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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터리 취급 마라’ 연금술·천동설은 현대과학의 아버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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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1. ‘어두침침한 지하 창고, 흰 수염에 고깔모자를 쓴 노인이 투명유리로 된 비커와 플라스크 등으로 여러 가지 색깔의 액체를 혼합하고 있다. 때로 연기가 피어오르기도 하고, ‘펑’소리와 함께 폭발을 일으키기도 한다.’ 영화나 소설 속에 흔히 등장하는 연금술사의 모습이다.

과천과학관 ‘과학의 실패’ 특별전 #연금술 방법론이 근대 화학 열어 #천동설 궤도 연구, 지동설 바탕돼

#2. “그래도 지구는 돌고있다.” 16, 17세기 이탈리아의 천문·물리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1642)가 종교재판을 받은 직후 나오면서 중얼거렸다는 명언이다. 그는 천동설(天動說)을 진리라고 알던 시대에 자신이 발명한 천체 망원경을 이용한 관측을 바탕으로 지동설을 주장했지만 ‘신을 모독했다’는 비판을 받아 종교재판정에 서야했다.

18세기 말 영국 화가 조셉 라이트(1734~1797)가 그린‘현자의 돌(philosopher's stone)을 찾으려는 연금술사’. [중앙포토]

18세기 말 영국 화가 조셉 라이트(1734~1797)가 그린‘현자의 돌(philosopher's stone)을 찾으려는 연금술사’. [중앙포토]

연금술과 천동설은 과거 인류가 잘못 알고 있었던 대표적 과학의 오류·실패들이다. 인간의 무지와 사이비 과학을 얘기할 때면 단골로 거론되는 소재다. 하지만 과학사학자들은 천동설에 대한 연구가 있었기에 지동설이 나올 수 있었고, 연금술의 축적이 있었기에 오늘날 화학이 발전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른바 ‘실패로부터 배운 과학’이다.

국립과천과학관은 오는 11월 개관 10주년을 맞아 이 같은 내용을 중심으로 한 ‘과학의 실패’ 특별전을 열 예정이다. 배재웅 과천과학관장은 “과학이 어떤 과정을 거쳐 발전해 나아가는지를 보여주는 전시”라며 “실패한 이론이 있었기에 과학의 진보가 가능했다”고 말했다.

연금술은 화학의 아버지라 할 수 있다. 중세 연금술사들이 이뤄 놓은 화학반응의 결과물과 실험 방법은 현대 화학의 기반이 됐다. 다만 이들은 물질의 본성을 ‘성질’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모든 물질이 물·불·공기·흙이라는 기본 원소들로 이루어졌다는 고대 ‘4원소설’이 그 바탕에 있었다.

만유인력을 발견한 근대과학의 선구자 아이작 뉴턴(1642~1727)은 사실 연금술사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비밀 실험실에서  무려 30년 동안 밤을 지새우면서 연금술 실험을 했고 암호화된 고대 연금술사들의 책을 탐독했다. 대표적인 연구업적인 물리학이나 수학보다 더 많은 공을 들였다고 한다. 프랑스의 화학자 라부아지에(1743~94년)는 이런 연금술의 기술적 방법을 활용해 근대 화학의 시대를 열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연금술은 원소와 물질이 구분되지 않았던 시대의 세계관으로 볼 때 너무도 당연한 과학적 시도였을 뿐 아니라, 수소(H) 원자들이 뭉쳐 헬륨(He)으로 변하는 핵융합 반응과 별 생성의 원리로 보자면 일반금속으로 귀금속을 만들려고 했던 연금술사의 사고를 현대적 인식을 근거로 무작정 틀렸다고 비판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천동설

천동설

지구를 중심으로 해와 달·별이 움직인다는 천동설 또한 일종의 과학적 관찰을 근본으로 한 것이다. 달이 동쪽에서 서쪽로 달려가는 동안 오른쪽에 화성과 토성·목성은 간격을 달리해가며 달을 따라간다. 그에 반해 수성과 금성은 태양에 꼭 붙어있어, 해가 뜨는 새벽이나 해가 지는 초저녁에 잠깐 볼 수 있다.

천동설을 집대성한 클라우디우스 프톨레마이오스(AD 83년경~168년경)는 우주의 중심에 지구가 있고, 달-수성-금성-태양-화성-목성-토성의 순서로 행성이 배열돼 있다고 생각했다. 당시엔 망원경이 없었기 때문에 토성까지만 눈으로 관찰할 수 있었다. 지구를 중심으로 하는 궤도에서 행성들은 각자 작은 공전주기를 갖고 회전운동을 해야 했다. 이 때문에 행성들에 대한 관찰이 세밀해질수록 이상한 회전을 설명하기 위한 수많은 작은 궤도들이 만들어졌다.  그들은 이런 행성의 움직임을 기하학과 수학을 적용해 풀어나갔다.

이형목 한국천문연구원장은 “천동설은 당시의 관찰과 기록으로서 가장 최선의 결과”라며 “코페르니쿠스(1473~1543년)는 별과 행성의 복잡한 궤도 운동에 대해 고민하다 태양을 중심으로 궤도운동을 다시 그려보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천체의 비밀을 명쾌하게 풀어냈다”라고 말했다.

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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