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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고용 없는 노동정책 되풀이하면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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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리셋 코리아 고용노동분과 위원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리셋 코리아 고용노동분과 위원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이 취임한 지 1년이 지났다. 이재갑 신임 장관 후보자가 추천돼 청문회를 앞둔 시점에서 새 노동정책 향방은 과거에 대한 객관적 평가로부터 출발할 것이다. 고용노동분야 수장인 장관은 국민의 이익을 도모해야 한다. 과거 이명박 정부 때 ‘비즈니스 프렌드리(친기업)’라는 정책 모토가 편향적이라고 비판받았던 것을 반추해 볼 필요가 있다. 지난 1년 노동 행정은 노동단체의 민원 해결, 대기업-정규직-노조(1차 노동시장)에 맞춰졌다는 비판이 많다.

노동행정이 대다수 국민 배제하고 #노동단체 민원 해결에 주력해 #신임 장관, 지난 1년을 반면교사로 #일자리 창출 부서로 거듭나게 해야

대다수 국민은 가입률 10%대인 노동조합원이 아니고 7~8%대인 1차 노동시장에 있지 않다. 1차 노동시장 존중은 대다수 국민을 배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자리 창출 주체인 기업들은 서슬 퍼런 정국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유연화 없는 근로시간 단축 입법 외에 산재보험의 출퇴근 산재 인정, 최저임금 시급 계산에 주휴시간 포함 등 1차 노동시장 주역들을 대변하는 노동단체의 관심 사항은 신속히 관철되었다.

그러나 일자리 창출의 주요 과제인 임금 체계 개선, 공공부문 성과등급제, 탄력근로시간제 단위 기간 확대 등은 무관심하거나 ‘실태 조사 중’이라는 식의 태도를 취해 왔다. 정책은 당·정·청의 조율을 전제로 한다. 여당의 원내대표가 근로시간 단축 시 탄력근로제 확대 필요성을 제기했지만, 고용노동부는 “기업들이 다 준비됐으니 걱정 없다”는 말로 현장의 고통을 외면했다. 오죽하면 총리까지 나서서 계도기간을 설정하는 등 궁여지책을 택할 수밖에 없었을까.

지난 1년 고용노동부는 ‘도로노동부’가 됐다. 기획재정부 수장과 청와대 정책실장 간 고용정책 의견 대립에도 고용노동부 수장은 보이지 않았다. 노동 수요를 전담하는 산업자원부와 조율하는 정책을 입안한 것도 없다. 언론에 난 “기업 혁신을 끌어낼 수 있는 인재 양성, 규제 혁신 등을 통한 투자 여건, 고용 창출 여건 개선을 하겠다”는 장관의 발언은 다분히 수사적이다. 전문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노동정책을 수립하는데 부족했고, 노동정책에 대한 원칙과 콘텐츠를 가지고 장관이 국민과 언론을 설득하는 장면도 보이지 않았다.

시론 9/10

시론 9/10

이 기간 고용노동부는 근로 감독 건수를 2만에서 10만 건으로 목표치를 늘리면서 근로 감독의 노동경찰화에 박차를 가했다. 기간제 근로자 사용 제한 입법, 포괄임금 금지 지침 작성 등 기업에 부담을 주는 입법 추진은 고스란히 살아있어 다음 장관의 일자리 창출 성과에 부담을 줄 것이다. 김영주 장관이 임명한 최저임금 공익위원들의 임기는 앞으로도 2년 남았다. 지난 7월 벌어진 고용 참사는 장관 말대로 최저임금 때문이 아닐 수 있다. 청와대와 기획재정부가 일자리정책의 저성과에 속앓이하는 상황에도 고용노동부는 기업들이 고용을 주저하게 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지난 1년 고용노동부 공무원의 고용노동정책 추진 역량도 크게 떨어졌다. 교육·연구에 몰두해야 할 교수들과 노·사 한 편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변호사·노무사들로 구성된 ‘고용개혁위원회’를 만든 뒤 공무원들이 위원회에서 수사나 재판을 받듯 기자회견을 하게 했다. 훗날 이것이 적폐가 돼 관계자들이 위법이라고 시달리지 않을까 걱정된다. 고용노동부 자체 감사 등 기존 시스템으로 할 수 있는 일이었다고 본다. 열심히 일하는 공무원들은 자신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이후 정책 역량이 큰 공무원들의 사직이 빈번해졌다.

정책을 한 것이 아니라 정치를 했다는 비판도 많다. 장관이 재래시장을 돌아다니며 신청을 독려했던 일자리안정기금은 내후년쯤 지원이 중단되면 고용보험 등의 부담만 증가할 것이라는 소상공인들의 불신으로 외면당했다. 그 결과 2조9000억원의 예산 중 1조원가량이 남을 전망이다.

노동행정 시스템을 개선해야 할 때 관료들을 동원한 현장 노동청은 장관의 정치 이벤트였다. 장관은 개각을 체력 소진 선수를 교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고용행정 분야는 지난 1년 경기도 못 뛰고 체력이 엉뚱한데 소진돼 마이너리그로 강등된 느낌이다. 김영주 장관은 차기 장관의 일자리 성과를 위한 길을 닦았다고 설명하나, 대기업 노조원의 이익을 위해 청년 일자리 창출을 막는 담벼락을 쌓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신임 장관은 고용노동정책의 복원과 함께 고용 조직 재건이라는 부담을 떠안게 됐다. 고용노동부가 노동단체 민원 처리 기관에서 국민을 위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유능한 공무원이 전문 역량을 펼칠 수 있는 부서로 거듭나는 것은, 지난 1년의 행보들을 반면교사로 삼을 때 비로소 시작될 것이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리셋 코리아 고용노동분과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