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과 교만 사이의 정신 '게임 존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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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앨버트 푸홀스(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가 '여길 보라'는 듯 방망이를 들어올렸다 내려놨다. 홈런을 때리고 난 직후였다. 눈에 거슬리지 않게, 그러나 분명하게 상대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좀처럼 그런 동작을 하지 않던 그였기에 모두 궁금했다. 자신의 시즌 12번째 홈런을 때렸던 4월 25일이었다.

그는 "상대를 약올려 품위를 손상시키는 투수라면 이런 식으로라도 교훈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게임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메이저리그에서 뛰면 안 된다"고 자신의 행동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당시 상대투수였던 올리버 페레스(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게 좋지 않은 감정이 있었다. 지난해 삼진을 당한 뒤 페레스가 마운드에서 비아냥거리며 춤추는 동작을 했고, 앞선 타석에서도 투수 땅볼을 때리자 그런 동작을 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도 기분이 나쁘지만 경기의 품위를 깎아내리는 행동이라고 판단했다. 푸홀스는 그 뒤 동료에게 "다음에 만나면 페레즈의 행동이 잘못된 것임을 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푸홀스는 지금 메이저리그의 최고 타자다. 2001년 데뷔한 그가 빠른 기간에 메이저리그 정상에 오르고(지난해 내셔널리그 MVP) 앞으로 메이저리그 역사를 바꿀 수 있는 선수로 기대를 모으는 것은 천부적 재능과 노력은 물론이지만 이 같은 진지함, 경기에 대해 교만하지 않은 겸손함이 밑거름이 됐다. 올 시즌 완벽하게 재기한 박찬호(샌디에이고 파드리스)도 '게임을 존중하는 것'이 경기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말 한 적이 있다. 그는 텍사스 레인저스 시절 부상과 부진에 괴로워하면서 "내가 승부에 집착하고, 이기려고 몰두할수록 결과는 반대로 나온다. 평정심을 갖고 이 순간을 소중하게 여기며 상대를 존중해 주어야 한다. 그게 야구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교훈이다"고 말했다. 그런 자세는 그가 부상에서 회복하고, 샌디에이고로 팀을 옮기면서 활짝 피었다. 첫 번째 결과가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서의 10이닝 무실점이요, 더 발전한 결과가 최근 등판에서의 호조다.

푸홀스와 박찬호가 게임에 대해 갖고 있는 공통된 가치관은 'respect(존중)'다. 승부의 세계이기에 내가 위축되는 겸손은 아니다. 어느 정도의 겸손은 좋지만 그런 태도는 패배주의가 될 수 있어 바람직하지 않다. 겸손이 지나치면 교만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 교만은 더 큰 적이다. 남을 인정하지 않고 어떻게 남을 이길 수 있겠는가.

그래서 겸손과 교만 사이, 존중을 성공의 키워드로 택하고 싶다. 최근 국내 프로야구에서 꼴찌로 처져 버린 롯데도 서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팀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볼 때라고 본다. 그럴 때일수록 서로 존중하고 상대를 존중해야 앞으로 갈 수 있다.

이태일 야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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