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bs5060재취업] 넘치는 오일머니 … 일감은 많은데 일손이 달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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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면

삼성물산 건설부문이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짓고 있는 ‘버즈 두바이’빌딩의 건설 현장. 이 빌딩은 160층(높이 700) 이상으로 건설된 예정이다. [연합뉴스]

5년 전 한진중공업에서 부장으로 정년 퇴직한 김모(61)씨. 그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사막에서 일했던 추억을 떠올리며 다시 해외 건설현장에서 일할 꿈을 꾸고 있다. 해외 건설 현장에 인력이 달린다는 소식을 듣고 해외건설협회의 인력 데이터베이스에 이력서를 넣었다.

해외건설협회는 지난달 13일부터 건설 분야에 일하다 퇴직한 사람의 등록을 받고 있다. 한 달여간 등록된 중장년층 인력은 600명에 육박하고 있다. 이 중 김씨처럼 60대를 넘긴 사람은 16%(98명)가 넘었고, 50대 이상은 65%에 달했다. 50, 60대 건설 기술자들 사이에 '제2의 중동 붐'이 불고 있는 셈이다. 해외건설협회 플랜트수주지원센터 관계자는 "중동 지역의 건설 수주가 늘면서 노련한 기술 인력이 많이 필요한데 마땅한 사람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일부 대기업은 전문 위원이라는 직책을 주고 퇴직자를 다시 부르는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30년 노하우가 아까워서"=김씨는 "아직 힘이 있는데 쌓아 놓은 경험을 썩히기가 아깝다"며 "외국에서는 70대에도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데 우리나라는 너무 일찍 현장을 떠난다"며 지원 동기를 밝혔다. 전기 기술자 출신인 그는 1980년대에 대림산업.삼익건설.한진중공업 직원으로 사우디.이란에서 9년간 일했다. 사우디의 석유화학 플랜트 현장에선 태국.필리핀 기술자들을 관리했다. 김씨는 퇴직한 뒤 소규모 자영업을 하고 있다. 김씨의 아내가 "늙어서 무슨 고생을 하려고 하느냐"며 반대하고 있지만 해외 취업에 성공하면 아내에게 일을 맡기고 현장으로 달려갈 계획이다.

올해 회갑인 박모씨는 사우디와 리비아에서 토목기사로 일했다. 동아건설 공채 1기다. 박씨는 "사막에서 밥을 먹다가 모래가 밥그릇에 수북히 쌓였던 기억이 눈에 선하다"고 말했다. 2000년 동아건설이 파산하면서 55세에 실직한 그는 소규모 건설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그러나 일감이 없어서 다시 중동으로 눈을 돌리게 됐다. 박씨는 "건설 경기가 가라앉아 일할 수 있는 곳은 해외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장 소장이나 프로젝트 매니저 직책을 바라고 있다. 그는 "노하우는 더 늘었으니 현장에서 잘 해낼 것"고 말했다.

중동행을 고대하는 퇴직 장년층들의 근로의욕은 대단했다. "젊어서부터 공사 현장을 쫓아다니느라 '야전 생활'이 익숙하다. 아이들이 입학하고 난 이후엔 계속 떨어져 산 것 같다." "좀 더 나은 삶을 위해서라면 해외 현장이 국내와 다를 게 없다." "20여 년 전 6개월~1년간 일하고 휴가를 받아 가족들에게 줄 외제 선물을 사서 고국을 향하던 때가 떠오른다."

◆체력도 주요 채용기준=정부는 해외 건설 인력의 풀을 만들어 건설업계에 지원할 방침이다. 건설업계는 앞으로 3년간 5000여 명의 해외 건설 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건설업체들이 중동 지역의 공사를 많이 따낼수록 인력 수요는 더 늘 전망이다.

해외건설협회는 채용 가능성이 큰 직종으로 배관.용접.전기 분야 등을 꼽았다. 업체 사정에 따라 인력 수요는 다르지만 주로 현지 채용인의 기술을 관리하는 반장급 인력과 현장 소장 등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해외 공사를 수주하거나 입찰에 참가한 건설업체는 건강과 능력을 테스트한 뒤 채용을 한다.

그러나 고령 지원자들이 얼마나 채용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10여 명의 반장급 인력을 채용하는 W사 관계자는 "해외 건설 현장에서는 경험이 가장 중요하지만 체력도 무시할 수는 없다"며 "공사 현장의 특성과 개인의 능력.체력 등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건설 현장의 월급은 400만~500만원(반장급) 수준이다.

김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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