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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가 주목하는 한일전…진짜 상대는 일본이 아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송지훈의 축구.공.감 

베트남과 4강전을 앞두고 애국가를 함께 부르며 결의를 다지는 아시안게임 축구대표팀. [연합뉴스]

베트남과 4강전을 앞두고 애국가를 함께 부르며 결의를 다지는 아시안게임 축구대표팀. [연합뉴스]

‘극동(Far East)’이라 부르는 먼 두 나라, 그것도 23세 이하 어린 선수들의 축구 맞대결을 전 세계가 이토록 뜨겁게 주목한 사례가 또 있을까. 다음달 1일 인도네시아 치비농에서 열리는 자카르타ㆍ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결승전은 이제 세계 축구팬들이 함께 지켜보는 ‘핫 이슈’로 떠올랐다.

배경에는 역시나 ‘한국산 프리미어리거’ 손흥민(토트넘홋스퍼)이 있다. 당초엔 프리미어리그를 대표하는 특급 공격수가 국제축구연맹(FIFA) 공인도 받지 못한 아시아권 종합대회 축구 종목에 굳이 참가한다는 사실 정도가 화제의 전부였다. 이후 한국이 결승으로 차츰 다가서면서 손흥민이 소속팀의 새 시즌 초반 일정까지 접고 이 대회에 매달리는 이유가 더욱 자세히 알려지고, 늘어난 정보량에 비례해 관심도 높아지는 모양새다.

각국 미디어들이 돌아가며 우리나라의 군 복무 제도에 대해 소개하고, 손흥민의 처지를 조명하는 상황이 한국 경기가 열릴 때마다 반복되고 있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영국 등 유럽 여러나라를 거쳐 최근에는 미국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스포츠전문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트’는 ”한국의 (군복무 관련) 규정은 우스꽝스럽다. 한국 축구 역사상 최고 선수인 손흥민이 사회복무요원으로 2년간 책상 앞에 앉아있어야 할지 모른다“고 꼬집은 게 대표적이다.

베트남과 4강전에서 이승우(왼쪽)가 첫 골을 성공시킨 뒤 손흥민과 함께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베트남과 4강전에서 이승우(왼쪽)가 첫 골을 성공시킨 뒤 손흥민과 함께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 세계가 주목하는 ‘손흥민의 도전’ 마지막 단계에 ‘숙적’ 일본이 등장한 건 그래서 더 드라마틱하다. 일본은 각종 국제대회 승부처에서 우리나라와 물고 물리면서 치열하게 경쟁해왔다. 23세 이하 축구대표팀간 경쟁만 놓고 봐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2012년 런던 올림픽 3위 결정전에서는 우리가 2-0으로 승리하며 동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2016년 23세 이하 아시아 챔피언십 결승전에서는 우리가 먼저 두 골을 넣은 뒤 세 골을 내주고 무너져 2-3으로 역전패했다.

단순히 ‘넘어야 할 벽’인 것만은 아니다. 두 나라 모두 서로를 집중탐구하며 장점을 최대한 흡수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한국은 일본 특유의 짜임새 있는 미드필드 플레이에, 일본은 실력 있는 스트라이커와 골키퍼를 끊임 없이 배출하는 한국 축구의 경쟁력에 꾸준히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한일전에서 우리가 진짜로 넘어야 할 대상은 일본이 아니다. 냉정히 말해 이번 대회에 참가한 일본은 경기력과 경험 모두 한 수 아래다. 2020년 도쿄올림픽이 열리는 2년 뒤를 내다보고 20인 엔트리를 통째로 21세 이하 어린 선수들로 채웠다. 23세를 넘는 와일드카드는 단 한 장도 쓰지 않았다. 손흥민을 비롯해 최전방부터 최후방까지 최정예 멤버로 팀을 구성한 우리나라와는 전력 차가 크다.

김학범 감독(오른쪽)이 이끄는 우리 축구대표팀은 한국인 박항서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베트남을 넘어 아시안게임 결승에 올랐다. 4년 전 인천 대회에 이은 2연속 우승에 한 발 가까이 다가섰다. [연합뉴스]

김학범 감독(오른쪽)이 이끄는 우리 축구대표팀은 한국인 박항서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베트남을 넘어 아시안게임 결승에 올랐다. 4년 전 인천 대회에 이은 2연속 우승에 한 발 가까이 다가섰다. [연합뉴스]

김학범호의 진짜 경쟁자는 ‘눈(目)’이다. 1차적으로는 ‘금메달이 아니면 실패’라 규정짓고 바라보는 외부의 냉정한 시선을 견뎌내야한다. 앞서 말레이시아와 치른 조별리그 2차전(1-2)이 우리 선수들이 반면교사로 삼을만한 경험이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우리에 못 미치는 팀에게 패했을 때 어떤 비난이 돌아오는지, 팀 분위기가 얼마나 가라앉게 되는지 일찌감치 체험한 게 오히려 선수들에게 약이 될 수 있다. 말레이시아전의 경우 다음 일정이 있었고 16강 진출 가능성이 여전히 높았지만, 일본과의 결승전은 ‘다음’이 없는 마지막 승부다.

혹시나 우리가 결승에서 일본에 가로막힌다면 상상하기 힘든 후폭풍을 견뎌야 한다. 당장 손흥민의 유럽 도전부터 중단해야 한다. 이번 대회 최고의 활약을 보인 황의조(감바 오사카)도, 일찌감치 유럽 무대에서 프로 이력을 시작한 황희찬(잘츠부르크)과 이승우(헬라스 베로나)도 같은 길을 걸을 가능성이 높다. 유럽 무대 도전을 목표로 열심히 준비 중인 나머지 국내파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손흥민의 병역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해외 매체들이 자극적인 보도로 관련 논란을 더욱 키울 가능성도 높다.

이번 대회 9골로 최고의 해결사로 떠오른 최전방 스트라이커 황의조. [연합뉴스]

이번 대회 9골로 최고의 해결사로 떠오른 최전방 스트라이커 황의조. [연합뉴스]

선수단 내부적으로는 혹시 있을지 모를 ‘불신의 눈’을 뿌리 뽑아야한다. 지금은 잘못에 대한 질책보다 칭찬과 격려를 통해 함께 자신감을 끌어올릴 때다. 아울러 자신감이 지나쳐 자만으로 이어지는 상황도 함께 막아야한다. 결승전에서는 그라운드에서 일본 선수들과 싸우겠지만, 김학범호가 진짜 이겨야 할 상대는 그라운드 안팎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눈들이다. 종료 휘슬이 울리는 그 순간까지 집중력을 유지해야한다. 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베트남과 4강전에서 황의조의 추가골이 터지자 주장 손흥민이 점프하며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베트남과 4강전에서 황의조의 추가골이 터지자 주장 손흥민이 점프하며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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