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에 묻힌 핵폐기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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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고리 원자력 발전소가 핵폐기물을 마을에서 불과 1㎞밖에 떨어져있지 않은 땅 속에 파묻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원전사고와 안전관리, 그리고 핵폐기물에 대한 거듭된 문제점을 절실하게 제기하고 있다.
지난 한해동안 발생한 국내 원전사고만도 26건이었고 45건의 위반사항을 원자력 안전센터가 발견, 경고한 적도 있지만 이에 대한 시정이 있었다는 말은 아직껏 듣지 못했다.
지난달 원자력병원에서 분실했던 방사성 동위원소를 화장실과 쓰레기장에서 찾아내고는 한 달이 지나서야 원자력안전센터에 보고했다는 사실 또한 우리의 원자력 무지를 새삼 절감케 하는 작으면서도 큰 사건이었다.
작은 사건이 잦으면 큰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은 높게 마련이다. 지난번 국감자료에서 밝혀진 원자력사고만 쳐도 적지가 않다. 동산의료원에서 발생했던 3개의 동위원소 분실사건에 이어 세 곳의 검사소에서 동위원소를 분실했지만 당국은 회수했으니 아무런 걱정이 없다고만 한다.
서울 공릉동 에너지연구소 주변의 토양이 연구용 원자로에서 누출된 폐기물로 오염, 허용치가 2백 배를 넘는데도 관계자는 『아무런 위험이 없다』고 대답한다.
이번 길천리 부근의 핵폐기물 매장사건에 대해서도 한전 측은 『고화 성능실험 폐기물이니 피해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가이거 계수기로 측정한 결과 자연방사선 양보다 훨씬 높은 수치로 나타났다.
폐기물 처리규정에 따르면 핵폐기물은 1차 처리과적을 거쳐 콘크리트로 굳힌 다음 2백1들이 특수철강 드럼 안에 넣어 원전 부지 안의 별도 저장건물창고 안에 3백년동안 특별관리, 보관하기로 되어있다.
미국의 핵폐기물을 다룬 『Forever more』라는 책은 뉴욕주 루이스톤의 핵폐기물 저장고에 대한 문제를 심각히 제기하고 있다. 비록 최대한의 과학적 실비로 이뤄진 저장고이지만 저장고의 배기탑 하나 때문에 방출된 가스가 기준치의 4만 배에 달하는 방사능을 포함하고있다고 지적했다.
핵폐기물에 관한 한 국가마다 안전관리에 세심한 배려를 기울이고있지만 어딘 가에서 문제점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그래서 일본의 과학기술청은 지하 1천m에 핵폐기물 저장고를 설치할 계획과 부지선정에 착수하기까지 하는 세심함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 생활 주변에서도 방사성 물질은 어느 때보다 늘어나고 있다. 금년 7월 기준 국내엔 5백70여 기관에서 1만3천여 명이 방사성 물질을 다루고 있다. 지난 3년보다 1백여 기관이 늘어난 것이다. 사용량도 12만4천여 큐리에서 50여만 큐리로 급증했다. 이러한 급박한 형편 속에서도 당국과 전문가들은 걱정 없다는 안일한 자세만을 고수하고 있다.
최근 브라질의 한 폐쇄된 법원에서 흘러나온 방사성 물질을 동네 어린이들이 주워 놀다가 42명이 방사성에 피폭된 사건이 발생했었다. 1백%의 안전도를 자랑해도 의외의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 게 방사능이고 동위원소라는 물질인데도 이처럼 소홀한 관리와 방만한 핵폐기물처리를 눈앞에 두고도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걱정 없다고만 연발할 수 있겠는가.
쓰레기장과 화장실에까지 팽개쳐버리는 시한폭탄과도 감은 방사성물질을 더 이상 방치하지 않기 위해서는 보다 강력하고 독립된 원전안전규제기관이 절실히 요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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