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영원한 적인가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99호 30면

한국 교실에서 실종된 토론 교육

논쟁 수업으로 시작하는 민주시민교육

논쟁 수업으로 시작하는 민주시민교육

논쟁 수업으로 시작하는
민주시민교육
넬 나딩스·로리 브룩스 지음
정창우·김윤경 옮김, 풀빛

미국 학교에서 쓰는 교과서 #민주시민 키우려면 토론이 필수 #종교·인종 등 성역 없이 얘기해야 #교실은 권위에 질문하는 곳 #고교 때도 불평등 문제 고민해야 #논쟁 없는 창의적 아이디어 없어 #스탠퍼드 석좌교수의 당부 #17년간 초·중·고 수학교사 생활 #인물·사건의 공과 함께 가르쳐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학자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하버드대 그레고리 맨큐 교수가 경제학자가 되기로 마음먹은 사연이 있다. 그는 자라면서 집안 어른들이 정치와 같은 ‘답이 없는’ 문제를 두고 끊임없이 논쟁하는 것을 늘 진저리치며 목격했기 때문이다. 맨큐는 경제학에는 ‘답이 있는’ 것 같아 경제학을 선택했다. (과연 경제학이 답이 있는지는 경제학자들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없겠지만.)

논쟁(論爭)은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각각 자기의 주장을 말이나 글로 논하여 다툼”이다. 사실 상당수 논쟁의 주제에는 답이 없다. 밤새워 토론해도 평행선을 달리기 일쑤다. 그런데도 교육 현장에서 논쟁이 필요한 이유가 있다. 논쟁은 비판적 사고를 연마하는, 창의성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미국 리버럴(liberal) 교육철학의 매뉴얼·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논쟁 수업으로 시작하는 민주시민교육』의 원제는 ‘논쟁거리 가르치기(Teaching Controversial Issues)’이다. 이 책의 목표는 초·중·고 학생들을 타인의 의견을 이해하고 타인과 협력·타협할 수 있는 민주시민을 키우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저자들이 다루는 논쟁거리는 종교·인종·젠더·자본주의·사회주의·불평등·애국심과 같은 것들이다.

한국은 미국 못지않게 이런 논쟁거리로 국론이 분열됐다. 한국에서도 연관성이 높은 주제를 다룬 이 책은, 성역 없는 토론 교육을 표방한다. 우리 교실에 적용했을 때 평지풍파, 긁어 부스럼을 나을 가능성도 있다. 논쟁거리 교육에 대한 이 책이 새로운 논쟁을 부를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해 3월 3일 한 가톨릭계 초등학교를 방문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머리에서 2시 방향으로 상당수 미국 가톨릭계 학교가 교훈으로 삼고 있는, ‘우리의 목표: 대학, 천국’ 이라는 문구가 보인다. 『논쟁 수업으로 시작하는 민주시민 교육』은 민주시민 육성이 가장 중요한 교육 목표라고 주장한다. [사진 백악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해 3월 3일 한 가톨릭계 초등학교를 방문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머리에서 2시 방향으로 상당수 미국 가톨릭계 학교가 교훈으로 삼고 있는, ‘우리의 목표: 대학, 천국’ 이라는 문구가 보인다. 『논쟁 수업으로 시작하는 민주시민 교육』은 민주시민 육성이 가장 중요한 교육 목표라고 주장한다. [사진 백악관]

예컨대 이 책에서 비중 있게 취급하는 ‘언제 그리고 어떻게 권위에 불복종할 것인가’의 문제를 우리 교실에서 토론하면 어떻게 될까. ‘그렇지 않아도 애들이 선생님 말씀을 안 듣는데…’하는 생각이 들 수 있겠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고등학교는 권위에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주의 깊게 공부하기에 적합한 시기다.”

어느 날 학교에 다녀온 우리 집 아이가 집안 대대로 믿어온 종교를 믿지 않겠다고 선언할 수 있다. 학교 수업에서 종교에 관해 토론했는데 ‘신은 없다’는 학우의 말이 맞는 것 같아 자신도 믿지 않기로 했다는 것. 저자는 “교사는 학생들이 종교와 관련된 문제에 대해 비판적으로 사고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세상은 보통 종교를 선한 세력이라고 생각하지만, 종교는 때때로 악을 촉진하기도 한다고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어느 날 우리 아이가 자신이 평소 그토록 가고 싶어했던 대학에 안 가겠다고 할 수 있다. ‘친일파가 세운 대학’이라는 이야기가 수업 시간에 나왔기 때문.

흔히들 역사적 인물들에 대해 ‘공(功)은 공대로 과(過)는 과대로’ 가르쳐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하자는 게 이 책의 주장이다. 우리의 친일파 문제 못지않게 미국에서 ‘뜨거운 감자’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 다수가 노예를 소유했거나 노예제를 옹호했다는 것. 친일이건 노예제 옹호건 사실 그대로 가르치자는 것이다.

저자는 경제 불평등 문제가 고등학생들이 고민해야 할 기본적인 문제 중 하나라고 주장한다. 부정적으로 반응할 독자도 있을 것이다. 공부에 전념해야 할 학생이 왜 경제 양극화를 걱정해야 할까.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다. 경제 불평등을 학생들이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고민하는 나라와 대학교나 대학원 석사과정부터 고민하는 나라 중 어느 나라가 노벨 경제학상을 많이 배출할까. 저자들은 초·중·고 논쟁수업을 위해 학제간(學際間, interdisciplinary) 접근법이 필수라고 주장한다. 고등학생이 학자들과 같은 고민을 하고 학자들과 마찬가지로 학제간 접근을 하는 게 이 책이 대표하는 미국식 교육이다.

이 책의 목표는 미국을 보다 민주적인 나라로 만드는 것이다. 교육을 통한 국가 경쟁력 확보는 관심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은 어쩌면 국가 경쟁력의 핵심은, 저자가 “의미와 이해를 헌신적으로 찾기”로 정의한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를 통한 논쟁 수업에 있다는 결론으로 유도하고 있는지 모른다.

저자는 일부 미국 독자들을 불편 혹은 갸우뚱하게 한 이런 말을 했다. “일부 비평가들이 공산주의를 오해하며 무신론과 동일시하는 것처럼, 사회주의가 공산주의의 한 형태라고 하거나 공산주의로 가는 과정에 포함된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이 있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번영을 누리고 있는 많은 국가는 사회주의 경제로 볼 수 있고, 공산주의 경제가 아니라는 점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서로 타협되지 않는 적들”이지만 “우리는 두 이념 모두에서 배울 수 있다. 우리의 목표는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것이다.”

저자는 “‘교육된 절망(educated despair)’이라는 흥미로운 표현을 쓴다. ‘교육된 절망’은 일종의 냉소주의다. 결론이 나지 않는 복잡하고 심각한 문제에 대해 학생들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그레고리 맨큐 교수가 어렸을 때 느낀 감정과 유사한지 모른다. 저자는 ‘교육된 절망’에 대해 뾰족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한다. 다만 학생들이 ‘교육된 절망’을 느끼는 기미가 보이면, 선생님은 토론을 중단하고 다음에 토론을 재개한다고 약속해야 한다는 게 저자의 제안이다.

『논쟁 수업으로 시작하는 민주시민교육』은 ‘DKG 교육저술상’을 받았다. 미국에서 사회적으로 화제가 된 책은 아니다. 미국에서 일면 ‘당연시’ 되는 문제들을 총정리한 책이기 때문이다. 주저자인 넬 나딩스(89)는 미국 사회와 학계에서 비주류가 아니라 주류다. 호러스 맨(1796~1859)과 더불어 미국 교육의 아버지로 불리는, 교육철학자 존 듀이(1859~1952)의 계보를 이어온 학자다. 넬 나딩스는 스탠퍼드대에서 석좌교수로 연구 활동을 했으며, 교육철학회·듀이학회 회장을 지냈다.

주저자의 인생은 흥미롭다. 스탠퍼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기 전에 17년간 초·중·고에서 수학 교사생활을 했다. 교수로서 그는 ‘학술계의 록스타’였다. 그가 강연하면 학자·학생들이 운집했다. 자식이 10명, 손주가 39명, 증손이 20명 이상이다.

교육에 몸담고 있거나 교육에 관심 있는 이들이 눈길을 줄 필요가 있는 책이다. 우리에게 크고 작은, 또 직접적·간접적 영향을 줄 책이다. 미국이 우리의 벤치마킹 대상이라고 해서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사실상 미국이 글로벌 스탠더드를 결정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렇다. 서울시교육청은 이미 ‘서울형 민주시민교육 논쟁 수업’을 강조하고 있다.

김환영 지식전문기자 whanyu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