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가 메가폰 들고 "레디 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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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1억원이 채 안되는 제작비와 10명 남짓한 스태프를 데리고 두달 만에 영화를 찍었습니다. 처음에는 '레디 고'와 '컷'을 외치는 것도 자신이 없었지만 시행착오를 거치다보니 용기가 생기더군요."

현직 목사가 영화를 만들었다. 서울 반석교회(경기도 광명시 소재) 협동목사로 재직 중인 김영배(54.金永培.하루 엔터테인먼트 대표)씨. 연출 경험이 전무한데도 35㎜ 장편 영화에 도전했음은 물론 시나리오.캐스팅.연출부터 투자.배급까지 혼자 발로 뛰어 극장 개봉을 앞두고 있다.

영화 제목은 '계시받은 사람'. 뇌종양에 걸린 뒤 살인 충동과 기적의 치유 능력이라는 두 가지 변화를 겪게 된 한 광인을 주인공으로 예수의 일생을 전하는 영화다. 주연은 '와이키키 브라더스''KT'에 출연했던 석정만씨.

대사의 30% 가량이 성서 구절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선교만을 목적으로 한 이른바 '종교 영화'는 아니다. "기독교 신자들을 겨냥하긴 했지만 누가 봐도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오락적 요소를 충분히 넣었다"는 것. 늦어도 다음달 초에는 서울 센트럴6과 분당 씨네플라자에서 볼 수 있다.

金목사에게 영화는 오랜 꿈이었다. 3년 전 영화를 만들기 위해 아예 10년간 다니던 직장(대한예수교장로회 출판국)도 접었다. '계시받은 사람'은 그의 두번째 영화.

첫 영화는 독학으로 카메라 사용법을 익혀 스태프 한명 없이 혼자 뛰어들었다가 끝내 완성을 보지 못했다. "로버트 로드리게즈라는 감독은 단돈 7천달러로 '엘 마리아치'라는 히트작을 만들었지 않습니까. 혼자서 각본.촬영.편집.녹음을 다 했지요. 저도 할 수 있다는 의욕이 솟구치더군요."

그가 용산고에 다니던 시절 경기고.서울고.경복고.용산고 등 4개 고등학교가 모인 문학 동아리에서 활동을 같이 했던 지인들이 제작비를 댔다. '낙타의 거울'로 잘 알려진 소설가 최시한(崔時漢) 숙명여대 교수 등이 "사전 준비만 꼼꼼하다면 1억원 미만의 저예산 영화는 충분히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그의 설득에 뜻을 같이 했다. 주연을 제외한 나머지 배우들은 인터넷 공모 등을 통해 모았다.

金목사는 앞으로 1년에 5편씩 만들어 임권택 감독처럼 1백편의 영화를 찍는 게 포부다. "요즘 영화는 웃기고 가벼운 게 추세지만 전 진지한 주제를 다루고 싶습니다. 그런 영화를 찾는 관객들이 분명히 생겨날 거라고 확신합니다. 그러기 위해 다작(多作)을 할 참입니다. 목회 생활을 한 덕에 이야기하는 솜씨만큼은 있거든요. 영화로 만들고 싶은 이야기가 제 머릿속에 늘 가득합니다."

글=기선민, 사진=임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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