차법을 두고 “4~5년 차 임차인에게 부담을 가중하는 법”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지난 2014년 서울 해방촌에서 카페를 오픈한 김 모 씨도 이번 개정안을 보며 전전긍긍하는 중이다. 내년이면 총 계약 기간이 5년이 되지만 건물주가 재계약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4년 전만 하더라도 해방촌 임대료는 부담스러운 수준은 아니었지만, 최근 상권이 뜨면서 올해 임대차 계약을 맺은 주변 상가 임대료는 급등했다. 건물주가 임대료를 올리기 위해 다른 임차인과 계약하겠다고 하면 김 씨는 가게를 비워줘야 할 상황에 놓였다.

참여연대와 상가임대차법 개정 국민운동본부는 21일 성명을 내고 “결국 안 쫓겨날 수 있는 기간이 5년에서 10년으로 늘어날 것일 뿐”이라며 “반쪽짜리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장사가 잘되는 수도권 상권의 경우 임대료 인상을 부추기는 부작용을 유발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김주호 참여연대 민생팀장은 “건물주가 10년 동안의 임대료 인상분을 한꺼번에 올릴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경기 침체로 인해 주요 상권의 공실률이 올라가는 상황에서 기우라는 시각도 있다. 서울 홍대역 근방에서 임대업을 하는 윤 모 씨는 “올해 재계약하는 상가는 임대료를 동결했거나 작년보다 내려 계약했다”며 “계약 기간이 10년이라고 해서 건물주가 인상분을 한꺼번에 반영할 것이란 시각은 지금의 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개정 상가임대차법은 권리금 회수 보호 기간을 현행 계약만료 3개월 전에서 6개월로 연장하고, 권리금 보호 대상에 전통시장을 포함했다. 또 대한법률구조공단 산하에 상가건물임대차 분쟁조정위원회를 설치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개정안은 공포된 날부터 바로 시행된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에 정작 임대인·임차인 간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포함되지 않았다. 서울 서촌에서 한식점을 하는 김태림(46) 씨는 3년 전 임대인으로부터 ‘5년이 다 됐으니 나가라’는 계고장을 받은 이후 소송 중이다. 김 씨는 “건물주가 나가라고 했을 때, 새로운 임차인에게 가게를 넘기려고 계약서까지 썼는데 건물주가 양도·양수를 인정하지 않았다”면서 “상가임대차법에는 ‘임대인은 임차인의 권리금 회수 기회를 방해하면 안 된다’고 돼 있지만, 임대인이 새 임차인과 계약을 거부하면 달리 대응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김영주 기자 humane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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