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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평창올림픽 했던 곳 맞아?" 흉물 돼가는 시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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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평창겨울올림픽 알파인 경기장으로 쓰인 강원도 정선 가리왕산 스키장. [중앙포토]

2018 평창겨울올림픽 알파인 경기장으로 쓰인 강원도 정선 가리왕산 스키장. [중앙포토]

“올림픽 개·폐회식장을 다 헐고 성화대만 덩그러니 남았으니 누가 오겠습니까.”

주요시설 12곳 중 강릉하키센터 등 4곳 관리 방안 미정 #가리왕산 알파인스키장 '존치'vs'산림 복원' 갈등 #막대한 운영비 부담 문제는 정부·강원도 입장차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함영길(52)씨는 황량한 올림픽플라자 일원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1100억원을 들여 지은 이 시설은 지난 2월 평창 겨울 올림픽 개·폐회식장으로 쓰인 뒤 주요 시설이 대부분 철거됐다. 지금은 성화대와 본관 건물만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함 씨는 “올림픽 개최지를 구경 온 관광객들이 사진 한장 찍을 곳이 없다는 게 말이 되냐”며 “평화 올림픽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성공적인 대회를 치렀지만, 이제껏 올림픽 유산이라고 소개할 만한 시설과 기념물이 없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정선군 북평면 가리왕산 알파인스키장 역시 흉물이 된 지 오래다. ‘경기장 시설 존치’와 ‘산림 원상복구’를 놓고 강원도와 환경부가 6개월째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슬로프 곳곳은 폭우로 흙과 자갈이 무너져 산사태가 우려된다. 주민 윤모(48·여)씨는 “며칠 전 주민들과 청와대에 가서 ‘빨리 보존 방안을 결정해 달라’고 유세를 하고 왔다. 결정된 게 하나도 없으니 답답하다”고 말했다.

지난 22일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 올림픽플라자 일원이 황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2일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 올림픽플라자 일원이 황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수천억 원의 예산을 들여 건설한 평창 겨울 올림픽 시설이 애물단지로 전락했다는 지적이다. 올림픽이 끝난 지 6개월이 됐지만 일부 경기장은 관리 주체를 선정하지 못한 채 계약직 직원들에 의해 기본적인 관리만 하는 실정이다. 매년 수십억 원의 예산이 소요될 경기장 운영비 부담 문제 역시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25일 강원도에 따르면 아직 사후활용 방안을 찾지 못한 올림픽 경기장은 전체 12곳 중 4곳이다. 강릉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과 강릉하키센터, 알펜시아 슬라이딩센터 등 3개 전문체육시설이 국비 지원 여부가 결정되지 않았다.

강원도의회에 제출된 ‘강원도 동계스포츠경기장 운영관리 조례 일부 개정 조례안’의 비용 추계서를 보면 3개 경기장의 시설 관리위탁 비용은 연간 40억원에 달한다. 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은 13억8900만원, 하키센터 14억1600만원, 슬라이딩센터는 12억5200만원이 필요하다. 강원도는 해당 관리비용 부담비율을 국비 75%, 도비 25%로 나눌 것을 정부와 국회에 건의해왔다. 하지만 정부는 법적 지원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난색을 보이고 있다.

강원 평창군 올림픽플라자 일원 대회시설이 대부분 철거되고 있다. [연합뉴스]

강원 평창군 올림픽플라자 일원 대회시설이 대부분 철거되고 있다. [연합뉴스]

알파인스키장이 있는 가리왕산 복원 문제도 사후활용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도는 2021 동계아시안게임 남북공동유치를 위해 2021년 4월부터 복원 작업을 진행할 것을 요구했다. 정선군은 “산림으로 복원하더라도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게 곤돌라 등의 시설은 남겨둬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산림청은 애초 계획대로 내년 봄부터 자연림 복원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관리 주체가 결정된 시설은 다목적 체육시설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강릉컬링센터의 경우 11월 ‘2018WCF 아시아태평양 컬링선수권대회’를 비롯해 스포노믹스 사업이 마무리될 때까지 유지한 뒤 실내복합복지 체육시설로 활용된다. 피겨·쇼트트랙 경기장으로 활용된 강릉 아이스 아레나 경기장은 실내복합 문화 스포츠시설로 활용할 계획이다.

지난 5월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 일대 내린 폭우로 횡계리 주택가가 침수됐다. 주민들은 올림픽 셔틀버스 승하차장을 위해 조성한 시설물을 철거하지 않아 빗물에 하천이 범람, 인근 주택까지 침수되는 일이 벌어졌다고 주장했다. [뉴스1]

지난 5월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 일대 내린 폭우로 횡계리 주택가가 침수됐다. 주민들은 올림픽 셔틀버스 승하차장을 위해 조성한 시설물을 철거하지 않아 빗물에 하천이 범람, 인근 주택까지 침수되는 일이 벌어졌다고 주장했다. [뉴스1]

철거를 전제로 세워졌던 지상 4층 규모의 국제방송센터(IBC)는 국가 문헌 보존관으로 활용된다. 개·폐회식이 열렸던 올림픽플라자는 5층 규모 본관 건물 일부를 존속시켜 올림픽기념관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박영일 강원도 올림픽시설과장은 “관리 주체가 선정되지 않은 시설은 25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계약직 직원 44명을 두고 유지관리를 하는 실정”이라며 “올림픽 시설 사후관리 용역을 통해 활용방안을 마련하고, 이를 근거로 정부에 운영비 지원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평창·정선=최종권 기자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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