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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가 해봤습니다] 인공지능이 김성주 아나운서를 대신할까?

중앙일보

입력

[J가 해봤습니다] AI 로봇기자의 스포츠 해설·기사 심사해봤더니…

국제 인공지능(AI) 월드컵 2018 예선전. [사진 한국과학기술원]

국제 인공지능(AI) 월드컵 2018 예선전. [사진 한국과학기술원]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개최했던 ‘국제 인공지능(AI) 월드컵 2018’이 22일 사흘간의 일정을 마쳤다. 지난해까지 국내 대학·연구기관·기업만 참가했던 AI 월드컵은 올해 대회 규모를 세계로 확장했다. AI가 축구 실력을 겨룬 최초의 세계 규모 대회에서 AI 로봇해설가들은 실시간 문자로 경기를 중계했다.

AI 월드컵 2018은 ▶AI 축구 ▶AI 로봇이 작성한 기사 ▶AI 경기해설 등 3개 종목으로 구성된다. 이중 AI 축구 경기는 미국·브라질·이란·프랑스 등 12개국 24개 참가팀이 자웅을 겨뤘다. 일반 축구 경기와 차이점은 일종의 딥러닝(deep learning) 기술을 통해 축구 전술을 미리 학습한 5명의 선수들이 인간의 개입 없이 경기를 뛴다는 점이다. 김우준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부 학생 등 6명이 프로그래밍한 AI(팀명 AFC_WISRL)가 우승을 차지했다.

AI 축구 종목 우승팀 AFC_WISRL 시상식. [사진 한국과학기술원]

AI 축구 종목 우승팀 AFC_WISRL 시상식. [사진 한국과학기술원]

AI 축구경기장에서는 언론사의 미래도 엿볼 수 있었다. 이곳에는 마치 스포츠 아나운서처럼 경기를 실시간 중계하는 AI 캐스터가 있었다. 또 경기가 끝나면 AI 로봇기자가 속보를 썼다. AI 월드컵 주최 측은 중앙일보를 포함해서 3곳 언론사 현직 기자를 심사위원으로 위촉해 이들의 중계·보도 평가를 의뢰했다.

심사위원들은 지난 6월부터 저널리즘 논문·학술지를 연구해서 공동으로 10개 항목 총 41개 평가 기준을 마련했다. 기준은 동일했지만 심사는 개별적으로 실시했다. 기사 내용이 다른 심사위원의 평가결과와 다소 상이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열린 인공지능(AI) 로봇 축구대회. 문희철 기자.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열린 인공지능(AI) 로봇 축구대회. 문희철 기자.

◇성능 편차 극심한 AI 로봇기자 = 로봇기자 부문에서는 2팀이 참가했다. 아쉽게도 이 중 하나는 수준미달이었다. 이 로봇기자는 딱 기사 3줄을 작성했는데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기사의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 경기대회명이나 경기장소 등 기초적인 사실관계를 알 수 없었고, 경기 분석은커녕 경기 내용조차 충분히 보도하지 못했다. 심지어 승리팀이 몇 골을 넣었는지도 기록하지 않았다.

하지만 또 다른 로봇기자는 달랐다. 질적으로 충분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기사의 기본 요소에 충실했다. AI 로봇기자는 누가 골을 넣었고, 어느 팀을 이겼는지 사실 관계를 명확히 기록했다.

또 분석 보도가 인상적이었다. 예컨대 이 AI 로봇기자는 다수의 선수가 퇴장한 원인이 '규칙 변경'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AI가 2017년 대회 규정과 올해 규정을 각각 인지하고, 차이점까지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또 인간이었다면 즉시 파악하기 어려운 통계를 바탕으로 기사를 썼다. 예컨대 로봇기자는 수훈선수 한 명을 꼽으면서, 이 선수의 총이동 거리(173.24m)가 모든 선수 중 가장 길었다고 분석했다. 마치 박지성 전 맨체스터유나이티드 축구선수가 현역 시절 장거리를 뛰면서 경기를 지배한 것처럼, 이 로봇선수도 많이 뛴 덕분에 최다골(2골)을 기록했다는 것이다. 이 AI(SIIT-reporter)는 결국 AI 로봇기자 부문에서 우승상금(5000달러·560만원)을 거머쥐었다.

인공지능(AI) 로봇 축구대회에선 엄격한 대회 규칙 때문에 종종 많은 선수들이 퇴장 당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사진은 양팀 10명의 선주 중 9명이 퇴장한 상황. 문희철 기자.

인공지능(AI) 로봇 축구대회에선 엄격한 대회 규칙 때문에 종종 많은 선수들이 퇴장 당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사진은 양팀 10명의 선주 중 9명이 퇴장한 상황. 문희철 기자.

다만 실제 축구 전문 기자의 보도와 비교하면 아무래도 기사가 맥이 빠진다. 경기 기록·통계로 잡히지 않는 부분까지는 포착하지 못해서다. 예컨대 경기 도중 A팀 선수가 전원퇴장을 당한 사실이나, A팀 전원퇴장 이후에도 장시간 B팀 선수들이 우왕좌왕하며 골을 넣지 못하는 한심한 모습을 보인 것을 기사는 거론하지 않았다.

인공지능(AI) 로봇 축구대회에서, AI 캐스터가 실시간으로 축구 경기를 문자중계(좌측 상단) 했다. 문희철 기자.

인공지능(AI) 로봇 축구대회에서, AI 캐스터가 실시간으로 축구 경기를 문자중계(좌측 상단) 했다. 문희철 기자.

◇김성주 아나운서에 도전한 AI 경기해설자 =“B팀의 멋진 공처리(excellent ball keeping)입니다. A팀 상황은 우울하네요(gloomy situation).”  로봇축구를 실시간으로 문자중계한 AI를 처음 접할 때 감정은 ‘놀라움’이었다. 가장 인상적인 건 해설의 속도다. 인간이라면 중계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른 순간에 벌어지는 사건도 척척 중계한다. 문장을 다 읽기도 전에 다음 중계로 이어지는 일은 부지기수다.

국제 인공지능 월트컵. [연합뉴스]

국제 인공지능 월트컵. [연합뉴스]

신속성과 함께 정확성도 우수한 편이다. 일부 AI 캐스터는 자살골을 넣은 선수도 분류할 수 있었다. 인간이 감탄했을 때 타이핑을 한 것처럼 골이 터지면 따옴표 2개(Goal!!)를 붙이고, 아쉬운 장면이 나오면 말줄임표(Ah...)를 입력하는 AI도 있었다. 진짜 스포츠 캐스터처럼 느껴지는 대목이다.

하지만 경기 시작 후 2분이 지나면 AI 캐스터가 항상 동일한 표현·단어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눈치 챌 수 있다. 캐스터로 참가한 AI 4팀 모두 마찬가지다. 같은 사건을 다른 단어나 문장으로 표현하는 일이 드물었다. 평가항목 중 하나인 튜링테스트(Turing test·사람과 컴퓨터를 구별하는 실험)에서 4팀 모두에게 0점을 부여한 이유다.

AI 로봇기자처럼 AI 해설가도 아직 기술적으로 완벽하진 않다. 특히 일부 AI 로봇기자가 자체 분석을 가미한 기사를 작성한 것과 달리, AI 해설가는 분석 없는 보도만 기계적으로 던지는 식이었다.

예컨대 한 AI 캐스터는 특정 축구선수가 공을 몰고 일정 거리를 지속하면 예외 없이 ‘훌륭한 드리블(awesome dribble)’이라고 중계했다. 또 다른 AI 캐스터는 상대팀이 슛만 하면 슛의 강도나 위치, 거리에 무관하게 ‘위기(crisis)’라고 해설했다.

국제 인공지능(AI) 월드컵 2018 결승전. [사진 한국과학기술원]

국제 인공지능(AI) 월드컵 2018 결승전. [사진 한국과학기술원]

AI 캐스터마다 다소 편차가 있지만, 가장 적게 사용하는 팀은 5분 동안 100개 미만의 단어를 사용했다. 똑같은 단어가 반복되면 그만큼 시청자는 지루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총 5분간의 경기 도중 1분30초 동안 중계를 중단한 AI 캐스터도 있었다. AI 경기해설 부문에서는 상대적으로 중요한 경기상황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면서도 과하게 동어를 반복하지 않았던 AI 캐스터(ASUAIC팀·미국 애리조나주립대학)가 우승했다(우승상금 5000달러·560만원).

이번 대회에서 기량을 뽐낸 AI 로봇기자나 AI 스포츠 캐스터의 모습만 보면 아직 객관적으로 인간을 대체할 수준은 아니다. 당분간 기자라는 일자리가 사라지지는 않겠다는 안도감(?)도 들었다.

국제 인공지능(AI) 월드컵 2018 [사진 한국과학기술원]

국제 인공지능(AI) 월드컵 2018 [사진 한국과학기술원]

하지만 AI를 프로그래밍한 사람들이 주로 아마추어 학생들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 정도 기술도 놀라운 일이다. 알파고도 처음에는 프로 기사의 바둑 실력에 미치지 못했지만, 사람 바둑기사가 둔 기보를 학습한 뒤 이세돌 9단에게 승리했다. AI 자기학습을 거치면 기술은 어디까지 발전할지 모른다.

이미 AI 기자는 단순 속보 보도에서는 인간을 능가했다. 일부 글로벌 미디어는 스포츠 경기 결과나 주식 시황 등 패턴이 정해진 보도에 AI를 도입했다. 하지만 이런 기자들이 ‘심층분석’이라는 인간 고유의 영역까지 침범하진 못했다. 하지만 이날 우승한 AI로봇기자( 분석이라는 영역에 AI가 성큼 다가서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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