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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여포’ 은행들, 100원 벌면 해외서 버는 건 10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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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국내 은행들이 ‘방구석 여포’(집에서는 ‘삼국지’의 여포처럼 기세등등하지만, 밖에서는 조용해지는 사람을 일컫는 신조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상 최대 실적을 자랑하고 있지만, 전체 이익 중 해외 이익의 비중은 되려 낮아진 것으로 조사됐다. 국내 이익도 대부분 예대금리차(대출금리와 예금금리 간 차이) 확대에 따른 이자이익에 편중돼 있어 수익처 다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이자장사로 사상 최대 실적 #해외이익 비중은 10.4%에 그쳐 #본국 비중 낮은 외국은행과 대조 #수익처 다변화, 경쟁력 키워야

올해 상반기(1월~6월) 신한·KB국민·KEB하나·우리 등 4대 시중은행의 당기순이익은 5조1377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다. 2015년 1년 동안 이들 은행이 기록한 당기순이익(4조6426억원)보다도 더 많은 금액이다.

하지만 이 중 해외에서 벌어들인 순익은 5332억원으로 전체 순익 대비 10.4% 수준에 그쳤다. 지난 연말의 9.9%보다는 소폭 높아졌지만 2016년(12.2%)이나 2015년(12.4%)보다는 되려 낮아진 수치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해외 굴지 은행들의 해외이익 비중과 비교하면 더욱 초라해진다. 미국계 씨티은행은 지난해 총 수익의 51%를 미국 이외 지역에서 벌어들였다. 영국계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은 올해 상반기 해외이익 비중이 94%에 달한다. 영업이익 중 영국에서 벌어들인 금액의 비중은 6%에 불과하다. 스페인계 산탄데르 은행도 스페인 이외 지역 수익 비중이 85%에 달한다. 물론 역사나 영업력, 동일 언어 및 문화권 등 배후 시장의 규모 측면에서 이들과 한국의 은행들을 단순 비교하는 건 무리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격차가 너무 크다.

수익 구성을 보면 아쉬움이 더 커진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1분기 기준 4개 은행의 이자 순수익은 4조9525억원으로, 전체 순수익의 78.2%에 달한다. 지난 연말(73.3%)보다 비중이 더 커졌다. 수수료 등 비이자 순수익 비중은 20%를 간신히 넘는 정도다.

거칠게 요약하면 최근의 은행업 호황은 자체 노력 때문이라기보다는 금리 상승기를 이용한 ‘이자 장사’ 덕택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실제 금감원에 따르면 상반기 기준 전체 은행의 예대금리차는 평균 2.08%포인트로, 지난해 동기보다 0.07%포인트 커졌다. 대출이자를 예금이자보다 더 많이 올렸다는 얘기다.

더구나 은행원들이 올 상반기에만 평균 4750만원의 급여를 받고, 일반인은 상상하기 어려운 각종 복지 혜택을 향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전해지면서 은행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중소기업 등의 폐업이 속출하고 있는데 은행은 가만히 앉아 대출이자를 높이면서 호황을 누리고 있다는 게 비판의 요지다. 경제계 일각에서는 “은행이 사실상 기업 몫의 이익을 빼앗아 간 것”이라는 불만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은행의 수익 다변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대기 한국금융연구원 은행보험연구실장은 “은행이 지금처럼 내수시장에만 의존하다가는 국내 경기 부침이나 금리 변동 등의 변수가 생길 때마다 쉽게 흔들릴 수 있다. 자산관리나 컨설팅 서비스 등을 개발해 수수료 이익을 높이거나 지금까지 쌓은 노하우를 들고 해외에 나가 기회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정부의 태도 변화와 경쟁 촉진 시스템의 구축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은행이 비이자 수익을 늘릴 수 있는 상품개발과 영업 방식을 많이 규제받고 있어서 결과적으로 이자수익만을 좇게 된 측면이 있다”며 “금융당국에서 영업 행위 자체에 대한 지나친 규제를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민수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은행법이 은행 산업 보호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보니 경쟁이 사라지고 안정적인 사업만 남게 된 것”이라며 “정부는 핀테크 업체들이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들고 금융업에 진출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은산분리 규제를 완화해 내수시장의 경쟁을 유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용환 기자 jeong.yonghwa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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