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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리나를 잡았다, 21세 오사카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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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US오픈 테니스 여자 단식 결승전에서 ‘우상’ 세리나 윌리엄스(왼쪽)를 누르고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오사카 나오미. 프로 데뷔 5년 만에 처음으로 메이저 대회 결승에 올라 우승을 달성했다. [AFP=연합뉴스]

US오픈 테니스 여자 단식 결승전에서 ‘우상’ 세리나 윌리엄스(왼쪽)를 누르고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오사카 나오미. 프로 데뷔 5년 만에 처음으로 메이저 대회 결승에 올라 우승을 달성했다. [AFP=연합뉴스]

“오사카 나오미는 ‘떠오르는 별(rising star)’이 아니다. 이미 떠올랐다(already risen).”

US오픈 테니스 여자 단식 우승 #테니스 여제 윌리엄스에 2-0 완승 #키 1m80㎝ 강력한 파워로 압도 #시속 191㎞ 강서브, 에이스 6개 #어머니 성도 태어난 곳도 오사카

테니스 메이저 대회인 US오픈 주최 측은 오사카 나오미(21·일본·세계 19위)의 우승 소식을 전하며 이렇게 밝혔다. 세계 여자 테니스계에 오사카의 시대가 활짝 열렸다.

오사카는 9일 미국 뉴욕의 빌리 진 킹 내셔널 테니스 센터에서 열린 US오픈 여자 단식 결승에서 ‘테니스 여제’ 세리나 윌리엄스(37·미국·26위)를 세트 스코어 2-0(6-2, 6-4)으로 꺾었다. 오사카가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오사카는 또 일본인으로는 처음으로 메이저 테니스 대회에서 우승한 선수가 됐다. 아시아 선수로는 리나(중국)에 이어 두 번째다. 우승상금은 380만 달러(약 42억7000만원). 오사카는 10일 발표되는 세계 랭킹에서 7위로 올라설 전망이다.

그런데 세계 테니스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오사카는 사과로 우승 소감을 시작했다. 그의 잘못이 아닌데도 매끄럽지 않은 판정 탓에 야유가 터져 나오자 유감을 표시한 것이다. 오사카는 “많은 분이 윌리엄스를 응원하셨는데 이렇게 경기가 마무리돼서 죄송하다”고 밝혔다. 윌리엄스에게도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윌리엄스가 “야유를 멈춰달라. 오사카는 훌륭한 경기력을 보여줬다”고 말한 뒤에야 야유가 환호로 바뀌었다.

오사카는 1세트 게임스코어 0-1에서 내리 5게임을 따내며 윌리엄스를 압도했다. 경기가 잘 풀리지 않자 윌리엄스의 표정은 점점 구겨졌다. 지난해 9월 출산 이후 휴식을 취했던 윌리엄스는 올해 초 복귀한 뒤  윔블던에 이어 두 번째로 메이저 대회 결승에 올랐다. 이번에 우승하면 24번째 메이저 정상에 오르며 마거릿 코트(호주·은퇴)의 역대 메이저 대회 단식 최다 우승 기록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다.

윌리엄스가 집어 던져 망가진 라켓. [EPA=연합뉴스]

윌리엄스가 집어 던져 망가진 라켓. [EPA=연합뉴스]

마음이 조급해진 윌리엄스는 2세트에선 자신의 서브 게임을 내줘 3-2로 쫓기게 되자 화를 참지 못하고 라켓을 코트 바닥에 내던졌다. 이에 카를로스 라모스(포르투갈) 주심은 윌리엄스에게 페널티를 줬다. 앞서 관중석에 앉아있는 코치로부터 조언을 받아 1차 경고를 받은 데다 라켓을 던진 뒤 다시 페널티를 받아 다음 게임은 0-15로 시작해야 했다. 흥분한 윌리엄스는 잇달아 2게임을 내주면서 게임스코어 3-4로 역전을 허용했다. 화가 난 윌리엄스는 라모스 주심에게 “당신 때문에 내 점수를 도둑맞았다”고 격렬하게 항의했다. 그러자 라모스 주심은 세 번째 경고를 했고, 이로 인해 윌리엄스는 ‘게임 페널티’까지 받아 게임 스코어가 순식간에 3-5로 벌어졌다. 결국 심판의 판정이 승부에 큰 영향을 미쳤고, 윌리엄스는 2세트를 4-6으로 내주며 경기를 마쳤다.

비록 판정이 매끄럽진 않았지만, 오사카는 이날 2만3000여명이 가득 찬 아서 애쉬 스타디움에서 새로운 테니스 스타의 탄생을 알렸다. 키 1m80㎝, 몸무게 69㎏인 오사카는 강한 서브를 앞세운 공격적인 플레이로 윌리엄스를 압도했다. 2013년 프로에 데뷔한 그는 매년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그리고는 5년 만에 ‘파워 테니스’의 대명사인 윌리엄스를 ‘파워’로 눌렀다. 오사카는 이날 서브 에이스 6개를 기록한 반면 윌리엄스의 에이스는 3개에 그쳤다. 오사카의 서브 속도는 최고 시속 191㎞을 기록했다. 윌리엄스의 서브 속도는 시속 189㎞. 뉴욕타임스는 “오사카가 서브에서 윌리엄스를 압도했다”고 칭찬했다.

오사카의 우승 소식에 일본 열도가 들썩였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소셜미디어 계정에 “일본인 최초로 그랜드 슬램 타이틀을 따내 일본 전역에 에너지와 영감을 줘서 감사합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오사카에게 축전도 보냈다. 최근 지진 피해를 입은 홋카이도에 사는 오사카의 외할아버지 오사카 데쓰요는 “이번 재해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아 손녀의 우승 소식을 듣고도 기뻐하는 것을 망설였지만, 그래도 손녀가 자랑스럽다”고 전했다.

오사카 vs 윌리엄스

오사카 vs 윌리엄스

오사카를 후원하는 일본의 닛신식품은 이날 새벽 일본 도쿄 본사에서 150여명의 직원과 함께 경기를 시청하며 단체 응원을 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 신문에 따르면 일본 시각 새벽 5시에 경기가 시작됐는데도 안도 고키 닛신식품 사장을 포함한 대부분의 직원이 열정적으로 응원했다. 이번 대회 남자 단식 4강에 올랐던 일본 남자 테니스의 ‘간판’ 니시코리 게이(29·19위)도 소셜미디어를 통해 오사카의 우승을 축하했다.

오사카는 아이티 출신의 아버지 레오나르도 프랑수아와 일본인 어머니 오사카 다마키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다.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뒤 3세 때 가족과 함께 미국 뉴욕으로 이주했다. 아버지의 권유로 테니스를 시작한 그는 일본과 미국 시민권을 모두 갖고 있다. 그의 언니 오사카 마리(22·일본·376위)도 테니스 선수다.

아버지의 나라인 아이티도 오사카의 우승 소식에 기뻐하고 있다. 일본 산케이 신문은 “중남미의 최빈국인 아이티에는 테니스 인구가 많지 않다. 그런데도 오사카의 우승 소식에 많은 이들이 열광하고 있다”고 전했다.

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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