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북한, 예멘 반군에 탱크·탄도미사일 몰래 팔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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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14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대북제재는 김정은 위원장에게 비핵화를 설득하기 위한 트럼프 대통령의 노력에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AFP=연합뉴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14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대북제재는 김정은 위원장에게 비핵화를 설득하기 위한 트럼프 대통령의 노력에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AFP=연합뉴스]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망이 전방위로 뚫렸다는 새로운 유엔 보고서가 나오자 미국이 발칵 뒤집혔다. 미국은 남북 정상회담 직전 유엔 안보리 긴급회의를 소집함으로써 한국 등에 북한의 비핵화 조치가 이뤄지기 전까지 대북제재가 지속될 것이란 점을 분명히 했다.

러시아 반대로 보고서 공개 못해 #폼페이오 “안보리 결의 약화 안 돼” #비핵화 조치 전엔 제재 지속 예고 #전문가 “남북 정상회담 성과 필요”

보고서는 주로 러시아와 중국의 대북제재 위반 내용을 담았다. 러시아와 중국 선박을 동원한 ‘환적’과 북한이 중국을 통해 체계적으로 감시를 회피해 석탄을 선적한 사례를 무수히 명시했다. 유엔 조사관들은 “이런 위반들이 지난해 부과된 석탄 수출 금지는 물론 북한의 원유(연간 400만 배럴) 및 정유(연간 50만 배럴) 수입 상한선을 무시해 최근 유엔 제재를 유명무실하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패널 보고서 초안은 환적에 동원된 러시아 기업 2곳과 선박 6척의 이름도 적었지만 러시아 측이 “미국 정보기관의 일방적인 허위 정보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반발해 삭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유엔 제재를 어기고 시리아·예멘·리비아 등 중동국과 분쟁지역에 무기를 판매하고 있다. 유엔 조사관들은 “북한이 시리아 무기밀매상과 계약을 맺고 예멘 후티족 반군에게 탱크와 로켓추진수류탄(RPG), 탄도미사일을 수출하는 거래를 중개했다는 증거를 발견했다”고 전했다. 또 북한 무기기술자들이 지난해 시리아 군사공장을 여러 번 방문했고, 올초부터 북한이 시리아의 화학무기 개발을 돕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러시아의 공개 반대로 보고서는 현재까지 비밀로 분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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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도 14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열어 “러시아가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의 보고서를 수정해 안보리 결의안을 약화하려고 적극 시도했다”고 비판하며 “대북제재위는 독립적으로 유지돼야 하며 보고서가 원본대로 발행되길 바란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북제재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완전하고 최종적인 한반도 비핵화를 설득하기 위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유엔 보고서는 중국 기업들이 북한의 철·강철 및 식품과 기타 상품을 수천만 달러어치 사들였다고 성토했고, 섬유만도 지난해 4분기 1억 달러어치 수입했다고 밝혔다. 이는 중국이 유엔에 보고한 500만 달러의 20배다. 또 중국 내에서 안보리가 금지한 북한과의 합작기업 200개를 발견했으며 이들이 소프트웨어 개발에서 건설, 양식업까지 방대한 영역에 종사하고 있다고 썼다. 유엔 조사관들은 러시아에서도 이런 합작기업 39개를 찾아냈다.

유엔 보고서는 북한 은행 종사자의 추방 의무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와 중국에선 북한 금융기관들이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유럽연합(EU)이 북한 계좌들을 폐쇄했을 때 아시아의 다른 계좌로 자금을 쉽게 이체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보고서는 “금융제재는 가장 저조한 이행과 적극적인 제재 회피 영역이다. 최소 5개국에서 북한 대리인들이 사실상 면책특권을 갖고 활동 중”이라고 꼬집었다.

미국이 이처럼 북한의 비핵화 이행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는 만큼 18~20일 남북 정상회담에서 실질적 진전이 없다면 남북은 물론 북·미 관계가 어려움을 맞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청와대는 이번 회담의 핵심 의제를 ‘비핵화’로 공식화했다. 남북 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인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16일 “문재인 대통령은 회담의 목표를 ‘남북 관계의 개선·발전과 비핵화를 위한 북·미 대화를 중재하고 촉진하는 것, 그리고 남북 간의 군사적 긴장과 전쟁 위협을 완전히 종식시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북·미 양쪽을 대표하는 수석협상가(chief negotiator) 역할을 해 달라”는 요청을 받은 문 대통령의 과제는 비핵화의 실질적 행동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지난 5일 대북 특사로 방북했던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비핵화를 위한 실천적 방안을 협의키로 했다”며 이 같은 목표를 분명히 했다.

그러나 중재는 쉽지 않다. 북한은 선(先) 종전선언을, 미국은 선(先) 비핵화 조치를 요구하고 있어서다.

정영태 통일군사연구소장은 “북한의 핵실험장뿐 아니라 지난 핵실험으로 확보한 플루토늄과 우라늄 등 ‘현재 핵’에 대해 신고와 함께 투명한 검증이 약속돼야 한다”며 “중간선거를 앞둔 미국의 상황을 고려하면 구체적 성과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서울=강태화 기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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