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행협」23년만에 수술대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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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미간의 오랜 현안인 한미행정협정개정문제가 부쩍 쟁점화하고 있다. 재야운동권의 집요한 문제체기에 이어 외무부·법무부 등 관계부처간의 논의가 본격적으로 벌어지고 있고 주한미군사령부도 최근 한국언론을 상대로 직접 견해를 밝혔다. 「자주·민주·통일국민회의」를 비롯, 우리 재야단체들은 협정자체가 불평등·비합리적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미군 측은 협정이 잘 운용되고 있으며 대부분의 비난들은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맞서고 있어 개정까지는 난관이 예상된다.
한미행정협정내용 중 양측의 견해가 대립되고있는 부분은 △형사재판권 및 구금 △노동3권 △기지와 시설사용문제 등으로 요약된다.
형사재판권 중 가장 논란이 제기되는 것은 형사재판권 포기대목이다. 이 협정의 관련문서인 우리 외무장관과 주한미대사 간의 교환서한은 「대한민국정부가 특정사건에 있어 대한민국당국이 재판을 행사함이 특히 중요하다고 결정하지 아니하는 한 합중국 군당국은 재판권을 가진다」고 돼 있고, 또 다른 부속문서인 합의양해사항에서는 「중요한 범죄」를 △대한민국의 안전에 관한 범죄 △살인·강도·강간죄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재야측 등은 주한미군의 범죄 중 가장 빈도가 높은 폭행에 대해 한국 측이 사실상 재판권을 포기하도록 되어있어 이 협정이 불평등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미군 측은 『고의가 아닌 교통사고나 술주정 그리고 경미한 폭행 등에 미군 측이 기소권을 가짐으로써 한국 측의 재정·행정적인 부담을 줄이는 한편 실질적인 중요범죄에 대해서만 초점을 맞출 수 있다』며 『한국이 재판권을 포기해도 죄의 증거가 드러나면 한국법원이 유사한 범죄에 대해 내리는 처벌보다 엄격한 처벌이 미군법회의에서 내려진다』고 밝히고 있다.
이같이 한미행협은 접수국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범죄에만 재판권을 갖는 네거티브 시스팀을 취하고있어 문제가 되고있는 것이다.
미국은 서독과도 우리와 같은 네거티브 시스팀의 행협을 체결했으나 일본이나 NATO와 맺은 행협에는 이러한 규정이 없다.
범인의 체포 및 구금조항도 주요한 쟁점중의 하나다.
행협 22조5항에는 「피의자가 대한민국의 수중에 있는 경우 요청이 있으면 합중국 군당국에 인도되어야하며…」라는 구절이 있어 재야측 등은 미군피의자에 대한 우리측의 실질적인 수사가 제약받고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미군 측은 미군에 피의자의 신병이 임시로 인도되는 것이 한국당국에 의한 조사 및 기소권을 막는 것은 아니라고 밝히고 신병이 인도되더라도 한국 측의 요청이 있을 때는 언제, 어디라도 그 신병을 다시 한국 측에 인도하게 되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노동3권 문제도 재야 측에선 쟁의가 발생할 경우 1차적으로 노동청에 회부하고 여기서 해결이 안되면 한미합동위에 회부되며 그 후 70일간은 모든 쟁의행위가 금지되게 규정돼(17조2항) 단체행동권행사가 실질적으로 봉쇄되어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군 측은 이 점에 대해 구체적인 반론은 없으나 다만 『미군은 한국노무관계법령의 변경과 병행해 고용원들이 형평의 원칙에 입각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고있다』며 『주한미군의 방위임무에 비추어 필요한 규정을 따르기를 거절한 고용원들이 적절한 행정적 처벌을 받는 것은 공정한 일』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또 재야 측은 기지와 시설사용에 관해 규정한 행협5조2항과 상호방위조약4조가 『미군은 우리 땅 어느 곳이라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미군 측은 그 조항들이 한국방위에 미군이 특별한 기여를 하고있다는 인식에서 제정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특히 토지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될 때 한국정부에 반환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 같은 양측의 대립은 결국 주한미군주둔 자체에 대한 시각차이로 귀착된다는 게 지배적 관측이다.
즉 조직이 군대고 미군이 한국방위를 위해 주둔하고 있다는 점 등을 이해한다면 행협은 문제가 없다는 게 미군측 시각이고, 재야측 등은 양국의 대등관계라는 관점에서 조항자체가 불평등하다는 인식이다.
재야와 일부 법률 전문가들은 「모양」을 따지자면 접수국이 재판권을 갖고 특정사안에서만 주둔국에 재판권을 주는 포지티브 시스팀이 바람직하다고 보고 있다. 반면 우리측 관계자는 물론 법률전문가들도 실질적인 면에서는 네거티브 시스팀이 큰 문제가 없다는 견해도 상당수 있다.
왜냐하면우리측 경찰의 자세에 따라 미군범죄는 얼마든지 범위를 확대해 운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교통위반·경미한 폭행사건이 일어났을 때 우리 경찰이 불편한 언어소통 등으로 행협상의 권한을 처음부터 철저하게 사용하지 못했던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다.
결국 한미행협 개정문제는 주한미군주둔자체에 대한 인식의 조정과 양국관계 전반을 고려해 해결돼야할 문제이기 때문에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안희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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