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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매치 못 여는 부산의 사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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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황선윤
황선윤 기자 중앙일보 기자
황선윤 부산총국장

황선윤 부산총국장

지난 11일 축구 국가대표팀 칠레와의 평가전은 원래 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에서 열릴 계획이었다. 이 경기장은 2002년 아시안게임과 월드컵 경기가 열렸던 곳이다. 그러나 잔디 사정 때문에 불발됐다. 지난 7월 한 인기가수의 공연에 2만여명이 몰리면서 잔디 대부분이 크게 훼손된 데다 폭염까지 겹쳐 ‘불가’ 판정을 받았다. 지난달 칠레 대표팀 실사단과 대한축구협회 관계자가 경기장을 둘러본 뒤 잔디가 말라 죽어 경기를 열 수 없다고 부산시로부터 개최권을 박탈한 것이다.

‘축구 A매치 14년 만에 부산 개최’를 갈망해온 축구 팬들의 비난이 쏟아진 것은 물론이다. 부산 사람들도 ‘고향 경기장’에서 손흥민·이승우 선수의 뛰는 모습을 직접 보고 싶다는 항의가 이어졌다. 부산에서는 2004년 독일과의 경기를 끝으로 축구 A매치가 열린 적 없다. 다급해진 부산시는 오는 10월 12일 열릴 우루과이와의 평가전을 유치하기 위해 대한축구협회에 잔디 개선을 약속하고 유치 의사를 밝혔다. 이에 축구협회는 잔디 훼손을 우려해 10월 2~3일 열리는 아시아송페스티벌의 일정 변경을 요구했다. 부산시로서는 이미 입장권 판매까지 마쳐 일정을 바꿀 수 없어 유치 의사를 또 철회해야 했다. 예상된 헛발질이다.

부산시는 뒤늦게 지난 7일 아시아드 주경기장 잔디 보호 대책을 수립하고 2019년부터 정기적으로 국제 축구대회와 2023 AFC 아시안컵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겠다고 해명했다. 아울러 시 체육진흥기금으로 아시아드 경기장의 선수대기실 로커 교체와 도색 같은 대책을 내놓기도 했다. 이번엔 뒷북인 셈이다.

부산시의 축구 홀대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인구 350만 도시에 축구 전용 경기장 하나가 없다. 아시아드 경기장은 월드컵이 열리긴 했지만, 축구 관람엔 부적절한 종합운동장이다. 전용 경기장을 가진  창원·포항 등 중소도시보다 못한 셈이다. 그동안 수천억 원을 들여 야구 돔경기장을 짓겠다는 시 발표는 있었지만, 축구 전용 경기장을 짓겠다는 발표는 없었다.

이런 가운데 아시아드 주경기장 등 체육시설을 관리하는 부산시 체육시설 사업소 직원 70여명이 편법으로 야근 수당을 챙기다 최근 정부 감사팀에 적발됐다. 실제 근무를 하지 않고 ‘야근 도장 찍기’로 수당을 챙겨갔다 덜미를 잡혔다. 이러니 축구 국가대표 경기가 하나 제대로 열리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부산시 책임이 크다.

황선윤 부산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