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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깼나, 베트남 펀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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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최모(46)씨는 지난 여름 내내 속을 끓였다. 올 초 베트남 펀드에 목돈을 넣었다가 20% 넘게 손실을 봤기 때문이다. 수익률을 확인할 때마다 속만 상해 한동안 펀드 계좌는 들여다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최근 들어 오랜만에 계좌를 확인하고는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소폭이지만 수익이 난 걸 확인해서다. 그는 “수익률이 1%를 겨우 넘었지만 6개월 가까이 ‘마이너스(-)’였던 걸 생각하면 천만다행”이라고 말했다.

작년 35% 수익률, 4613억 몰려 #베트남 주가 무너지자 마이너스 #신흥국 중 펀더멘털 탄탄해 회복 #최근 한달새 펀드 수익 플러스로

짧은 시간 동안 영욕을 모두 맛봤던 베트남 펀드가 부활하고 있다. 바닥으로 추락하면서 체면을 구겼던 베트남 펀드의 수익률이 조금씩 회복되는 모양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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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펀드는 지난해 국내 펀드 시장의 대표적 ‘히트 상품’이었다. 평균 35.41%의 연간 수익률을 기록하면서 승승장구했고, 자연스레 많은 돈이 베트남 펀드로 몰렸다. 지난해 베트남 펀드에 몰려든 자금(순유입액)은 4613억원에 이른다. 같은 기간 순유입액으로 따졌을 때 해외 주식형 펀드 중 국가별 단일 펀드로는 인도(3746억원)와 중국(2383억원)을 제치고 베트남이 가장 많았다.

지난 4월 초만 해도 베트남 주가지수인 VN지수는 1200선을 넘어서며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 터키와 아르헨티나 등 신흥국 금융위기가 불거지며 넉 달 동안 하락세를 이어갔다. 7월 VN지수는 800대까지 미끄러졌다. 이 때문에 베트남 펀드들도 속속 손실을 보기 시작했다. 작게는 10%부터 많게는 30%까지 손실이 났다.

이랬던 베트남 증시와 베트남 펀드들이 최근 들어 조금씩 부활하는 모양새다. 속절없이 추락하던 베트남 VN지수가 조금씩 반등하더니 이달 들어 900대 중반까지 회복했다. 자연스레 펀드 수익률도 바닥을 찍고 반등하고 있다.

10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베트남 주식형 펀드의 최근 1개월 수익률은 0.99%였다. 지난 7일 기준으로 설정액이 10억원 이상인 공모펀드를 대상으로 집계한 결과다.

최근 1개월 수익률 상위 베트남 펀드

최근 1개월 수익률 상위 베트남 펀드

이 기간에 ‘HDC 베트남적립식 증권투자신탁 1’은 2.62%, ‘삼성 베트남증권자투자신탁UH’는 1.87%, ‘유리 베트남알파연금저축증권자투자신탁’은 1.79%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모두 지난 6개월간 수익률이 -10%를 밑도는 ‘마이너스’ 펀드들이다.

터키발(發) 신흥국 위기와 미·중 무역 분쟁 상황이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든 시점에 경기 펀더멘털(기초체력)이 다른 신흥국에 비해 탄탄한 편인 베트남의 주가지수 반등 폭이 컸다.

이소연 한국투자증권 수석연구원은 “베트남은 정부에서 환율을 통제하는 ‘변동 관리 환율제’를 시행하고 있어 다른 신흥국과 달리 통화가치의 변동성이 제한적”이라며 “그동안 경제 펀더멘털이 아닌 대외 변수로 인한 수급 문제로 베트남 지수가 조정을 받아왔던 만큼, 이런 수급 문제가 해소되기 시작하면서 펀더멘털 측면에서 베트남이 가진 장점이 부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베트남 주가지수와 펀드 수익률의 추가 상승 여력은 충분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문남중 대신증권 연구위원은 “최근 국내총생산(GDP)에서 기여도가 5.9%로 올라설 만큼 베트남 관광 산업이 활성화되고 있고, 노동력이 풍부한 베트남 시장에 대한 외국인의 투자도 지속해서 늘어나고 있다”며 “베트남 경제지표가 ‘상저하고(상반기에 낮고 하반기 높은)’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걸 고려해 올 3분기 이후, 4분기 베트남 증시를 긍정적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물론 방심은 금물이다. 신흥국 금융 위기, 미·중 무역 전쟁 등 ‘살아있는 위험 요소’들이 언제 베트남 증시에 악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소연 연구원은 “VN지수는 연내 1100대까지 안착할 것으로 예상하지만, 신흥국 위기 등 대외 변수가 다시 불거지면 속도 조절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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