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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스페셜] 술병에 경고그림, 어떻게 생각하세요?

중앙일보

입력

담뱃갑에는 흡연 경고그림이 들어가지만 술병에는 음주운전 경고그림이 없다. [중앙포토]

담뱃갑에는 흡연 경고그림이 들어가지만 술병에는 음주운전 경고그림이 없다. [중앙포토]

하루 평균 560명 도로 위서 비틀비틀

지난달 또 한 번의 끔찍한 음주 후 운전 교통사고로 2명이 소중한 목숨을 잃었다. 배우 박해미(54)의 남편인 뮤지컬 제작자 황민(45)씨가 낸 사고다. 당시 황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취소 수치(0.104%)였다. 25t 화물차를 들이받았다. 황씨는 사고 당시 시속 167km로 주행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사고 충격으로 동승한 뮤지컬 배우 A씨(20)와 B씨(31)가 숨졌다. 음주운전은 삶을 송두리째 짓뭉개버리는 끔찍한 사고로 이어진다. 전문가들은 처벌수위를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술≠운전’이라는 운전자들의 인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실제 음주 후 운전으로 사고가 발생한 차량의 모습. 왼쪽이 가해차량이고, 오른쪽은 피해차량이다. [중앙포토]

실제 음주 후 운전으로 사고가 발생한 차량의 모습. 왼쪽이 가해차량이고, 오른쪽은 피해차량이다. [중앙포토]

17일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2014년 이후 음주운전 적발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4~2017년 간 경찰이 적발한 음주 운전자는 무려 92만6674명에 이른다. 지난해만 20만5187명, 하루 평균 562.2명이 도로 위에서 ‘비틀’ 거린 셈이다. 지난 한 해 동안 발생한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고로 439명이 목숨을 잃고, 3만3364명이 다쳤다. 4년간의 사상자는 15만5534명(사망 2095명)에 달한다. 지난해 말 기준 서울 종로구 인구 15만4770명과 비슷한 수치다. 이 의원은 “술을 마시면 절대 운전대를 잡지 않는 문화가 하루빨리 정착돼야 한다”고 말했다.

졸업식날의 음주운전으로 졸업사진이 생(生)의 마지막 사진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음주예방 캠페인. [사진 MADD]

졸업식날의 음주운전으로 졸업사진이 생(生)의 마지막 사진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음주예방 캠페인. [사진 MADD]

보행자 전치 4주=1970만원+α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은 만만치 않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에 따르면 한해 8000억원 이상의 경제적 손실이 음주운전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단순히 경찰의 음주단속에 걸릴 경우 운전자가 부담하는 비용은 벌금, 보험료 할증 등을 포함해 320여만원이다. 혈중알코올농도 0.05~0.10% 미만 상태서 차를 몰다 보행자를 치어 전치 4주의 피해를 끼칠 경우는 수리비·병원비 등으로 1970만원+α이다. 한 지방경찰청 화장실에는 소주 한잔의 음주운전 가격을 2억5000만원으로 책정하기도 했다. 파면 징계로 받지 못할 급여에 연금 손실액을 더한 것이다.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회문제는 국내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해외 역시 피해가 심각하다 보니 일부 ‘충격요법’을 쓴 나라도 있다. 바로 위 유튜브 영상인 ‘술집 화장실의 충격’(pub loo shocker)’ 공익 캠페인이 대표적이다. 처참한 인형의 모습은 피해자의 얼굴이다.

미국에서는 음주운전 사고로 수감 중인 죄수가 술집 공용화장실 거울 속에 나타나 음주운전을 하지 말 것을 당부하는 캠페인이 진행된 바 있다. 브라질에서는 센서를 단 병맥주 쿨러를 기울여 끝까지 술을 따르면 차량 충돌 소리가 난다. “음주와 운전은 결코 끝이 좋지 않다(drinking and driving never ends well)”는 메시지다. 세계적인 음주운전 예방 운동 단체인 매드(MADD·mother against drunk driving)는 녹색의 심장박동 측정선이 술병→차 다음에 멈춘 광고물을 제작한 적 있다. 사인(死因)이 음주운전임을 암시한다.

술, 운전 다음의 심장박동은 멈춰 있다. 美 음주운전 예방운동 단체인 MADD(mother Aaginst drunk driviing)의 포스터. [사진 MADD]

술, 운전 다음의 심장박동은 멈춰 있다. 美 음주운전 예방운동 단체인 MADD(mother Aaginst drunk driviing)의 포스터. [사진 MADD]

음주운전 사고 그림 라벨에 넣은 와인

아예 술병에 음주운전 경고 그림을 넣는 나라들도 있다. 아래 사진은 지난 2016년 러시아에서 생산된 장쟈끄 와인의 라벨이다. 유럽 일부 국가 중에는 캔맥주 겉면에 ‘금지’ 메시지를 주는 사선이 들어간 빨간 원 안에 차를 넣은 픽토그램을 인쇄해 넣기도 한다.

장쟈끄 와인병 라벨에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고 광경이 그려져 있다. [사진 유튜브 화면 캡처]

장쟈끄 와인병 라벨에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고 광경이 그려져 있다. [사진 유튜브 화면 캡처]

술병 경고 그림은 담뱃갑과 달리 세계보건기구(WHO)의 권고사항이 아니다 보니 도입사례가 많지는 않다. 하지만 의무적으로 도입할 경우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담뱃값의 흡연 경고 그림의 경우 실제 금연에 영향을 미쳤다. 질병관리본부의 ‘2017년 지역사회건강조사’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성인 남성의 흡연율은 39.3%로 직전 연도(40.6%) 보다 1.3%포인트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흡연 경고 그림 의무화는 지난해 2월 본격적으로 시행된 정책이다.

유럽의 캔맥주에 붙어 있는 음주운전 경고그림. [사진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유럽의 캔맥주에 붙어 있는 음주운전 경고그림. [사진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영국의 술병 라벨에 인쇄된 적정음주량 표시 및 경고그림은 하루 권장량과 임산부 음주 금지 등 내용을 담고 있다. [중앙포토]

영국의 술병 라벨에 인쇄된 적정음주량 표시 및 경고그림은 하루 권장량과 임산부 음주 금지 등 내용을 담고 있다. [중앙포토]

"경고 그림으로 '술≠운전' 인식 심어줘야"

술병 라벨에 음주운전 경고문구와 그림을 넣어보면 어떨까? [사진 도로교통공단]

술병 라벨에 음주운전 경고문구와 그림을 넣어보면 어떨까? [사진 도로교통공단]

현행 국민건강증진법은 ‘과다한 음주는 건강에 해롭다’, ‘임신 중 음주는 태아의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내용의 경고 문구만 표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술병에 ‘음주 후 운전은 자신과 타인의 생명을 위협한다’는 경고 문구(민주당 이춘석 의원 대표발의 국민건강증진법 일부개정안)와 함께 경고 그림까지 넣는 게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유상용 책임연구원은 “‘술 한 잔만 마셔도 운전하면 절대 안 된다’는 사회적 경각심 제고가 시급한데 경고 그림 도입이 도움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민욱 기자, 여경훈 리서처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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