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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괴로워 죽겠다는 사람에게 도움 요청했더니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윤경재의 나도 시인(16)

씨앗이 가진 고귀한 가치는 남을 돕는 것과 자신을 돕는 이중적 사랑의 가치이다. [사진 pixabay]

씨앗이 가진 고귀한 가치는 남을 돕는 것과 자신을 돕는 이중적 사랑의 가치이다. [사진 pixabay]

맵시

제 과육을 다 내주고도
맵시 있게 땅 위를 구를 줄 아는
씨 한 톨을 품고 싶다

때가 차면
참나무가 나오고
참모습이 되는 옹골참

말에서 글에서 손에서
그 씨가 터지면
껍데기 벗겨낸 아픈 마음씨도 푸르리라

[해설] 노숙자에게 집 지어준 프랑스인 아베 피에르

노숙자들에게 인간적 자유와사랑을 체험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준 아베 피에르. [중앙포토]

노숙자들에게 인간적 자유와사랑을 체험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준 아베 피에르. [중앙포토]

프랑스인에게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몇 번째 순위에 드는 사람이 있다. 2차 세계대전 중에 항독 레지스탕스로 활약했으며 전쟁 후 하원의원을 지낸 아베 피에르다. 그는 노숙자와 일거리가 없는 사람을 위해 집을 지어주고, 그들이 한 가족처럼 공동체 생활을 하게 도와주었다. 피에르는 그런 일을 ‘엠마오 운동’이라 불렀다. 노숙자를 집단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소공동체를 이루어 일하며 살도록 하였다. 그들 스스로 인간적 자유와 사랑을 체험하고 실천하게 했다.

그가 쓴 책 ‘단순한 기쁨’에 이런 일화가 나온다. 조르주라는 남자가 출옥 후 집에 돌아왔다가 아무도 반기지 않는 어처구니없는 처지에 놓였다. 그는 자살을 시도 했으나 실패했다. 부친을 죽여 교도소에 가게 된 사연, 자신의 감방동료와 재혼한 부인과 오해하는 딸에게 다시 버림받게 돼 자살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난 피에르는 이렇게 말했다.

“조르주, 당신 이야기는 눈물 없이 들을 수 없을 만큼 기가 막힙니다. 하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군요. 내 가족은 부자이지만 내가 수도회에 들어가려고 모든 유산을 포기했습니다. 매달 의원월급을 받지만, 많은 사람이 와서 비참한 상황을 호소합니다. 그들에게 작은 집을 지어주다 보니 월급이 몽땅 들어가고 도리어 빚까지 졌습니다.”

“헌데 당신은 죽기를 원하니 거치적거릴 게 하나도 없겠군요. 집이 다 지어지기를 기다리는 아이와 어머니들을 생각해서라도 집짓기가 빨리 끝나도록 죽기 전에 나를 좀 도와주지 않겠습니까.”

조르주는 “저야 뭐 어차피 죽을 건데 제 힘이 필요하다면 얼마간 돕도록 하지요.”라고 대답하고는 집 없는 사람들을 위해 집을 지어주는 일과 불쌍한 사람들을 돕는 일을 열심히 따라했다.

얼마 후 그는 이렇게 고백했다. “그때 내게 돈을 주든지, 내가 살 수 있는 집을 지어주든지 무언가 베풀어주었다면 다시 자살을 시도했을 겁니다. 그러나 당신은 내게 아무것도 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래서 당신과 같이 일하고 섬기면서 이제 나는 살아야 할 이유를 충분히 찾았고, 어떻게 사는 길이 행복인 줄을 알게 되었습니다.”

도움이나 동정보다 필요한 사람 되라  

노숙자들에게는 인간답게 사는 길을 찾고 스스로 인간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도록 자유와 작더라도 흥미 있는 일거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진정한 해결책이라고 할 수 있다.[사진 pixabay]

노숙자들에게는 인간답게 사는 길을 찾고 스스로 인간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도록 자유와 작더라도 흥미 있는 일거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진정한 해결책이라고 할 수 있다.[사진 pixabay]

참된 삶의 의미는 누군가에게 도움이나 동정을 받는 것보다 누군가를 위해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는 진리를 조르주는 체험한 것이다. 거기에다가 피에르는 자유를 강조하였다.

“사랑은 타인의 자유에 대한 절대적 존중을 전제로 한다. 아무리 사랑이라도 강요받는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인간에게는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 거대한 우주에서 인간만이 자유를 부여받은 존재다. 그렇기에 인간이 우주에 비춰볼 때 너무나 미미한 존재일지라도 무한한 가치를 지닌다.” “인간의 삶은 자유에 바쳐진 시간이다” “인간은 자유롭게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태어났다.”

피에르가 독신 사제로 살며 평생을 ‘엠마오 소공동체’ 운동에 헌신한 계기는 아버지 때문이었다. 어려서 자기밖에 몰랐던 피에르가 빈정대며 말하자 형은 그를 조용히 불러 타일렀다. “너는 너밖에 모르느냐. 다른 사람이 행복한 걸 보고 기뻐해줄 줄 모른단 말이냐.” 그 말에 피에르는 한 세계가 무너지고 다른 세계가 열리는 느낌을 받았다고 고백한다. 네가 기쁘면 나도 기쁘고, 네가 고통 받으면 나도 고통 받는다는 진리를 깨달았다고 한다.

또 그의 아버지는 1차 세계대전 후 은밀히 몇몇 귀족과 부자들과 함께 이가 들끓는 거지와 부랑자들을 돌보았다. 하루는 이발기계로 머리를 깎아주다가 실수로 머리카락을 쥐어뜯자 심한 욕설을 듣게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는 아들에게 말했다. “불행한 사람을 보살필 자격을 갖추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너도 보았지.” 또 그들은 불쌍한 사람이 아니라 불행한 사람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셨다.

노숙자들을 돌보는 봉사자의 말을 들어보면 수용소 같은 단체시설에 수용하는 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들은 조만간 다 도망쳐 버린다는 것이다. 자유를 억압받으면 못견뎌한다는 거다. 작더라도 흥미 있는 일거리와 자유가 진정한 해결책이라고 한다. 인간답게 사는 길을 찾고 스스로 인간의 의미를 깨달아야 한단다.

상처 입은 사람은 너무나 고통스럽기 때문에 자신마저 사랑하지 못한다. 그래서 자신을 포기하게 된다.  그래도 누군가가 그를 사랑하고 있으며, 누군가를 사랑할 능력이 자신에게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어야 한다.

‘씨’가 어미로 붙는 단어의 공통점은?

'~씨'가 어미로 붙는 단어들은 이중의 사랑과 고귀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자연 속의 식물은 널리 퍼뜨리고 가치를 간직하기 위해 씨를 만들었고, 우리말의 '~씨'가 어미로 붙는 단어는 가치를 간직하고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는 상태를 일컫는다. [중앙포토]

'~씨'가 어미로 붙는 단어들은 이중의 사랑과 고귀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자연 속의 식물은 널리 퍼뜨리고 가치를 간직하기 위해 씨를 만들었고, 우리말의 '~씨'가 어미로 붙는 단어는 가치를 간직하고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는 상태를 일컫는다. [중앙포토]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직접 움직이는 작은 공동체가 필요하다. 나 하나쯤이야 없어도 되는 커다란 집단이 아니라 책임감을 갖고 능동적으로 참여해 성취감을 맛볼 수 있는 크기가 적당하다. 늘어져서 쉬는 곳이 아니라 창조적으로 삶을 영위하는 곳이 필요하다.

자연은 소중한 가치를 간직하고 퍼뜨리기 위해 ‘씨’를 만들었다. 식물은 그 씨를 널리 퍼뜨리는 방법으로 향기와 맛을 풍부하게 지닌 과육을 남에게 제공한다. 그것은 단순한 희생이 아니라 남을 도우며 자신도 돕는 이중의 사랑이다. 자연의 고귀한 가치이다.

우리말에 ‘~씨’가 어미로 붙는 단어가 많다. 마음씨, 솜씨, 글씨, 말씨, 눈씨, 발씨, 날씨, 바람씨 등이다. 어떤 소중한 가치를 간직하고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는 상태나 태도, 모양이나 재주를 일컫는다.

윤경재 한의원 원장 whatayu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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