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동의 마지막 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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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정말 떠나는 겁니까.』
『은신처는 어디랍디까.』
『이젠 최루탄 냄새 안 맡고 살 수 있게 됐네요.』
전두환전대통령이 연희동 사저를 뗘나기에 앞서 『이사짐을 미리 옮긴다』는 소문이 나돌았던 22일 오후4시. 소문을 확인키 위해 내외신기자 50여명이 연희동으로 몰려들자 주민들은 대문을 빠끔히 열고 마주보며 수군거렸다.
파커차림의 전경들이 삼엄한 경비망을 펴고있는 골목길. 사진기자들은 이사짐 운반 과정에서 전씨가 나타날는지도 모른다는 기대로 사저 가까이 몰려들었고 전경들은 필사적으로 기자들의 접근을 막았다.
전씨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대기한지 2시간-. 그러나 연희궁(?) 대문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오후5시 연세대 민주광장. 3백여명의 학생들이 「전-이부부 즉각 구속과 노태우퇴진을 위한 범연세인 결의대회」를 열고 있었다.
「학생들이 연희궁을 습격하러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경찰은 이날 전씨사저 부근에 4개중대 6백여명의 병력을 추가배치, 대비했으나 습격은 없었다.
오후 8시50분, 연희동 전씨집 주변은 예고 없는 정전사태로 암흑가로 돌변했다.
그러나 전씨집만은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전씨부부가 어둠을 틈타 망명하는 것은 아닐까요.』 부질없는 억측의 속닥거림속에 「연희동의 마지막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김기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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