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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백산 잣나무숲에서 단잠…이게 진짜 ‘웰니스’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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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웰빙(Wellbeing)·힐링(Healing) 열풍이 지나고 이제는 웰니스(Wellness) 시대다. 웰니스는 건강(wellbeing)과 행복(Happiness)의 합성어다. 여태 건강과 행복을 추구하며 살았는데, 웰니스는 또 뭔가.
장태수 단국대 의대 교수는 “웰빙이 신체 건강에, 힐링이 정신적 회복에 집중한다면 웰니스는 이를 아우르는 광범위한 개념”이라며 “유럽과 북미에서 그랬듯이 한국에서도 운동·의료·관광과 접목된 웰니스 산업이 주목받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도 지난해부터 ‘웰니스 관광’ 알리기에 힘을 쏟고 있다. 웰니스를 경험할 수 있는 관광 시설 33개를 선정했는데 면면이 다채롭다. 특급호텔이 있는가 하면, 식물원과 화장품 회사 매장도 있다. 공통점은 모두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것. 경북 영주 국립산림치유원의 1박2일 프로그램에 참여해 웰니스를 경험했다.

국립산림치유원은 경북 영주 소백산 자락에 들어서 있다. 단기 치유 프로그램에 참가한 사람들이 잣나무숲 해먹에 누워 쉬고 있다. 최승표 기자

국립산림치유원은 경북 영주 소백산 자락에 들어서 있다. 단기 치유 프로그램에 참가한 사람들이 잣나무숲 해먹에 누워 쉬고 있다. 최승표 기자

칡꽃 향 진동하는 숲길을 걷다

국립산림치유원(이하 치유원)은 소백산(1439m) 옥녀봉 자락에 있다. 이름 그대로 산속에서 치유를 경험하는 시설이다. 산림청에서 1400여억원을 들여 2016년 8월 개장했는데 아는 사람이 드물다. 더위가 완전히 물러간 9월 7일 개인 방문객은 많지 않았다. 대형버스를 타고 온 단체 방문객이 대부분이었다.
오후 2시 방문자센터에서 입실 수속을 했다. 숙소에는 TV‧에어컨‧물‧수건이 없고, 무선인터넷도 터지지 않는단다. 곁에 있던 40대 남성은 “대체 밤에 뭐하란 말이지?”라며 볼멘소리를 냈다. 내심 ‘디지털 디톡스’를 기대했는데 휴대전화를 압수하거나 통신 자체가 먹통인 건 아니었다.

국립산림치유원 주치마을에 있는 숙소. 개인·가족 방문객이 주로 이용한다. TV와 에어컨이 없다. 최승표 기자

국립산림치유원 주치마을에 있는 숙소. 개인·가족 방문객이 주로 이용한다. TV와 에어컨이 없다. 최승표 기자

프로그램은 3시부터 시작했다. 작은 강당에 10명이 모였다. 김혜경 산림치유지도사를 따라 몸을 풀었다. 요가나 필라테스 수준은 아니었다. 연세 지긋한 어른이 있어서 뻣뻣한 몸을 푸는 스트레칭에 집중했다. “등은 사람의 감정을 드러낸다”는 말이 기억에 남았다. 굽은 등, 풀이 죽은 등, 화난 등. 나이를 먹을수록 얼굴과 뱃살이 아니라 ‘등 건강’을 챙길 일이었다.

단기 치유 프로그램은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시작한다. 소도구(트윈롤러)를 이용해 참가자끼리 몸을 풀어주는 모습. 최승표 기자

단기 치유 프로그램은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시작한다. 소도구(트윈롤러)를 이용해 참가자끼리 몸을 풀어주는 모습. 최승표 기자

숲으로 나갔다. 치유원의 7개 숲길 중 마실치유숲길(5.9㎞) 일부 구간을 걸었다. 잘생긴 소나무가 우거진 숲, 칡꽃 향기가 은은한 산책로, 영주시 풍기읍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도 좋았지만, 잣나무숲에서 해먹 치고 쉬었던 시간이 가장 좋았다. 바람이 선선했고, 나무 사이로 햇볕이 잘게 부서지며 쏟아졌다. 20분에 불과했지만, 몸 안의 독소가 다 빠져나간 것 같았다. 해먹에 눕자마자 코를 고는 참가자도 있었다.

숲 치유 프로그램을 마치고 치유원 방향으로 걸어가는 길, 겹겹 산등성이와 풍기읍이 한눈에 들어왔다. 최승표 기자

숲 치유 프로그램을 마치고 치유원 방향으로 걸어가는 길, 겹겹 산등성이와 풍기읍이 한눈에 들어왔다. 최승표 기자

숲에서 만난 칡꽃. 진한 향기 덕분에 걷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최승표 기자

숲에서 만난 칡꽃. 진한 향기 덕분에 걷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최승표 기자

다시 치유원 쪽으로 걸으면서 소감을 나눴다. “시골 출신이어서 고향에 온 듯 편했다” “비염이 다 나은 것 같다” “당장 해먹을 사고 싶다” 숲을 다녀온 참가자의 얼굴이 딴판이었다. 식물처럼 광합성을 한 듯 모두 푸릇푸릇해 보였다.

2016년 문 연 영주 국립산림치유원 #1박2일 단기 체험 프로그램 인기 #저염식 먹고 TV 없는 숙소서 휴식 #우주인이 쓰는 첨단 장비로 운동도

사람 손길 못지않은 물의 힘

저염·저칼로리를 표방한 치유원 음식은 정갈했다. 찜닭·콩나물국·샐러드 등 흔한 밥상이었지만, 훈련병 시절만큼 저녁을 많이 먹었다. 잣나무숲에서 마음껏 들이마신 피톤치드와 음이온이 위장 기능까지 치유했나 보다.
오후 7~9시에는 건강증진센터에서 5가지 치유 장비를 이용했다. 우주선에도 탑재한다는 음파진동운동기와 음파로 반신욕을 하는 기기를 이용하니 온몸이 땀으로 흥건했다. 가장 용한 건 아쿠아 마사지 기기였다. MRI 촬영기 같은 원통 기구에 들어가서 물 마시지를 받았는데 얇은 막이 있어 몸이 젖지 않았다. 마사지사의 손길만큼은 아니어도 뭉친 근육이 풀린 기분이 확연했다. 요즘 프로야구 선수들도 이 기기를 쓴단다.

건강증진센터에서는 치유 장비를 체험해볼 수 있다. 아쿠아마사지 기기는 얇은 막이 있어서 몸이 젖지는 않지만 강한 물줄기로 마사지 효과가 탁월하다. 최승표 기자

건강증진센터에서는 치유 장비를 체험해볼 수 있다. 아쿠아마사지 기기는 얇은 막이 있어서 몸이 젖지는 않지만 강한 물줄기로 마사지 효과가 탁월하다. 최승표 기자

물 마시지 덕분인지 맑은 공기 덕분인지 모처럼 단잠을 잤다. 이른 아침, 맑은 기분으로 산책에 나섰다. 전망대에 서니 풍기읍 방향으로 겹겹으로 늘어선 산등성이가 보였다. 구름과 햇볕이 거푸 다른 결의 조명을 만들 때마다 산이 파도처럼 너울거렸다.
아침을 먹고 ‘수 치유센터’로 갔다. 수영복을 입고 바데풀로 들어가 강사의 지시에 따라 몸을 풀었다. 참가자끼리 짝지어 스트레칭을 하고, 우동 면발 같은 아쿠아 누들을 이용해 균형을 잡는 운동을 했다. 장년‧노년층이 많아서인지 어렵지는 않았다.

마지막으로 체험한 수 테라피. 바데풀에서 수중 운동을 하고 강한 수압을 이용해 전신을 자극하는 체험을 했다. 최승표 기자

마지막으로 체험한 수 테라피. 바데풀에서 수중 운동을 하고 강한 수압을 이용해 전신을 자극하는 체험을 했다. 최승표 기자

점심을 먹고 치유원을 나왔다. 1박2일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풍기읍의 소문난 맛집인 도넛 가게를 찾아갔다. 며칠 동안 구경도 못했던 기름기 잔뜩 머금은 밀가루 간식과 시원한 커피를 삼키며 생각했다. 왜 요즘 사람들은 치유와 위로에 목말라 할까. 상처 받고 지친 사람이 많아서일 터이다. 그럼 ‘웰니스’를 위해 도시를 떠야 하나. 간단치 않은 문제다. 당장 뭐라도 실천하는 게 중요할 테다. 집 근처 아차산을 수시로 오르겠다는 다짐을 해봤다. 이틀간 경험했듯이 숲이 놀라운 치유의 힘을 지닌 건 자명한 사실이니까.

국립산림치유원 주치마을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풍기읍. 이 풍경만 보고 있어도 심신이 회복되는 기분이 든다. 최승표 기자

국립산림치유원 주치마을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풍기읍. 이 풍경만 보고 있어도 심신이 회복되는 기분이 든다. 최승표 기자

◇여행정보=국립산림치유원(daslim.fowi.or.kr)은 자가용이 없으면 찾아가기 힘들다. 서울시청에서 208㎞ 거리로 약 2시간 30분 걸린다. 세 끼 식사와 네 가지 체험을 포함한 1박2일 단기 프로그램(2인 기준)은 일~목요일 14만8000원, 금‧토요일 18만7000원이다. 치유 장비 체험료 1만5000원(1인)은 별도다.

영주=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웰니스 관광 33선] 산에서 명상할까 한방 스파 즐길까

강원도 정선 가리왕산 인근에 자리한 파크로쉬 리조트 앤 웰니스에서 요가를 체험 중인 사람들. [사진 한국관광공사]

강원도 정선 가리왕산 인근에 자리한 파크로쉬 리조트 앤 웰니스에서 요가를 체험 중인 사람들. [사진 한국관광공사]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웰니스 관광 시설 33곳을 선정한 건 원래 외국인 관광객을 위해서였다. 자연휴양림‧스파시설뿐 아니라 뷰티‧한방 업체를 포함한 까닭이다. 한국관광공사 주성희 의료웰니스팀장은 “외국에선 경험할 수 없는 ‘한국형 웰니스’를 알리려는 사업”이라며 “내국인이 찾아가도 좋다”고 설명했다.
33개 시설은 4가지 주제로 구분한다. ‘자연‧숲치유’ 시설에는 국립산림치유원을 비롯해 식물원·휴양림 7곳이 포함됐다. ‘힐링‧명상’ 시설은 모두 5곳이다. 힐리언스 선마을(강원도 홍천)이 대표적이다. 정신과 의사 이시형 박사가 촌장으로 있는 곳이다. 평창 겨울올림픽 때 개장한 파크로쉬 리조트 앤 웰니스(강원도 정선), 비스타 워커힐(서울)은 차별화된 힐링‧명상 프로그램을 내세운 특급호텔로 꼽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웰니스 시설 33곳에는 한방 관련 체험을 할 수 있는 곳도 있다. [사진 한국관광공사]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웰니스 시설 33곳에는 한방 관련 체험을 할 수 있는 곳도 있다. [사진 한국관광공사]

‘뷰티‧스파’ 시설은 가장 많은 16곳이 있다. 설화수 플래그십 스토어(서울) 같은 화장품 회사가 있는가 하면 천일염을 활용한 태평염전 스파(전남 신안)도 있다. ‘한방’ 시설은 5곳이 꼽혔다. 한국관광공사 홈페이지(wellness.visitkorea.or.kr) 참조.
최승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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